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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산책 12]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 2

등록|2007.09.16 10:39 수정|2007.09.16 12:53

'수호신들에 둘러싸인 아우로라'체코 브라보, 1659년경,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aldegalerie, Vienna ⓒ 비엔나 미술사박물관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 그림 중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많습니다. 그건 당시 16-17세기의 사조인 '르네상스'와 관련이 깊습니다.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불어 단어는 '재생', '부흥'을 의미합니다. 정확하게 '그리스와 로마 고대문화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중세가 끝나던 당시, 유럽 국가들은 알프스 너머에 있던 이탈리아의 문화를 만나고서 깊은 충격에 빠집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문화 선진국에 있었던 것입니다. 박물관과도 같은 도시, 깊은 고전 연구, 위대한 예술가들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 문화를 자기 나라에 이식하려 했던 것이 르네상스의 시발점입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그리스 문화가 연계 발달한 것에는 연유가 있습니다. 1453년 그리스의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자 그리스의 많은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그리스 고전을 가르친 것이 계기가 된 것입니다.

오스트리아 빈('비엔나'는 '빈'의 영어식 이름)에 있는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은 이 당시(정확히는 15세기 이후)부터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대륙 대부분의 지역을 관할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입니다. 당연히 프랑스를 제외한 전 유럽의 귀한 예술품들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거점이었던 빈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헝가리 등이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이름 아래 지배되었고, 합스부르크 왕가가 대를 이어 황제 자리를 독차지해왔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 많은 화가들을 왕궁으로 불러 모으고 작품들을 사들입니다. 그것의 일부분들이 이번 전시회에서 전시되고 있기에, 유럽 여러 나라의 다양한 세계의 그림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았습니다. 신화의 그림이기에 나신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화가의 상상력을 통해 그리스 로마 신화는 더욱더 풍요롭게 해석됩니다. 그런 작품 중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그림의 주인공은 아우로라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신들 사이에 근친상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지는 내용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높은 곳을 달리는 자'라는 뜻을 지닌 이름인 휘페리온은 누이 테이아와 짝을 이루어 3남매를 낳습니다. '태양의 신' 헬리오스, '달의 여신' 셀레네,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그들입니다.

여기서 에오스가 바로 로마 신화의 '아우로라'에 해당합니다. 아우로라의 역할은 바로 새벽을 여는 일입니다. 아침 해가 뜰 때에 아우로라가 장밋빛 손가락으로 밤의 포장을 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장미꽃 가득 핀 방의, 눈부시게 빛나는 방문을 활짝 열면 별들이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즉 새벽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달아나는 별들 앞에는 금성이 있습니다. 아침에 보이는 별 '샛별' 말입니다. 이 별에 대해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그림 속 장면은 바로 그렇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아우로라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방이 어두운 것은 아우로라가 새벽의 여신이기 때문입니다.

새벽은 정말 장막과 같습니다. 그 장막이 걷히는 시간은 정말 짧기 때문입니다. 늦잠을 자곤 하는 저로서는 이 아름다운 아우로라의 모습을 보려면 단단한 결심을 하든지, 잠자리가 낯선 곳에 있든지, 북유럽에 가든지 해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오로라 아시죠? 위도 60도에서 80도 사이에서 발생하는 빛의 장막 말입니다. 이 '오로라(aurora)'는 바로 17세기의 한 과학자가 이 대기현상에 '새벽의 여신' 아우로라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붙인 것입니다. 혹시나 싶어 오로라를 검색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아우로라 그 여신으로 돌아가는군요. 그래서 이 두 이름은 같은 것이고, '아우로라'를 영어식으로 읽으면 '오로라'가 됩니다. 

아우로라는 '전쟁의 신' 아레스를 사랑하다가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의 분노를 삽니다. 그 벌로 누구든 아우로라가 젊은이를 사랑하게 되면 그를 인간세상에서 앗아가 버렸습니다. 유부녀의 몸이었던 아프로디테는 역시 유부남이었던 아레스와 밀회를 나누다가 제우스에게 들통난 적도 있는, 애정행각이 다분한 여신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아우로라의 출현에 따라 달아나는 별들 중 하나인 금성이 아프로디테를 뜻한다는 것입니다. 아프로디테는 로마신화의 베누스에 해당하는데 그것의 영어식 이름이 비너스입니다. 비너스가 바로 금성이고요.

