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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화가', '물과 화가의 나라'에 가다

[이미지 산책 10] <'빛의 화가 모네'전> 5

등록|2007.09.11 18:53 수정|2007.09.12 13:17

'네덜란드의 튤립 밭'1886년, 65 x 81 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 The Bridgeman Art Library


<'빛의 화가 모네'전> 그림 소개 마지막 기사로, 모네가 인상깊게 여행했던 네덜란드에서 그린 튤립 밭 그림을 소개합니다.

사실 이 그림은 평소의 모네답지 않습니다.

그림을 보면 지평선 쪽으로 향하는 바람의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튤립들이 쓰러지듯 뒤쪽으로 몰려 있는 듯합니다. 구름도 실루엣을 남기며 물러가고 있습니다. 모네의 그림에서는 드물게 원근감이 아주 잘 살아 있습니다. 색채도 아주 선명하고요.

'물의 화가' 모네는 '물의 나라' 네덜란드를 두 번 방문했습니다. 두 번째 방문 때인 1886년 4월에 모네는 튤립 산지를 찾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열흘간의 기간 동안 5점을 그리는데 그 그림 중의 하나가 위의 그림입니다.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완성은 지베르니에서 합니다.

그 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에 그릴 풍경은 눈에 많이 들어오고, 완성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서 대략적인 윤곽과 색채만을 완성하고, 급하게 돌아와 그 윤곽과 색채를 잊지 않으려 곧바로 작업에 몰두했을 그 심정을요.

당시 지베르니에서 집을 빌려 어느 정도 정착을 한 상태에 있었기에, 마음이 안정된 상태에서 이 이국 풍경의 완성에 손을 댔을 거라 짐작합니다.

그런데 이 여행 때의 모네의 고백엔 겸손이 들어 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한 남자분의 소개로 이곳에 오게 되었네… 그는 내 그림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내게 꽃이 만발한 이 넓은 들판을 보여주고 싶어했다네.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지만 이 가엾은 화가(모네 자신)를 미치게 만들고 있지. 이곳을 그림에 담기에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색채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네." (도록 중에서)

컬러사진이 없던 때고, 모네 자신 기억에 의존해서 그림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으며, 눈앞의 풍경은 호화롭기 짝이 없으니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림 속 튤립 밭 풍경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 풍경 안에 온갖 색채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청명한 대기와 하야디 하얀 뭉게구름의 하늘이 위 화폭을 차지하고, 다양하고 밝은 색채의 튤립 밭이 아래 화폭을 차지합니다. 그 사이 낭만적인 풍차와 농가가 하늘과 땅을 잇습니다. 그렇게 단색조의 하늘과 총천연색의 튤립 밭의 이분법 구도를 완화시킵니다.

"모네는 두껍게 채색을 하는 한편 빠른 붓 터치를 이용해 바람결에 일렁이는 듯한 튤립을 묘사했다. 이 그림에서 하늘은 상당히 밝으면서도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네덜란드의 끝없는 지평선과 대지의 광활함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모네>(창해) 중에서)

네덜란드는 지금 세계 최대의 꽃 수출국입니다. 자동화 온실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생산성이 아주 높다고 합니다. 물론 온실에서만 키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위 그림의 배경이 되는 지역, 레이덴과 할렘이라는 곳 근처의 사센하임은 지금도 튤립의 구근(알뿌리) 생산지역입니다. 봄이 튤립 꽃의 개화기인데, 모네가 네덜란드를 방문한 4월 말이 튤립 벌판이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합니다.

네덜란드의 헤이그에 있던 프랑스 대사관이 그를 맞이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 튤립의 전성기 때를 맞추어 총영사가 초대를 하였거나 아니면 모네가 그 시기에 맞춰 여행 일자를 잡은 듯싶습니다.

이곳에서 현재 세계 튤립 생산량의 80퍼센트인 1천만 송이가 생산된다고 하니 그저 놀랄 뿐입니다.

이참에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서양 미술사에서 미술 하면 네덜란드를 뺄 수 없습니다. 사실은 네덜란드에 대한 공부를 조금 했습니다. <네덜란드-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라는 책을 일독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자그마한 나라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술술 읽히게 쉽게 쓰인 책입니다. 네덜란드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한국인의 시각으로 정성껏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다음 기사부터 소개할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 기사에서도 이 나라를 조금 더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국토는 남한의 절반도 되지 않는 좁은 땅인데 전체가 거의 평지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국토의 상당 부분이 바다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서 예로부터 댐과 간척사업이 잘 발달했습니다. 네덜란드에 풍차가 발달한 이유도 물을 퍼내기 위한 용도로 풍차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라는 단어 자체가 '낮은 땅'이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이렇게 작은 나라인데 12개의 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의 공식 이름은 '네덜란드 왕국'입니다. 실권은 없지만 아직도 국왕이 존재하는 나라거든요(지금은 베아트릭스 여왕). 네덜란드를 흔히 '홀란드'라고도 부르는데 이 이름은 네덜란드의 주 이름(북홀란드, 남홀란드)에 해당할 뿐입니다.

네덜란드엔 특이한 점이 많지만 그 중에 몇 가지만 언급합니다.

