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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 신당'은 성공 힘든 도박정치

[주장] '정몽준 전철' 밟지 않으려면 신당 경선 참여해야

등록|2007.09.10 09:30 수정|2007.09.10 11:23

▲ 문국현 대통령예비후보.(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8월 23일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기자가 김헌태 전 소장을 취재한 기사를 게재했을 때만 해도 관심이 없어 기사를 읽지도 않았다. '기업의 사장했던 사람이 아무런 정치적 경험도 없이 어떻게 신데렐라를 꿈꿀 수 있단 말인가, 유시민 의원의 말대로 정치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8월 24일 새벽 우연히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온 문국현 예비후보의 인터뷰를 들었다. 거침없는 그의 답변에서 내공이 느껴졌다. 약간은 학자 같고 때 묻지 않았으면서도 정치판에서 파이팅이 준비된 사람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한 강한 충격을 받았다. <마법에 걸린 나라>에서 예견한 올 대선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바로 그 주인공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책의 관련 구절을 일부만 옮겨 놓겠다.

"금융위기가 촉발된 한 원인이 세계화였는데 IMF의 처방에 따라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양극화, 성장이데올로기의 지속 등 구시대 담론을 완전히 벗을 수 없었던 것이 참여정부가 담론경쟁에서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다." - 68쪽

"현재 우리 사회가 갈등적이고 혼란스러운 것은 사고의 체계(패러다임)가 다른 두 세력이 팽팽하게 대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그러한 경쟁의 한 가운데에서 벌어진다. … 이번 대선은 덧셈정치가 성공요인 될 것이다. 이 때의 덧셈은 현역의원들의 통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이미 당 안팎으로 신뢰를 잃었다.

덧셈 정치의 핵심은 사회의 여러 집단과 지지 세력을 하나로 묶어내는 데에 있다. 당 밖에 국민후보 추대 움직임에서 오히려 동력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덧셈정치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통합을 위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 256~257쪽

"양극화가 가장 큰 정치의제로 등장하면서 이제 국민들은 경제적인 진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본다. 2002년 대선이 정치적 진보를 세력화하는 선거였다면 2007년 대선은 경제적 진보를 세력화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보수화하는 것은 진보담론은 사라지고 보수담론만이 횡행하기 때문이다. 진보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잠재적 지지자를 동원해 내자. 정치의 핵심은 잠재적 지지자를 동원해 내는 데에 있다." - 274쪽

"다음 대선에서는 비주류 연대인 민주세력대연합이 아닌 주류와 비주류를 아우르는 진보세력대연합이 필요하다. …이제 진보세력은 '공정한 경쟁'과 '사회적 책임'을 내걸고 보수세력은 물론이고 좌파세력과도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 - 27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의 경쟁력은 매우 중요하다. 굳이 후보를 고른다면 언론의 기획 마케팅에 의해 뜬 사람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특히 언론의 마케팅 없이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력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게 된 후보를 발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사람은 언론의 공격에 거품이 빠질 우려도 없지만 어떤 혹독한 검증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 282쪽

"민주신당이 정당으로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후보선출이나 지분 싸움이 아닙니다. 비정규직법안의 통과로 인해 고통 받는 비정규직자의 현황은 얼마나 되는지 이들을 고통으로부터 어떻게 구할 것인지 부터 시급하게 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신당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cafe.naver.com/chomagic에 게재된 8월 20일자 칼럼 '열린우리당 합당과 관련한 사과의 말씀'에서)

금광맥을 건드린 문국현

위의 책이나 칼럼을 쓸 때, 문국현 후보는 마음 속에 0.1%도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시대정신을 선도하는 현명한 대중의 잠재적 욕구를 읽고 원칙을 말했을 뿐이다.

지금의 여론조사는 믿을 게 못 된다. 한나라당 경선 중 당내 투표에서 우리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은 박근혜 후보의 승리를 예견하지도 못했다. 여론조사의 결과와 투표에는 항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는 누가 해변가에 떨어진 동전을 더 많이 주을 것인지를 측정한다면, 투표결과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누가 올 대선의 금광맥을 건드릴 것인지를 예견해야 한다. 즉, 시대정신을 정확이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수의 네티즌이 문국현 후보를 접하고 감동한 이유는 문국현 코드가 바로 그 광맥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중심의 진짜경제', 그는 이번 대선의 구도를 이미 결정해버린 것 같다.

문제는 정치세력화다. 최근 문 후보가 보여준 일련의 발언과 행보는 기대를 실망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국민에게는 후보의 자질이나 비전도 중요하지만 그 비전을 실행할 현실적 수단이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금광맥을 발견했지만 이를 캘 아무런 장비가 없다면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일기가 불순하고 칠흙같이 어두운 날 높은 산에 올라가야 하는데 헬리콥터를 타고 가겠다는 지도자가 있다면 도박을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비록 후발주자이지만 만반의 준비를 갖춰 지혜롭게 빨리 등반하는 방법을 안다고 한다면 오히려 더 많은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에는 신기루가 없다. 지난 대선에 노무현 바람이 불었던 것은 그가 정치인으로 십 수년간 보여준 인생역정이 진실했고, 수십 년 민주화 투쟁을 이끌어온 정당조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국현은 이제 검증받기 위해 대중 앞에 선 정치 초년생 일 뿐이다. 그의 삶이 진실했다 하더라도 정치력은 아직 검증 받은 바 없다. 대통령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해다. 민주국가의 대통령은 국회와 야당, 이익집단과의 끊임없는 대결 속에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자리일 뿐이다.

