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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함이 있는 가을 텃밭에서 느끼는 여유

"가을엔 힘든 거 다 잊을 수 있는 거잖아!"

등록|2007.09.12 13:37 수정|2007.09.13 08:30

▲ 우리 텃밭에서 바라본 농촌마을, 가을걷이로 분주해질 것이다. ⓒ 전갑남


가을, 분명 가을이다.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의 느낌이 다르다. 하늘은 또 어떤가? 오늘따라 하얀 뭉게구름이 산허리를 감싸고 있다. 색깔도 파랗고 높다. 마당에서 들판을 보고 공기를 들이켜 본다. 이렇게 신선할 수가!

요즘 한창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가 가을을 실감나게 한다. 가을에 피는 꽃으로는 코스모스가 최고다. 빨강, 연분홍, 하얀색의 조화가 가을과 잘 어울린다. 나는 코스모스를 참 좋아한다. 향기를 뽐내며 잘난 체하지 않는 수수함이 좋다. 목을 길게 빼고 수줍은 듯 가녀린 몸을 흔들어대는 모습에 나는 또 반한다.

선선해진 기운과 색깔이 바뀐 가을 들머리. 몸과 마음이 넉넉해지는 때이다. 이제 그간 땀 흘린 보람에 대한 기대를 안고서 차분히 결실을 기다린다.

주말마다 정말 바쁘겠구먼!

▲ 우리 텃밭의 일부. 서리태, 들깨, 땅콩 등이 심어졌다. ⓒ 전갑남


만물상이 차려진 우리 텃밭도 가을을 맞아 풍성하다. 추수를 앞두고 차근차근 가을걷이를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부산을 떨며 가꾼 결실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여보, 주말에 편히 쉴 날이 없겠어요?"
"서리 내릴 때까지는 그래야겠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나 죽어나겠구먼!"
"그래도 거둬들이는 재미가 있지!"


"누가 몰라서 그러나요?"
"가을엔 힘든 거 다 잊을 수 있는 거잖아! 뭐부터 거둬들일까?"
"고추 따고, 땅콩 캐고, 고구마 거두고…."
"차근차근 해보자구!"


해가 많이 짧아졌다. 아내나 나나 낮엔 직장에서 근무를 하는지라 주말에 틈을 낼 수밖에 없다. 남들 쉴 때 쉬지 못하고, 일 속에 파묻힐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난다. 우리는 돈 만들려고 짓는 농사가 아니다. 손수 가꿔 진짜를 먹고, 남는 것은 여러 이웃과 나눠 먹는다. 가끔은 꾀가 나서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흙과 더불어 일할 때는 잡념도 사라지고 보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실의 가을이 있지 않은가? 수확의 기쁨이 있어 힘 드는 것을 참아내는지도 모른다.

와! 이것저것 거둘 게 많네!

올여름은 유별났다. 사람도 작물도 혹독한 여름을 치렀다. 긴 장마에 지치고, 찌는 더위에 많이 시달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튼실한 결실을 안겨준 자연이 고맙고 또 고맙다.

▲ 붉은 고추가 주렁주렁 달린 우리 고추밭. 이번 주말에 따야겠다. ⓒ 전갑남


우리 밭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붉은빛의 고추밭이다. 불을 지른 듯 빨갛다. 고추농사는 끝까지 가봐야 성공과 실패를 안다고 한다. 한때 병이 돌아 죄다 망가질까 많은 걱정을 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고부터는 기운을 차린 듯 붉은 열매가 탐스럽다. 천만다행이다.

지금 상태로는 작년 수준은 거둘 것 같다. 고운 고춧가루를 빻아 고추장도 담그고, 맛난 음식을 해먹을 생각에 입에 침이 고인다.

올해 처음 재배한 참깨 농사는 별로이다. 한 되나 거둘 나나? 그래도 아내는 "아마추어가 이 정도면 어디냐!"며 귀하게 여긴다. 참깨 농사는 쉽게 덤빌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대신 들깨가 잘 되어 마음이 놓인다. 요즘 들깨는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꽃피는 기세로 보아 많은 기대를 하게 한다. '꿩 대신 닭'이라고 들기름도 참기름 못지않게 고소하고, 영양상으로 풍부하지 않는가?