아프로디테가 '미의 여신'이기도 해서 붙여진 이름이긴 하지만, 새벽 시간은 아우로라가 힘을 발휘하는 때라 아프로디테도 별 수 없이 물러가는 역전 현상이 매일 일어난다고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우연하게도 아우로라는 나중에 '별이 반짝이는'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인 아스트라이오스의 아내가 되어, 바람과 별의 어머니가 됩니다. 신화는 이렇게 우리 곁에 있습니다.

주피터와 안티오페

'주피터와 안티오페'바르톨로메우스 슈프랑거, 1596년경,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aldegalerie, Vienna ⓒ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에 전시된 신화 제목의 인물들은 전부 로마식 이름으로 적혀 있습니다. 그리스식이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것은 이탈리아의 라틴 문화가 유럽 문화의 근간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여기 전시된 그림 중에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화가들의 작품도 많으니까요. 그리고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이 있는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작품 제목들도 전부 독일어에서 번역되었습니다. 위의 아우로라도 그렇습니다.

그걸 존중하기 위해 그림 속 등장인물은 로마식 이름으로 이 글에서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에 세 번째로 설명할 바쿠스는 디오뉘소스를, 아모르는 에로스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나오지 않은 신화 속 인물은 그리스식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것도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표기된, 좀 더 원어에 가까운 발음의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예를 '디오니소스'를 '디오뉘소스'로 나타낸 것이 그렇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제우스의 로마식 이름이자 독일식 발음인 '유피테르Jupiter)'를 사용하지 않고 영어식 발음인 '주피터'를 사용한 것은 의문이 갑니다. 아마 번역상에서 낯선 '유피테르' 대신 널리 알려진 단어 '주피터'를 선택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도 그대로 사용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주피터는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를 말합니다. 지금 위 그림 속 장면은 주피터가 사티로스로 변장하여 안티오페와 사랑을 나누는 모습입니다. 사티로스는 술의 신 디오뉘소스의 시종입니다. 얼굴은 사람 모습이지만, 머리에 뿔이 나 있고, 하반신은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사티로스의 모습을 보면 머리에 작은 뿔 자국이 나 있고, 다리는 온통 털투성이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피터가 안티오페의 미모에 반해 사티로스로 변장하여 안티오페와 관계를 맺습니다. 주피터에게는 이미 유노(헤라)라는 부인이 있었지만, 바람기가 많은 신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여신과 인간인 여자들에게서 많은 자식을 얻습니다.

안티오페는 사티로스와 관계를 맺고 처녀의 몸으로 임신하자 아버지가 노여워할 것을 두려워하여 시키온이라는 곳으로 도망치고, 거기에서 에포페우스와 결혼합니다. 그 후 안티오페의 삶은 불행의 연속입니다. 아버지와 그 형제의 추격을 받게 되고, 나중에 암피온과 제토스를 낳지만 타의에 의해 버려지게 되고, 노예 생활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사정을 알게 된 자식들의 도움을 받게 되지만, 바쿠스의 벌을 받아 미치광이가 되어 떠돌다가 포코스에게 치료받고 그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죽어서 둘은 합장되어 묻힙니다.

주피터의 바람기 때문에 한 여인이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군요.

사실 주피터도 올림퓌스 최고의 신이 되기 전에 기구한 시절을 겪습니다. 주피터의 아버지는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입니다. 그런데 크로노스는 아내 레아가 낳은 자식들을 다 집어삼키는 행동을 합니다. 자신의 이름에 따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명을 다하다 보니 이렇게까지 되었습니다.

그런데 레아가 여섯 번째 아이를 임신합니다. 그 아이가 바로 제우스 즉 주피터입니다. 그 아이도 크로노스에게 삼켜 먹힐까 봐, 레아는 주피터를 요정 아말테이아에게 맡겨 키우게 합니다.

나중에 청년이 된 주피터는 집안 내력을 알게 되고, 삼켜진 형과 누나를 되찾기 위해 시중꾼 행세로 크로노스 앞에 나타납니다. 물론 크로노스는 주피터의 정체를 알지 못하지요. 주피터는 음식에 토하는 약을 넣어 크로노스로 하여금 삼킨 것들을 토하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나중에 올림퓌스의 신들이 될 하데스, 포세이돈,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등이 되살아나게 됩니다. 이런 연유로 주피터는 '나중에 태어났지만 가장 먼저 자란 맏이'가 됩니다. 그리고 파란만장한 올림퓌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바쿠스, 케레스, 아모르

'바쿠스, 케레스, 아모르'한스 폰 아헨, 1600년경,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aldegalerie, Vienna ⓒ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해 둘 사항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의 구분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로마 신화는 중요성이 약합니다. 있었지만 소멸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로마인들이 그리스인들과 접촉을 하면서 그리스 문학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적 면모가 풍기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후 신적 면모만 풍겼던 예전의 로마 신화의 신들에게 인간적 면모를 심습니다. 나중에는 이 두 신화 속 신들이 동일시되게 됩니다.