문국현, 금광맥 캘 수 있는 '정치력' 있나

▲ 2002년 11월 16일 당시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가 TV토론과 국민 여론조사를 뼈대로 한 후보단일화 방안을 놓고 극적 대타협을 이뤄낸 뒤, 포옹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문국현 후보는 2002년 대선의 노무현 후보보다는 '정몽준 현상'에 비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정 후보가 한나라당을 포함해 기존 정당에 식상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다면, 문 후보는 여권과 진보진영에 식상한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2002년과 2007년은 다른 점이 더 많다. 따라서 문 후보는 정 후보가 얻은 지지만큼도 얻어내기 어렵다고 본다.

2002년 대선은 정치에 대한 불신과 반정당 정서가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치러졌다. 민주당은 물론이지만 한나라당도 정당을 전면에 내세우지 못한 채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정치개혁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결과, 지금은 반정당 정서도 극복되었고 정치에 대한 만족도는 아시아 꼴찌에서 1등으로 반전되었다.

지금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50%를 상회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지지가 낮았던 것은 정체성과 성과가 없기 때문이지 2002년과 같은 무조건적 정치 불신 때문이 아니다.

정몽준 바람은 지지하는 기존 정당이나 후보가 없는 유권자가 50% 이상 달하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4선의원의 관록과 그 해 6월 월드컵신화의 한 가운데 있었기에 정 후보는 후보단일화를 요구할만한 지분을 갖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 한나라당 경선 전에는 지지하는 후보가 있다는 유권자가 80%에 달했다. 그 중 75%는 지지후보를 바꿀 의향이 있다고 했다. 이는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은 별로 없지만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후보를 발견하지 못해 나타난 기이한 현상이라고 본다. 따라서 문 후보가 전략만 제대로 세운다면 부상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문 후보의 신당구상은 2002년 정몽준 후보보다 더 큰 실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 후보가 당시 민주당에 입당해서 노무현 후보와 국민경선을 치르고 검증에서 살아남았다면 정 의원이 민주당의 후보로 당선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정 후보는 신당을 창당하고 여론 지지도에서 앞서는 것을 이용해 여론조사로 승부하는 쉬운 길을 택했다.

문 후보가 신당 창당으로 정몽준 후보처럼 막판 단일화를 꿈꾼다면 그건 도박정치일 뿐이다. 신당의 경선이 끝나면 여권의 지지자 결집이 이루어져 문 후보는 단일화를 요구할 만큼의 지분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국현 실험'은 찻잔 속의 미풍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문 후보가 진정으로 큰 꿈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신당의 경선에 참여해야 한다고 본다. 신선함을 유지하고 싶어 외곽에 머무른다면 그 용도로만 쓰이고 폐기될 것이다. 현실정치는 진흙탕에 두 발을 담그고서도 자신의 가치와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뚝심을 보여줄 때 빛을 발한다.

다수제 선거법이 갖는 현실정치의 한계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만일 문 후보가 독자 출마를 고집한다면 2000년 대선에서 고어에게 패배를 안겨준 랄프 네이더가 돼 역사의 죄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문국현이 대통합신당 경선에 참여해야하는 이유

현재 신당의 경선규칙은 선발 주자들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어 결심이 쉽지 않을 것이다. 문 후보는 신당과 경선규칙을 원점에서 협상해야 한다. 신당이 규칙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는 이유는 현 규칙이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를 도입하기 위해 당헌을 고친다는 것은 정당과 선거정치의 상식을 저버린 패착이다. 현 규칙의 본질적인 문제는 지역별 대표성이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이것만 수정하면 여론조사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특히 과반수 득표를 못한 후보가 본선에 진출하도록 다수제를 채택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결함이다. 한나라당도 경선규칙의 불합리성 문제로 현재 당의 단합이 불가능한 상황인데 신당도 한나라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02년 민주당 경선처럼 선호투표를 허용하고 과반수 득표자가 최종 후보가 되도록 규칙을 바꿔야 한다. 그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미국식 경선 규칙이라도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국민들이 현실 정치에 염증을 느낀다 하더라도 정치력을 담보하지 못한 정치인은 신뢰하지 않는다. 박찬종, 고건, 정운찬 등 수 많은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특히 2007년은 2002년보다 신당이 뜨기 더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정치가 안정돼 가면서 의외의 변수가 변화를 가져오기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신당과 협상을 통해 공명정대한 경선규칙을 만들고 기존정치세력과 연대함으로써 정치력을 증명하는 것이 문 후보가 정치인으로서 통과해야 할 첫 번째 관문이라고 생각한다. 문후보의 현명한 판단과 신당의 살신성인의 자세를 동시에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cafe.naver.com/chomagic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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