우선 정치가 그렇습니다. 갈등과 충돌 대신 합의를 주된 방식으로 처리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연정 형태입니다. 1994년에는 좌파와 우파가 연합하여 중도파를 밀어내고 정권을 잡아(일명 붉은색과 푸른색의 중간인 '자주색 연정')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체로 정치인들은 청렴하고 검소합니다. 정치인들이 말을 잘하는 것은 오히려 흠이 됩니다. 이 나라 어느 정치인이 그랬답니다. 정치가 지루할수록 국민은 행복한 것이라고.

이 나라 사람들은 알뜰하기로 유명한데, 그러면서도 유럽에서 가장 국제원조를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돈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전문인력도 보내 도와줍니다. 자국의 이익에 맞춰 원조를 하는 것이라 인도적인 기준에 따라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자를 위한 합의와 관용이 잘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자기와 같은 문화와 종교를 지닌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경향이 짙은데(이것을 '지주화'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대 단체들끼리는 관용과 합의로 서로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합니다. 한때 경제위기가 있었을 때에는 노사가 합의를 해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인상을 줄이는 대신 고용 인구를 창출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도 다양한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즐긴다고 하는 편이 맞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메달 따는 일에 있어 목숨 걸고 하는 승부욕은 없습니다. 예전에 유럽 어느 나라의 한 교사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올림픽이 끝나면 다시 자기 직장에서 평상시대로 생활을 합니다. 올림픽에 참가하고 메달을 따는 것은 개인의 영예일 뿐이지 국가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하고 튤립 이야기를 조금 더 하지요.

튤립 꽃은 종 모양으로 줄기마다 한 송이씩 피는데 꽃잎 3장과 꽃받침잎 3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꽃은 잎 색깔인 푸른색을 제외한 다양한 색을 띱니다.

튤립은 중앙아시아 남쪽의 파미르 고원이 원산지일 것으로 추정하는데, 페르시아와 터키를 통해 16세기에 유럽으로 전해졌습니다. 꽃이 크고 화려한데다가 튼튼하게 잘 자라서 유럽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황금기 네덜란드에서 비싼 가격으로 매매되었던 화려한 튤립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사실은 모자이크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병균'에 감염되어서 그처럼 강렬하고 다양한 색상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 튤립의 역설이다. 새로운 종류의 튤립 구근을 만드는 데에는 6-7년이 걸리는데, 그나마 사람들이 원하는 환상적인 색깔과 강렬한 무늬의 꽃은 이처럼 병에 걸린 것이어서 만들기도 쉽지 않고 구근의 수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최상의 아름다운 튤립) 꽃일수록 바이러스에 심하게 감염된 것이었고 따라서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당연히 꽃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위 책 <네덜란드> 중에서)

그래서 17세기에는 꽃 한 송이가 집 한 채 값이 되는 튤립 광풍 현상도 일어났답니다.

위 그림이 그려지기 10여 년 전에 그 유명한 동화 <플랜더스의 개>가 발표되었는데, '플랜더스'라는 지역은 벨기에의 한 지방을 말합니다. '플랜더스'는 영어명이고, 원래는 '플랑드르'라고 합니다.

벨기에는 한 때 주변 강대국의 지배를 많이 받았습니다. 한때는 강대국에 의해 네덜란드와 하나의 국가일 때도 있었습니다. 플랑드르라는 지역은, 1839년에 벨기에가 독립되기 전에 프랑스의 영토이기도 했다가 네덜란드의 영토이기도 했습니다. 플랑드르는 그래서 나라의 일부분이라기보다는 지역 이름으로 유명합니다. '플랑드르 악파' '플랑드르 미술' 이런 식으로요.

어렸을 적 TV로 보았던 <플란더스의 개> 만화 속에서는 풍차가 나오고 우유 배달 장면이 나오고 주인공 네로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도 나옵니다. 마지막 삶의 순간에 네로는 자신의 늙은 개 파트라슈와 함께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명화를 마음씨 착한 성당지기 아저씨 덕분에 볼 수 있게 됩니다. 그 그림이 바로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플랑드르의 화가 루벤스의 '그리스도의 강림'입니다.

플랑드르는 루벤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플랑드르라는 곳은 예전부터 프랑스와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국경지방에 걸쳐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위 그림의 튤립 밭 근처에 있는 도시 레이덴은 17세기 네덜란드의 또 다른 위대한 화가 렘브란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이 루벤스와 렘브란트의 그림을 나중에 소개하겠습니다.

모네가 네덜란드에서 그린 그림을 감상하는 글을 끝으로 <'빛의 화가 모네'전> 그림 감상을 마칩니다. 이제 네덜란드로 더 가까이 가겠습니다.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의 그림들을 감상합니다.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여러 지역(특히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네덜란드를 포함해서)의 그림들이 그 대상입니다. 시대도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널려 있습니다. '오르세미술관전'과 '빛의 화가 모네'전과는 다른 세계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계속 저를 따라오실 거죠?
덧붙이는 글 <'빛의 화가 모네'전> : 서울시립미술관, 9월 26일까지. 02-724-2900, 월요일 휴관. 평일은 밤 10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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