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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신부>는 한국인의 '베트남 판타지'

한국인이 베트남인보다 행복한가?

등록|2007.09.06 14:05 수정|2007.09.06 17:21
"베트남 신부는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의 국제 결혼 광고물이 크게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국제적으로 한국인이 베트남을 비하하는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다. 물론 그 이면에는 베트남은 못 사는 나라, 이른바 후진국이라는 인식도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인식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아울러 한국 대중문화 속 베트남인이나 라이따이한은 항상 여성이다. 왜 남성이 아니라 여성일까? 우선 다른 사례를 통해 보자. 조선 말부터 일제는 조선의 여인 풍속 사진을 대대적으로 제작하고, 기녀들을 전면적으로 상품화했다. 그럴 때 조선은 일제가 보호해야 할 성적 낭만을 지닌 여인의 나라다. 한국인의 베트남에 대한 인식은 이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항상 베트남은 구해야 할 여인의 나라가 되기 때문이다. 베트남 국가 자체는 무능한, 그에 따라 무시할 나라가 된다.

물론 실제로 그럴 만한 나라인지는 알 수 없다. 예컨대, 2005∼2007년 39개 국가에서 실시한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28위였지만, 베트남은 22위였다. 또 베트남은 어느 나라보다 자존감이 큰 나라다. 몽골 제국과 중국 왕조에 복속 혹은 동화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프랑스 제국주의와 일제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마침내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다. 통일도 자신들이 이뤘다. 단지 경제력이 한국에 조금 뒤처질 뿐이다.

SBS 드라마 <황금신부> 한 장면 ⓒ SBS

SBS 드라마 '황금신부'에는 어머니 역의 리엔팜에 이어 베트남 여성 진주(이영아)가 등장하는데 전형적인 한국인의 환상체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가난한 나라에서 아버지의 나라에 온 라이따이한인 진주는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기 때문에 주말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모녀를 통해 베트남은 약한 나라, 연민의 나라, 여인의 나라가 된다.

한편으로 그녀들을 통해 베트남은 성적 환영을 지닌 곳이 된다. 베트남인이나 라이따이한으로서 남성은 배제된다. 여성이라고 해도 강하거나 외향적이면 안 되는데 순수하고 가녀린 체형에 눈물이 많은 캐릭터여야 한다. 진주(이영아) 캐릭터가 적격이다. 그녀는 아버지와 아버지 나라에 대한 그리움과 동화의 의지가 충만해야 한다. 또 아버지와 그 나라를 비난하거나 저항하는 이미지여서는 곤란하다. 그녀는 주체가 아니라 피동체다. 그것은 베트남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근본 시선이다.

결국 '황금신부'에는 베트남 여성에 대한 성적 향수주의와 핏줄 혈연의식이 교차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인들의 경제적 우월 심리가 배어 있다. 물론 그러한 심리가 미국을 패전하게 만들었다. 경제력은 허구적일 수 있다. 앞의 행복지수를 다시 꺼내지 않아도 과연 베트남인보다 한국인이 행복한지 말하기도 힘들다. 물론 이런 드라마는 베트남에서 한류로서 환영받지 못한다. 그들의 자존감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뉴스메이커>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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