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할미'가 지켜주는 우리동네 약수터
콸콸 다시 쏟아지는 물의 축복
▲ 족쇄가 풀린 공동우물수질검사에 합격 ⓒ 송유미
▲ 숲이 있는 동안 약수터는 무사하겠지.고마운 물소리 ⓒ 송유미
우물에는 생명력과 정화력, 부정을 물리치는 힘이 있고, 여성적 생산력의 상징이라는 믿음이 있다. '물할미'는 '산할미'와 함께 노고 신앙을 형성하고 있다. 물할미는 노적봉 전설에 나타나듯이 권능으로 외적을 쫓는 지역 수호신이기도 하고, 약수 신앙과 연결되어 섬김을 받고 있다.
약수는 신령스러운 물이라는 관념을 표상하는데, 바리공주의 생명수라는 신화적 관념에서 퇴화된 것이다. 샘과 약수 등에 담겨 재생력과 생명력은 물을 용의 집이자 정기로 간주하는 용신 신앙에서 엿볼 수 있다.
옛날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은 우물터와 약수터에서 촛불을 밝혀두고 물의 깨끗함과 신성함을 빌었다. 우리 동네 족쇄가 채인 약수터가 콸콸 다시 쏟아지는 것은 유독 할머니들이 많고, 이제나저제나 물이 다시 콸콸 쏟아지길 기원하는 기도의 힘이 큰 것이다.
▲ 폐쇄된 우리동네 우물다시 펑펑 샘이 솟구치길 바라며. ⓒ 송유미
우물은 저 은하수까지 이어지는 신령한 물의 원천이었다. 이제 각 가정마다 수도꼭지만 틀면 되는 수돗물은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없다. 아파트 높은 옥상에 물탱크도 사라진 요즘. 물은 우리의 생명의 원천이며 하루를 이어주는 양식이지만 우리는 물에 대한 고마움도 또 한 그릇 물에 대한 기도도 잊고 산다.
▲ 축복의 약수터촛불을 밝힌 마음에서 쏟아지는 물의 축복 ⓒ 송유미
"저 사람은 너무 물처럼 착해 빠졌어", "저 사람은 물에 물 탄 듯 희미해", "저 사람은 물맛이야", "저 사람은 너무 물처럼 맑아서 이 세상에 살기 힘들지…" 등 사람이 좋은 사람을 이를 때 '물'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더러운 물에 놀면 더러운 사람이 되고, 흙탕물에 놀면 나쁜 사람이 되고, 밝은 샘물에 놀면 물처럼 맑은 사람이 된다.
옛 사람들은 제사 때는 '물 한 그릇'을 올려놓았다. 요즘은 '물' 대신 '술'을 대개 쓴다. 생전에 술을 마시지 않았던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술을 올린다. 이때 술은 음주용이 아닌 정화수의 대체적 변이로 볼 수 있다.
▲ 물을 받아가는 시간표행복한 물한그릇의 소중한 시간 ⓒ 송유미
그러나 도심에서도 시골에서도 '물 한 그릇'도 얻어 먹을 수 없다. '물'도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 물처럼 흔한 인심은 고갈되었지만 우리 동네는 아직 박수치듯이 쏟아지는 축복의 약수터가 다시 부활되었다.
나는 그동안 목이 말랐던 사막의 낙타처럼 아주 큰 물통을 하나 사들고, 아주 오랜만에 콧노래를 부르며 숲 속의 '오아시스'를 찾아 나선다. 산모퉁이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 윤동주의 '자화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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