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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팔고 막걸리값 받기 힘드네

막걸리 아줌마의 일기

등록|2007.09.09 09:16 수정|2007.09.09 14:09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는, 내가 막걸리 집을 연 지 이제 한 달 조금 넘었지만 벌써 대여섯 번 우리 가게에 오신 손님이다. 단골이라고 해야지 싶었다. 아저씨는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시고 잔뜩 취한 날에는 꼭 우리 가게에 들러 막걸리 한 사발을 그냥 공짜로 달라고 해서 마시고 가곤 한다.

며칠 전에도 아저씨는 일행들과 막걸리를 드시러 오셨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막걸리를 드시던 아저씨는 거의 다 드셨을 즈음 계산을 하겠다고 하셔서 계산을 끝낸 후, 다시 막걸리 반 주전자를 시키셨다.

이야기가 다 끝나고 문을 나서려고 하기에 "저기… 막걸리 반 주전자 값은 계산 안하셨는데…"라고 말을 했더니 대뜸 내게 큰소리를 치셨다.

"이 봐! 내가 막걸리 값 그까짓 것 떼어 먹을까 봐 그래? 나도 다 알고 있어 그까짓 3000원 다음에 주면 되지. 뭘 그걸 달라고 난리야? 나 다음부터 여기 안 와!"

그러더니 아저씨는 지갑을 열어서 만 원짜리 한 뭉텅이를 내게 흔들어 보이며 "봐,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러는 줄 알아? 사람이 그러면 못 써!"

참으로 황당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다며 이야기를 하니 다른 일행이 내게 막걸리 값을 주며 취하셨으니 이해를 하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시고 잔뜩 취한 아저씨 한 분이 우리 가게에서 맥주 한 병만 안주도 없이 달래서 밑반찬에 맥주 한 병을 드렸는데 그 아저씨가 일어서더니 자기도 기분 나빠서 술값을 주지 못하겠다는 게 아닌가?

너무나 기분이 나빠 아저씨에게 따지며 술값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끝내 못주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장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당해본 나는 이제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아니, 그 일을 생각하니 오히려 지금에서야 눈물이 나온다.

그냥 의자에 털썩 주저 않아 혼자 멍하니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술에 취했으니 그렇다고 다 이해해 보려고 날마다 노력을 해봐도 이렇게 황당한 일을 당하고 나면 사는 게 도대체 뭔지 회의가 든다.

이제 한 달을 겨우 넘겼을 뿐인데도 술을 마신 사람들로 인해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물론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걔 중에 한두 사람이 말썽을 일으킨다.

술만 취하면 우리 가게에 와서 막걸리를 시켜 놓고 늘 돈은 내지 않고 가는 아저씨는 다음날 일하는 곳에 돈을 받으러 가면 얼굴까지 빨개져서 죄송하다며 오히려 내가 민망할 만큼 고개를 숙이는가하면, 나랑 꼭 데이트를 해보겠다며 문에 적어놓은 전화번호를 적어가는 아저씨도 있다.

그런가하면 자신이 예전에 식당을 했었는데 냅킨 통이 많이 남았다고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건너편 중국집에서는 밥 한 공기를 사려고 하면 절대 돈을 받지 않고 다음에 부침개라도 달라고 하시며 마음을 써주곤 하신다.

아이들이 커서 이젠 필요 없다며 아이들 보던 동화책을 몇 박스씩 가져다주시는 분도 있다.

세상은 이렇게 따뜻한 사람도 많기에 오늘도 나는 막걸리를 팔며 웃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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