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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부는 논술열풍, 학교·교사·학생 우왕좌왕

유치원생까지 논술학원 다녀...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 필요

등록|2007.09.12 09:43 수정|2007.09.13 07:41
대한민국에 논술열풍이 불고 있다. 그러나 실제 학생들이 제대로 된 논술교육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 논술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고, 공교육에서 올바른 논술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말]
"가희야! 오늘 우리집에서 떡볶이 먹고 놀자!"
"와! 정말? (잠시 고민하다) 가고는 싶은데 … 논술학원에 가야 해."
  

초등학교 2학년인 두 친구의 대화이다. 김가희(가명)양은 평일에는 수학, 영어, 태권도 학원을 다니고 주말인 토, 일요일에는 국어전문학원에서 논술공부를 한다. 가희같이 자녀를 논술학원에 보내는 한 초등학생의 부모(경기도 용인 거주)는 그 이유에 대해 "벌써부터 대학입시를 염두해 논술학원을 다니게 하는 것은 아니에요"라면서도 "그렇지만 논술을 배우면 학교에서 발표도 잘하고, 받아쓰기 점수도 잘 받아오고, 또 사고력도 풍부해질 테니 시험성적도 좋아지지 않겠어요?"라고 말한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논술열풍이 불고 있다. '논술'이라는 이름을 붙인 책과 참고서는 불티나게 팔리며 논술학원, 학습지를 접하는 아이들도 점점 늘어간다. 그리고 그 대상은 대학입시를 앞둔 고3학생부터 초등학생, 심지어 유치원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초등 고학년은 이미 늦어...논술학원엔 '유치부' 성업 중!

▲ 입시를 앞둔 고3뿐 아니라 초등학생, 유치원생까지 논술학원을 다니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청주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 학교앨범 ⓒ 청주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 학교앨범


사교육의 메카인 서울 강남에서 논술학원 강사로 있는 A씨는 "강남에서는 초등학교 5, 6학년 때 논술을 공부하는 것도 늦었다는 인식이 많다"며  "주로 초등학교 2, 3학년부터 논술공부를 시작하는 편이고 유치부가 개설되어 있는 학원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학생들은 1주일에 1권씩 지정된 책을 읽어야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데 이것도 간신히 읽고 있다"며 "아이들이 여러 학원을 다니느라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읽을 시간이 없는 것 같다. 이 때문인지 수업을 잘 받아들이고 참여도도 높지만 다양한 관점에서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모자란다"고 설명했다.

▲ 학교를 마치고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 요즘 초등학생들은 학교가 끝나도 학원에 가느라 마음껏 놀 수 없다. ⓒ 김미정



고3,  '논술'준비에 우왕좌왕

논술이 가장 걱정되는 건 대학입시를 앞둔 고3 수험생들이다. 7일부터 시작된 2학기 수시모집 뿐 아니라 정시에서도 논술은 합격을 좌우할 중요한 반영요소이다. 그러나 체계적인 논술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 및 교사는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광주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A양. "논술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나"라고 질문하자 "논술을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 몰라 학교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듣고 싶었다"며 그러나 "학교에서 성적이 높은 20명 가량의 학생들만 대상으로 따로 논술수업을 한다. 처음에는 친구들도 모두 억울해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시 2학기를 준비한다는 부천의 또 다른 고3 B양. 여러 대학의 입시설명회에 참석한 그는 "각 대학 입학관리처장도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논술'이었다"며 논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여름보충수업 때 학교에서 논술반이 개설됐지만 신청인원이 적어 폐강됐다"며 "사실 논술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고 친구들도 대부분 공부 잘 하는 애들만 준비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런 친구들은 따로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의 재학중인 C(21)씨. 재수를 하며 수시를 준비했던 그는 주요 전형요소인 논술을 위해 서울 평창동의 A논술학원을 다녔다. 처음 주어진 숙제는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발제문을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선생님이 배경 지식을 충분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웠다"면서 "논술의 원론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학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곧 강남의 유명 논술학원으로 옮겼다.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는 A학원의 이러한 방식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로 옮긴 학원은 기출문제를 변형한 문제를 많이 풀었고 100명을 대상으로 일제식 강의를 하듯이 진행되었다. 따라서 학생들의 의견 개진이나 토론 등은 없었다"며 "그러나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끝낸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 이제 논술교육은 대학입시와 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전형요소가 되었다. 지난 8월 치뤄진 한양대 입시설명회 및 논술특강의 모습. 한양대 위클리한양 on Campus에 실린 사진 ⓒ 한양대 위클리한양 on Campus



서울대 이과대학에 다니는 D씨. 수시전형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 그 역시 논술을 위해 안양의 한 국어전문학원에 다녔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이 곳에서 쓰기 강사 아르바이트를 계속 했다는 그는 "학원은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학생과 학부모의 지지도 대단했다"고 말했다.

