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굽이쳐 슬픈 길...고딕이 아닌 산성으로 이르는 길 ⓒ 학고재
시선이 예사롭질 않습니다. 첫 발자국 때부터 이런 진지함을 가질 수 없었음을 안타까워 하는 그 자리에서 김훈 선생님의 소설은 시작됩니다. 언제나 그렇지요. 스쳐 지나고 보면 미처 호명하지 못 했었던 그리움의 이름들, 견고한 돌틈을 성채라 부르는 지면에 몇 번인가 아쉬운 헛 쉼을 보였던 듯 싶습니다.
300여년 전에 너무나도 길게 펼쳐졌을 흙은 이젠 보이질 않습니다. 고요합니다.
폭염의 길을 가로질러 어렵사리 강남교보문고 근처에서 김훈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길거리 인파에 묻혀 자연스레 익명일 수 있는 모습이 왠지 낯설었습니다.
▲ 가까우면서도 멀다. 꼭 그 만큼이다.아마도 산성의 겨울에도 그만큼 아니었을까. ⓒ 송민석
-언제나 그걸 지키십니까.
"맘대로 못해. 좀 멀어지면 못 와, 힘들어서. 버리고 올 순 없으니까 차에 싣고 와야잖아. 그러니 체력의 반만 써야해. 나머지 반은 올 때 써야 하니까."
-그 거리를 벗어나면 거기서 머무르셔야겠네요.
"그래야지. 그럴려면 날이 저물기 전에 마을에 가야해. 해 떨어지면 무섭잖아. 서둘러 민가에 도착해야돼."
-마라톤에서 하프 대회에 참석했을 때와 풀코스에서 느끼는 하프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실 때에도 작정하신 거리에 따라 달라지시는지요.
"아니, 난 자전거 탈 때 속도에 대한 개념은 없어. 거리를 중요시 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마라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전에 조깅은 몇 번 해봤어. 마라톤은 지독한 인내심을 요구하잖아. 좀 멀리 뛸 때 가끔 개가 따라와 물려고 해서 그 뒤로는 아예 안뛰어. 시골에서 자전거 탈 때에도 큰 개가 따라오곤 해. 평지에선 괜찮지만 오르막에선 많이 힘들어."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면서도 미흡하면 갈등을 합니다. 참가여부에...
"얼마 전 겨울에 자전거를 타고 소백산맥을 넘을 때였어. 멀리서 하늘을 보니 흐리고 눈이 오고 무서워. 내가 저걸 넘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 무섭지. 그러면 그 날은 안가, 내 속에 두려움이 있으면 안가. 그 날은 여관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두려움이 사라지면 출발해. 무서운데 갈 순 없잖아."
-평상시 운동은 어떻게 하시나요.
"젊었을 땐 암벽등반을 했었어. 지금은 등산 밖에 못해. 손 끝의 힘이 달려서 암벽은 못 타."
▲ 탁자 하나만큼, 아득하다.다가오는 말들을 담아낼 수 없음의 궁지... ⓒ 송민석
"자기 나름의 처신은 있었지. 그리고 그곳(남한산성)에선 확신을 가질 수 없잖아. 성 안에서 확신을 가진 자들은 김상헌, 최명길이었지. 하지만 그들의 확신도 삶의 길이 될 수는 없었잖아."
-소설에서 광해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난 닫힌 성 안의 47일만을 그리고 싶었어."
-그래도 그 안에서 선왕에 대한 얘기가 오가지 않았을까요.
"글쎄, 하지만 난 광해군은 관심없어. 어떻게 보면 인격파탄자 아냐."
-제 개인적으로 인조라는 인물은 그닥 호감이 가질 않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인조는 나라를 구한 거야. 그 점은 인정해야 해."
-쉰고개를 넘어서 등단하셨습니다. 작가로서의 역량은 어떠신지요.
"타고난 거야 있겠어. 오랫동안 사람들과 세상을 관찰한 결과겠지. 아마도 내면을 읽을 수 있으니까 글을 쓰겠지, 그걸 놓치면 힘들거야."
▲ 가깝고도 먼 이름...눈빛, 그리고 생각이 궁금하다. ⓒ 학고재
"나의 소설은 나의 문체로 이루어져 있어. 문체는 물론 그 작가의 고유한 숨결이고. 그리고 내 글은 읽기 힘들 거야. 쉬운 글이 아니니까."
-앞으로 역사소설은 안쓰신다고 하셨습니다.
"더 이상은 힘들어 관심도 없고. 안중근? 너무 어려워서 어떨지 모르겠어, 힘들어."
끝은 여백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우리의 <길> 앞을 지나쳤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은 전설로만 남겨져 있습니다. 호명되어진 이름도 있겠지만 그대로 흙속에 묻힌 허다한 이름들도 우리 역사를 메꿔가는 크나 큰 흔적일 것입니다.
김상헌, 그리고 최명길….
그 축을 받쳐줬을 수많은 사람들은 그대로 익명입니다.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시간은 흐릅니다. 그 안에서 피톨은 온기를 유지할 것입니다. 역사(歷史)라는 굳건한 힘줄을 따라...
▲ 화석, 혹은 박제... 300여 년을 지나온 흔적 ,그 그림자. ⓒ 송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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