▲ 고랑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줄기를 뻗은 고구밭이다. 큰 기대를 걸고 있다. ⓒ 전갑남


고구마줄기는 뻗는 힘이 많이 약해졌다. 아마 토실토실한 밑을 키우느라 땅속으로 기운을 쏟는 모양이다. 고구마는 우리 밭농사에서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강화 특산품인 속노랑고구마는 맛이 뛰어나다. 여러 가족들을 불러 고구마 캐는 즐거움을 함께 나눠야할 성싶다.

입이 궁금한 겨울 밤, 고구마는 간식으로 그만이다. 구워 먹고, 쪄먹고. 친지들과 그동안 신세진 분들께 선물로 안겨드리면 모두 좋아할 것이다.

서리태 농사도 대성공이다. 올핸 많이도 심었다. 빈틈이 있는 곳이면 곳곳에 심었다. 처음 싹이 틀 때 비둘기 떼가 쪼아 먹어 애를 먹였다. 모를 다시 내어 심고, 때맞춰 김을 매주었더니 무성하게 자랐다. 어느 정도 자랄 때 낫으로 잎줄기를 후려치는 것이 절묘했다. 키가 너무 자라는 것도 방지하고, 곁가지가 많이 나오게 하여 열매를 맺게 한 게 올해 터득한 요령이다.

▲ 토란, 서리태, 수수 등이 심어진 우리 밭이다.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 전갑남


우리 가족은 서리태 넣은 밥을 무척 좋아한다. 아내는 서리태를 발효시켜 청국장을 띄워볼 셈이라고 한다. 더운 여름철에는 콩을 불려 콩국수를 해먹으면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추석이 임박해지자 수확할 토란에 관심이 많다. 길게 한 이랑을 심었는데 키가 사람 가슴만큼 자랐다. 밑이 얼마나 들었을까? 마음 같아서는 캐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토란 줄기는 껍질을 벗겨 말린다. 나물로 해먹고, 육개장 끓일 때 넣으면 또 다른 맛이다. 토란은 두부, 소고기를 넣고 끓이면 탕국으로 안성맞춤이다. '흙에서 나는 알'이라 하여 예전 내가 살던 고장에서는 아주 귀하게 여겼다.

그리고 두 이랑 심은 땅콩도 수확을 앞두고 있다. 고소한 땅콩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맥주 안주로 가끔 등장할 것이다. 눈이 자꾸 침침하다는 아내를 위해 밭 가장자리에 심은 결명자도 열매를 맺고 있다. 결명자차는 음료로 마시면 눈을 맑게 한다고 한다.

날짐승 차지가 된 키다리 수수도 곧 거둘 때가 되었다. 이것저것 거두려면 주말마다 눈코 뜰 새가 없을 것 같다.

몰라보게 채마밭도 푸르러졌다

해가 많이 짧아졌다. 6시가 다 되었는데도 어둑어둑하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가을 김장거리가 궁금하다.

"당신, 오늘 늦게 출근해?"
"아냐? 빨리 가야지!"
"그럼 밭에는 왜 나가?"
"솎은 열무 궁금하잖아!"


▲ 김장무와 배추밭. 아내가 열무를 솎고 있다. ⓒ 전갑남


엊그제 우리는 김장 무를 솎았다. 씨를 뿌리고 3주가 지났는데 솎을 때가 된 것이다. 너무 밴 것을 솎아냈으니 이제 밑이 통통하게 들 것이다. 솎아낸 열무로 김치를 담갔다. 야들야들한 맛이 아주 좋다.

우리 채마밭엔 김장 배추며 무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때맞춰 비가 내려 요즘 몰라보게 자랐다. 일주일 전 씨를 넣은 순무와 갓도 발아가 되었다. 쪽파도 살짝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텃밭을 둘러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채마밭 고랑에 자란 풀을 뽑고 있는데 아내가 소리 내어 부른다.

"여보, 출근 서둘러야죠! 이러다 늦는 거 아냐!"

출근하는 길, 오늘도 코스모스 꽃길이 나를 반긴다. 하늘하늘 춤추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져본다. 기분 좋은 초가을의 하루를 또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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