보통 수업은 쓰기 2시간, 수업 2시간을 각기 다른 강사가 맡아 총 4시간으로 이루어졌다. 교재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나 미국의 하버드 에세이처럼 외국대학입시에 필요한 에세이집을 읽거나 신문활용교육 자료를 이용했고, 글을 요약하고 학생끼리 서로 토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이어 그는 "4~5명의 소규모로 이루어져 토론을 하고 교사의 지도를 받는데 효과가 컸고 면접을 보는데도 도움이 됐다"며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하면 따로 학원에 있는 도서관에 바로 비치해 놓는 등 책을 읽는 환경도 좋았다"고 말했다.

교사 역시 논술교육 지도에 어려움 느껴

인천의 한 고등학교 현직교사였던 E씨는 "전반적으로 교사들이 논술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 행동에 나서는 이는 드물다"며 "학교차원의 논술교육은 대부분 국어교사, 특히 젊거나 열의 있는 교사에게 떠넘겨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 자신과 세상을 탐구하는 독서를 위한 책은 실종되고, 수많은 문제집으로 쌓인 고3 교실 ⓒ 김미정



경기도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 현직교사 F씨. 그는 논술수업을 맡아 어떻게 진행해야 할 지 고민하다 한 유명 사교육 논술강사의 강의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단기간에 논술을 끝낼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한번에 논술을 끝내려는 시도보다는 기본부터 차근차근 하는 것이 논술실력을 높이는 일임을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사교육 시장의 논술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한 유명학원의 언어영역 관련 연구소에서 근무했던 G씨는 사교육의 논술교육은 "스타강사와 수많은 사람들의 작업이 어우러져 수업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그는 "주로 강사의 지시아래 평가원, 대학의 기출문제, 강사가 저자로 참여했던 문제집 등을 발췌해 교재를 만든다"며 그러나 "수많은 학생이 강의에 오기 때문에 논술문 일대일지도는 할 수 없지만 첨삭 전문 요원이 따로 있어 이들이 첨삭을 지도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 현직교사는 교사연수에서 강의한 서울의 한 대학의 교수 말을 빌려 논술교육 현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각 대학 입시처장이 모인 자리에서 논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비슷한 점이 있다. 학생들의 답안이 ABCD로 나뉜다면, A를 받는 학생은 다른 점수를 뒤집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논술실력을 갖고 있지만 극히 드물고 대부분의 학생들의 점수는 B와 C를 받는다.  이 때 B냐 C냐는 글의 독창성이나 내용의 충실성보다는 맞춤법, 원고지 사용법 등 '형식'이 될 수밖에 없다. 사교육에서는 이러한 기능을 중점적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학생들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려움 겪는 공교육의 논술교육

이처럼 통합적 사고력, 창의력 증진 등 논술교육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공교육의 질 높은 논술교육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따라서 실제 교육현장에서도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교사 및 학교차원의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러나 논술을 교육 전체에 녹여내지 못하고 국어 등의 특정 과목만 담당한다거나, 성적에 따라 일부의 학생만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거나, 학교에서 논술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 때문에 학생들은 공교육의 논술교육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교육에 목을 매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 논술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경기도의 한 현직교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열의를 가지고 논술수업을 진행하지만 그 외의 수업과 부가적인 업무 등으로 질 좋은 논술교육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며 논술교육에 집중할 수 없는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확실히 아이들의 글을 성의 있게 봐주면 봐줄수록 나아진다. 그러나 다른 업무 때문에 한 명의 교사가 100명의 학생의 글을 일일이 첨삭해 줄 수 없고 기계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논술수업과 첨삭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사교육에 비하면 수업과 다른 업무까지 해야 하는 공교육 교사는 싸구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논술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한 방법을 묻자 그는 "논술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다른 업무량을 조정하고 첨삭을 담당하는 보조교사를 두는 등의 제도적 측면의 보완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논술 노하우가 있는 교사, 입시담당 대학교수들의 강의를 듣거나 동료교사들과 논술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연수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며 "교사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많이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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