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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들 복잡하게 사는가?

추리무협소설 <천지> 269회

등록|2007.09.10 09:05 수정|2007.09.10 09:08
함곡은 생사림의 진을 조금씩 파괴하며 다가오는 용추일행을 보며 약간은 초조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네. 동림당원들의 제거에 앞장섰던 철담어른 같은 사람이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었겠나?”

“물론  자네 같은 사람이야 더욱 선뜻 믿지 못했겠지.”

풍철한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멀리서 다가오는 용추일행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대답했다.

“하지만 자신이 죽는 그 순간부터 이 거사가 시작된다는 말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네. 나 역시 당금의 목표가 있다면 바로 회의 붕괴였으니 더욱 달콤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죽음 운운도 믿을 수 없었지.”

“그렇다면 철담어른의 죽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네가 움직인 것인가?”

“아니네.... 바로 목갑이지. 목갑은 보주를 통해서 보내기로 했다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성곤어른이 보낸 것이지. 물론 나는 지금도 성곤어른이 이 모든 거사계획을 보주께 말씀드렸다고 믿고 있네. 보주가 지금까지 어떠한 일에도 간섭을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네.”

“............?”

“철담어른은 나에게 약속했네. 보주는 회갑연이 열리는 날까지는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아마 내가 이 운중보에 들어와서 보주가 움직였다면 나는 모든 계획을 접고 이곳을 어떻게 나갈 수 있는지 궁리했을 걸세. 처음에 이 운중보에 들어와서 당황했던 것이 바로 보주가 우리에게 철담어른의 죽음을 조사하라는 것이었고, 보주가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긴장했었던 것도 사실이네.” 

보주는 나서는 듯 보이다가 모든 사건의 조사 및 해결을 풍철한과 자신에게 일임하는 듯한 의도를 파악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철담의 약속은 철저하게 이행되었고, 다만 그 중 두 명이 문제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철담어른이 죽은 것은 반드시 자네의 도움을 받고자 했던 것인가?”

“그것은 철담어른이 스스로 죽고자 했던 이유 중에서 아주 사소한 것이었겠지. 철담어른이 죽고자 계획을 세운 것은 바로 회의 수뇌인 상만천과 추산관 태감을 이곳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네.”

“아........!”

그제야 깨달은 듯 풍철한은 탄성을 터트렸다. 회의 붕괴는 머리 하나가 아니라 세 개를 동시에 제거해야만 가능하다. 어차피 죽으리라 결심하고 있었던 철담의 죽음은 그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결정적 미끼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추태감의 심복인 신태감을 서둘러 죽인 것도 추태감이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함이었군.”

“그렇지.”

“신태감은 누가 살해한 것인가? 옥음지를 익힌 인물이 누구인가?”

풍철한의 질문에 함곡은 잠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좌중의 시선이 자신의 입에 쏠려있는 것을 보고 마지못해 대답했다.

“백도라네.....”

“백도......?”

“백도로서는 신태감을 죽일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지. 아니 동창의 인물이라면 반드시 죽여야 할 이유가 있다네. 그의 부친이 동창에 당했으니까... 물론 죽은 홍교와 당화의 도움이 없었다면 간단한 일은 아니었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능대협 역시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이제야 상황이 확연하게 눈앞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백도가 옥음지를 익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능효봉까지도 이 일에 처음부터 개입하고 있었던 사실 또한 놀라웠다. 신태감 주위에서 발견되었던 능효봉의 흔적 또한 이제 이해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철담..... 아니 자네의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네. 벌써 삼수검 엽락명이 배반하지 않았나? 배반이 아니라 본래 그런 의도로 끼어든 것이겠지만 그 역시 혈서에 피로 서명하고 장인을 찍은 인물이네. 그로 인하여 나는 사소한 것까지 다시 점검해야 하는 곤경에 처하고 있네.”

이미 엽락명의 배신은 부상으로 아직까지 한쪽 나무 등걸에 기대어 심상치 않은 숨을 쉬고 있는 곽정흠을 보면 배신이 확실했다.

“더구나 문제는 보주의 대제자 장문위라네.....”

함곡이 탄식을 터트리며 말을 하자 풍철한이 놀라며 되물었다.

“장문위까지......?”

함곡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문위는 배반을 할 인물은 아니지만 이 거사를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인물이네. 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몰려있네. 무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주의 뒤를 이어 이곳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절박한 선택이지. 그렇지 않다면 그의 가문은 송두리째 화산으로 넘어갈 판이니까.....”

“만권문(卍拳門)의 문주인 철권(鐵拳) 장혁(蔣爀)이 문파의 모든 것을 걸고 모험을 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았다면 화산이 장문위를 위해 움직여 주었을 것 같은가?”

“정말 어리석은 선택이었군.”

“무림에 뿌리도.... 그렇다고 피로 동맹을 맺을 만한 문파도 가지지 못한 철권으로서는 피치 못할 선택이었겠지. 섬서의 패자라고는 하나 우후죽순처럼 자라나 자신을 위협하는 신흥방파를 억누르기도 벅찼을 테니 말이야.... 운중보의 후계는 곧 무림의 주인이네....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도박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도 할 수 있지.”

그 심정은 그 위치에 있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다. 어떠한 범위 내에서 최고의 위치를 고수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두 번째로 밀려나는 순간은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

사람의 욕심이란 이렇다. 내실을 다지며 기회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성급히 승부를 던진다. 더욱 어리석은 것은 준비 안 된 성급한 승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일이다. 현명한아니 참을성이 깊은 자는 결코 성급한 승부에 모든 것을 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다행히 보주는 지금 다섯 제자들을 운중각으로 불러들여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네. 나를 돕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당신의 제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의미겠지만, 역시 보주는 무서운 사람이네.”

“그렇군..... 다섯 제자들이 지금 움직이고 있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하고.... 사형제 간 칼을 맞대는 골육상잔(骨肉相殘)이 벌어졌을 테니까......”

풍철한은 입맛이 썼다. 왜 이리들 복잡하게 사는가? 그저 이리저리 즐겁게 보내도 한 평생 살기 부족하지 않은가? 인간의 욕심이란 정말 끝이 없다. 그것이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종종 인간으로서는 저질러서는 안 되는 악행을 저지르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쇄금도와 진가려를 죽인 사람은...? 그리고 왜 쇄금도를 죽여야만 했나?”

어느새 풍철한은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함곡임을 전제하고 묻고 있었다. 이 모든 사건이 함곡과 죽은 철담이 만든 것이 확실하게 밝혀진 이상 그것은 잘못된 생각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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