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것들에서 건져 올린 아름다움
오치균의 '진달래와 사북의 겨울전' 갤러리현대에서 9월26일까지
▲ 갤러리현대 입구에 부착한 오치균전 포스터 '시험공부' 2005년 작. 적막감 속에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 김형순
이번 전에는 파티션까지 설치하면서 전혀 다른 전시장에 온 것처럼 바꿔놓아 관객을 즐겁게 한다. 지난 8월에 이루어진 이 작업은 작가의 의사를 최대로 반영한 것이란다.
▲ '눈 녹은 사북' 캔버스에 아크릴 117×78cm 2006 땜질한 지붕과 작은 창문, 조금 큰 출입문 풍경 사이로 한 겨울에도 훈풍이 불어오는 것 같다 ⓒ 김형순
그의 그림은 오래 묵혀둔 것을 꺼내 그리는 것 같다. 1998년 아내와 정선을 우연찮게 지나다 본 사북의 모습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준 모양이다. '눈 녹은 사북' 같은 풍경은 작가의 가슴 속 품고 있었던 어린 시절 고향의 원형인지 모른다. 이곳은 80년 초 파업으로 언론에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은 망각되고 외면당한 이 폐광촌이 왜 작가를 사로잡았을까?
작가의 답을 갤러리에 준 자료에서 인용한다.
"또 설명해야 하나. 사북에는 가난과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것들의 아름다움도 있다. 사북에서는 그 부조화한 빨강과 파랑이 내 가슴을 때렸다. 녹슨 양철 지붕 위에 눈처럼 쌓인 탄가루는 아름다웠다."
'제도 속에서 그림을 그리지 못 한다'고 작가도 말했지만 이 말 속에 작가의 취향과 기질이 엿보인다. 서울미대 시절, 그와 함께 다닌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단다. 그는 이렇게 이탈자였고 또한 열외자였다. 그런데 요즘 거꾸로 서울옥션 경매에서 '북악산 풍경(1991년 작)'이 1억4천에 낙찰돼 블루칩작가의 대열에 들어섰다니 놀랍다.
마음의 추위도 녹일 것 같은 불빛
▲ '밤 골목' 캔버스에 아크릴 117×78cm 2007처연한 언덕길이 그지없이 다정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다 ⓒ 김형순
그의 화풍은 단순하나 장중하여 황홀감에 빠지게 한다. 탄광촌의 언덕길과 삶의 고단함이 어찌 보면 작가의 고단함과 통했는지 모른다. 이런 거칠고 두꺼운 물감은 그런 폐허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순간적인 생동감을 잡아내고 강력한 생의 원동력을 포착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눈 내리는 밤 II' 캔버스에 아크릴 131×87cm 2007 장엄한 아름다움이 관객을 압도한다 ⓒ 김형순
박수근 연상시키는 화풍
▲ '장독' 캔버스에 아크릴 117×78cm 2006소박한 장독대, 바랜 벽, 작은 창 불빛, 눈 덮인 지붕이 사람들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 김형순
그의 작품은 수집가들이 노리고 있고 박수근 못지않게 상한가를 칠 낌새가 뚜렷하다. 평생 마치 굴속에 갇힌 구도자처럼 지겹도록 작가로 그림만 그려온 그에게 마땅히 받아야 보상인지도 모른다.
아래 사북에 핀 진달래를 그린 '봄나들이'를 보면, 우리가 어디서나 흔히 보는 진달래지만 어쩌면 저리도 애절한 빛깔로 오롯이 화폭에 담을까 싶다. 그림 속에서 뿜어내는 색채와 풍성한 서정이 개울처럼 흐른다. 여기에선 어떤 얘기로는 풀 수 없는 삶의 격랑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 '봄나들이' 캔버스에 아크릴 70×140cm 2006흔히 보는 진달래지만 이렇게 애틋한 빛을 드물 것이다 ⓒ 김형순
그의 그림을 보면 예술이란 정말 마음에 치유를, 정신에 자유를 주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산등성에 소나무가지 사이로 핀 진달래의 흐드러진 모습은 처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산에서 짙게 풍겨 나오는 흙내음, 꽃향기가 관객의 마음도 녹여버리는 것 같다.
틀에서 벗어난 시선
▲ '브로드웨이' 캔버스에 아크릴 316×145cm 1994뉴욕시대 그린 것으로 활기찬 거리에 외로운 군중들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 김형순
사실 그가 인종공화국 같은 뉴욕에서 척박한 생존경쟁의 아귀다툼을 맛봤기에 사북에서 버려진 것, 쓰러져가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건져 올릴 수 있었고, 숨어있는 생명의 약동을 발견하고 감격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이렇게 한 작가로서 어떤 틀에서 벗어나 길들여지지 않는 시선으로 세상을 봤다.
본질에 충실하기
그렇게 그의 작품이 주는 진정성과 맞닥뜨리면 우리가 빠지기 쉬운 탐욕, 집착, 아집, 편견, 독선, 속물근성 등도 무용지물처럼 녹아버린다.
이상하게도 그의 그림에서 보여주는 삶의 고단함은 사람들 마음에 무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벼운 분위기를 주면서 거꾸로 편안함과 평화로움이라는 선물도 내민다.
그는 세상과 매끈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단언하면서 그림을 그릴 때 세인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다만 미의 본질에는 충실하려 애셨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그림을 보면 뭐라고 꼬집을 수는 없어도 "이게 정말 그림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외골수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엉뚱하고 대열에서 스스로 벗어나기를 즐겼던 오치균이 대중과 소통을 하며 이슈작가가 되는 데는 무려 30년 이상이 걸렸다.
소리 없이 쌓이는 삶의 퇴적을 온 몸으로 비비듯 그려온 전업작가 오치균, 그는 스스로 민중작가를 부인하는 진정한 민중작가인지도 모른다.
▲ 오치균작품 앞에 선 작가 ⓒ 갤러리현대
1997년 귀국, 경기도 광주에 작업실을 둔 전업 작가로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작가 중 하나다. 그만의 독특한 질감과 구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번 전을 계기로 '진달래와 사북의 겨울' 오치균의 화집 '뉴욕∙서울', '산타페∙봄∙감', '사북' 3권도 출간했다.
그는 7~8년 전부터 헬스로 울퉁불퉁 근육을 키웠고 머리도 짧게 깎았다. 영화 '파피용'의 감동을 받고 상반신엔 나비문신도 새기는 엉뚱한 일면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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