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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섯살, 너 몇살이야?" "나 세 살"

악동(?) 호연이 키우다보니 부모님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요

등록|2007.09.12 14:20 수정|2007.09.12 16:13

호연이는 세살!피아노 위에 앉은 호연이 ⓒ 이민선

세상모르고 쿨쿨 자고 있는 호연이 녀석 얼굴이 얄밉다. 밤새 잠 못 들게 괴롭혀 놓고 혼자 만 편안하게 큰대자로 자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잠과 씨름하느라 곤혹을 치르다 보니 거울을 보면 얼굴이 항상 까칠하다. 밤에는 어떡하든 잠을 자려고 호연이와 씨름하고 아침에는 어떡하든 일어나기 위해 자명종과 씨름한다.

세살 호연이 취침시간은 새벽 세시경이다.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새벽 세 시까지  놀아달라고 보채는 것이다. 때론 그런 호연이가 반갑기도 하다. 늦은 시간에 귀가할 적에 호연이가 잠 안 자고 있다가 “아빠” 하고 달려오면 하루의 피곤이 싹 가실 정도로 반갑다.

손에 부스럭거리는 비닐봉지가 들려 있으면 “아빠” 소리는 집안이 울릴 정도로 커진다. 맛있는 것 사왔다는 것을 눈치 빠른 호연이 녀석이 금세 알아 챈 것이다.

호연이가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한 것은 첫 돌 직전이다. 그때부터 집안에 있는 물건 중 깨지기 쉬운 것은 모두 높은 곳으로 이동했다. 작은 화분, 커피잔 등. 악동(?) 호연이 녀석 취미는 손에 잡히는 물건마다 망가뜨리는 것이다.
작은 그릇 등에 담긴 내용물은 방바닥에 몽땅 쏟아놓은 다음 손바닥이나 발바닥으로 뭉개 버린다. 또, 작은 전자 제품은 분해해서 못 쓰게 만들어 버린다. 집안에 있는 손전등이나 충전기 등을 분해해서 사방에 흩뜨려 놓은 탓에 부품을 찾지 못해 못 쓰게 된 물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요즘에는 한 술 더 떠서 집안에서 암벽등반(?)까지 한다. 처음에는 만만해 보이는 피아노에 기어 올라갔다. 낑낑 거리며 피아노 의자에 올라간 다음 위태위태하게 피아노 정상을 정복한 후 “아빠, 엄마, 누나” 를 연달아 부른다. 자기를 보아달라는 것이다.

이럴 때는 아들의 용감무쌍함을 칭찬해 주고 싶지만  ‘꾹꾹’  눌러 참으면서 살짝 나무란다. “이 녀석 위험하게 피아노 위에는 왜 올라갔어? 올라가면 안돼 알았지? 떨어지면 아야 하잖아!” 라면서.

피아노 위에 오르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요즘은 책장 위에 올라간다. 꼭대기가 천정까지 닿아 있는 키가 큰 책장이다. 암벽 등반가들이 암벽에 매달려 올라가듯이 호연이도 책장에 매달려 아슬아슬하게 정상까지 오르락  내리락 한다. 김치 냉장고도 호연이 놀이기구다. 의자를 밟고  올라간 다음 바닥으로 폴짝 뛰어 내린다.

악동(?) 호연이 집안에서 암벽 등반까지

▲ 책장등반(?)하는 호연이 ⓒ 이민선

호연이 녀석은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는지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행동을 해서 놀라게도 하고 배꼽잡고 웃게 하기도 한다.

모처럼 외식을 하기 위해 한 식당에 들어갔을 때다. 우리 가족은 외식할 때 음식 종류도 따지지만 그보다는 놀이터가 있나 없나를 더 따진다. 놀이터가 없으면 음식이 웬만큼 맛이 있어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

놀이터가 없으면 호연이 녀석 등쌀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 식당 안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녀석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면 공연히 밖으로 나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놀이터가 있으면 훨씬 수월하다. 어른들이 밥 먹을 동안 놀이터에서 혼자 놀게 한 다음 식사 후에 잠시 짬을 내어 밥 몇 술 떠먹이면 된다.

“나 다섯 살, 너 몇 살이야?”
“나 세 살.”

이 말을 듣고 우리 가족은 모두 배꼽을 잡고 쓰러졌다. 식당 한 편 놀이터 작은 미끄럼틀 위에서 고만고만한 녀석들 둘이 옥신각신하는데 그 중 하나가 호연이였다. 아마도 미끄럼틀에서 서로 먼저 내려가겠노라며 옥신각신하는 듯했다. 덩치가 월등히 차이가 났으면 자연스럽게 질서가 잡혔을 텐데 서로 비슷하다 보니 세력균형(?) 이 이루어져서 시비가 붙은 모양.

호연이와 시비가 붙은 꼬마가 다섯 살이라며 손가락을 쫙 펴자 호연이도 질세라 손가락 세 개를 쫙 폈다. 호연이는 태어날 당시 4.8 kg의 우량아였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한두 살 위 꼬마들과 비슷할 정도로 덩치가 큰 편이다.

김치냉장고 위에서.호연이를 위해 담요를 깔아놓았다. ⓒ 이민선

나이로도 승부가 나지 않자 두 녀석은 급기야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서로 멱살을 움켜쥐고 힘겨루기로 들어간 것이다. 이쯤해서 말릴까 하다가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흥미진진했으며 누가 이기고 지든 다칠 위험성이 없어 보였다.

힘겨루기를 하다 말고 호연이 녀석이 상대 꼬마를 뿌리치며 갑자기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다. 아마도 힘에서 밀린다는 느낌이 들었던 듯싶다. 키는 비슷해도 밥 그릇 수가 딸리다 보니 힘에서 밀렸을 것이다.

미끄럼틀에서 내려오자마자 호연이는 쏜살같이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힘에서는 밀렸지만 어찌됐든 미끄럼틀에서 먼저 내려온 것은 호연이였다. 5살 꼬마 녀석은 기분이 몹시 상했는지 우리 가족이 있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모습을 보며 아이들 세상이 어른들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거론하며 우위를 인정받으려 하는 것은 우리나라 어른들 다툼의 현장과 똑같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그것을 어디서 보고 배웠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사내 녀석들이 처음 만나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도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른들은 근육의 힘을 겨루기보다는 재산이나 지식으로 겨루려 한다는 것이다.

계집아이 하영이(10살)를 키울 때는 또래 아이들과 다투는 광경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첫 대면에서 힘겨루기 하는 장면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식당에서 만나든지, 놀이터에서 만나든지 오래 알고 지낸 아이들처럼 사이좋게 놀았다.

호연이를 보면서 사내 녀석들은 계집아이들과 태생부터 다른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훨씬 경쟁적이고 거칠며 고집 세고 제멋대로다. 그래서 키우기가  더 힘들다. 악동 호연이를 보면서 아들인 내가 누이들보다 부모님에게 훨씬 더 잘해야겠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어머니, 고집불통 막내아들 키우느라 고생 많이 하셨어요” 라고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마음 전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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