그래서 같은 신의 그리스 이름과 로마식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주로 그리스 신화상의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로마식의 이름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술의 신' 바쿠스입니다. 드링크 상표명으로 알려진 이름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리스 신화상의 디오뉘소스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때로는 영어식 이름이 널리 퍼져 혼용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큐피드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 아프로디테를 따라 또 다른 '사랑의 신'인 에로스의 로마식 이름이 '쿠피도'인데 이것의 영어식 이름이 '큐피드'입니다. '아모르'는 '에로스'의 독일 이름입니다.

아모르(큐피드) 하면 화살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림에서 보면 아이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모르인데, 어깨를 가로질러 화살통을 메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케레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곡식을 다스리는 여신 데메테르를 말합니다. 데메테르는 대지의 버금 여신이자 곡식의 으뜸 여신입니다. 데메테르는 제우스(주피터)의 누나이지만 나중에 이들 사이에 딸 페르세포네가 태어납니다. 페르세포네는 강제로 저승 왕 하데스의 부인이 됩니다.

바쿠스도 주피터의 자식입니다. 인간인 세멜라와의 사이에서 생긴 자식인데, 세멜라는 주피터의 부인 헤라(유노)의 시기심에 의해 죽게 됩니다. 그러나 자식인 바쿠스를 헤라 몰래 키웁니다. 바쿠스는 인도 땅의 요정에 의해 키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장성하여 각지를 떠돌아다니게 되는데 이것은 헤라가 그에게 광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이랍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바쿠스는 술의 신답게 포도재배를 각지에 보급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말이 (저자의 상상력이 들어갔겠지만) 그럴 듯합니다.

"나는 곡식과 과일 그리고 이로 빚은 술의 신이자 곧 곡식과 과일 그리고 술이다. 내가 썩어 술이 되거든 너희가 마셔라. 마시고 취하고 싶은 자는 취하라… 그러나 잘 들으라! 너희들의 목적은 술이 아니다. 광기도 아니다. 술이 깨거든 카오스(혼란)가 비롯되던 시간, 코스모스(질서)가 비롯되던 시간을 생각하라… 나는 누구인가? '바코스(싹)'다. 씨앗이 대지에 들었다가 제 몸을 썩히고 싹을 내고, 자라고, 열매를 맺고, 다시 대지에 들어 제 몸을 썩히는 이치를 생각하라… 그리고 너희가 그 자리에서 다시 하나의 생명으로 곧게 설 방도를 생각하라. 그것이 목적이다."(<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서)

그림에서 '곡물과 대지의 여신' 케레스와 '포도주의 신' 바쿠스가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케레스 머리엔 곡물이 달려 있고, 바쿠스는 포도 열매를 들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아모르가 그들 사랑을 거들고 있고요.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이들은 지금 축제의 장을 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화가는 자연의 풍요로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확인한 바로는 이 셋이 만나는 신화 내용은 없습니다. 화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바쿠스와 케레스가 만나는 것이야 이만한 '찰떡궁합'도 없지만, 둘은 만날 수 있는 위치가 못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케레스는 주피터가 사랑한 여신이자 주피터의 누나이고, 바쿠스는 인간 여인에게서 낳은 주피터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신화 속에서야 이런 관계도 넘나들겠지만요.

재미있는 것은 화가 한스 폰 아헨이 이 그림을 그릴 때 바쿠스의 모델로 자신을, 케레스의 모델로 자신의 부인을, 그리고 아모르의 모델로 자신의 아들을 썼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17세기 가족사진인 셈입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 행복과 풍요가 가득한 가족 말입니다. 황제의 총애를 받던 그는 그 만큼 화가 활동과 상상력 발휘에 자유로움을 누렸던 화가입니다.

신화 속 이야기를 넘나들었습니다. 신화 속 주인공들이 서로 얽히고 얽혀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화는 여지를 남겨 둡니다. 상상력이 그것입니다. 위 그림들도 화가의 그러한 상상력이 바탕이 되어 그려졌습니다. 이윤기님도 위 책에서 그걸 강조합니다. 그런 상상력을 통하면서 신화는 계속해서 전해지고 우리 곁에 살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 덕수궁 내 덕수궁미술관, 9월 30일까지, 02-368-1414, 월요일 휴관, 저녁 8시 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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