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상하는 아름다운 새의 비행 ⓒ 정기상
"둘째가 수영장에 갔는데요."
"그래? 온 식구가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할 수가 없구나."
언제부터였을까? 가족 모두가 함께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한 지가 까마득하다. 그동안 의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꽤 오래된 것은 분명하다. 식구들 얼굴 보기가 여간 쉽지가 않다. 난감한 일이다. 가족의 정이란 서로 부딪히며 교감이 이루어질 때 쌓일 수 있다. 그런데 얼굴조차 보기가 어려울 정도니,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대가족의 하루 세 끼를 준비하는 어머니와 누나들의 고생은 심하였다. 지금의 집사람에게 그때처럼 하라고 하면 고개를 옆으로 살래살래 흔들 것이 분명하다. 어머니는 그래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1년 365일을 하루도 빼지 않고 식사준비를 하셨다. 그것도 힘들다는 말씀 한마디 없이,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하셨다.
우리 집 식구는 모두 다섯이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더 많았지만, 돌아가신 뒤로는 집안이 텅 비어 버린 느낌이 들 정도로 단출해졌다. 나와 집사람 그리고 아이들 셋이 전부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함께 하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잘 되지가 않는 것이다. 참으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자유 품안의 자식 ⓒ 정기상
큰아이가 대학을 가면서 이런 질서는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시켜놓고 대학에 가니, 달라진 것이다. 저녁 약속이 빈번해지고 음주까지 하게 됨으로써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아침 식탁에 큰아이가 빠지기 시작하더니, 뒤이어 대학에 간 둘째까지 그렇게 된 것이다.
요즘은 아예 제각각 식사를 한다. 자기 스케줄에 맞게 따르다 보니, 식구들 모두가 각각이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둘째는 둘째대로다. 겨우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집사람이다. 늦둥이마저도 시험으로 인해 정신이 없다. 중학교 2학년인데, 모의고사를 대비하여 분주하기만 하다. 그러니 식탁이 언제나 썰렁하다.
▲ 책임 제 역할을 다 하는 ⓒ 정기상
자유가 방종과 다른 것은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방종이 용납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을 마음껏 누비고 있는 새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은 책임을 다하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새들이 아이들을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지로서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야 크기만 하다. 식탁에서 전 가족이 모여서 웃으면서 식사를 즐기고 싶다. 그러나 내 욕심만을 앞세울 수는 없다. 품안에 자식이라고 하지만,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들이 당당하게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제 몫을 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더 중요하다.
▲ 저 하늘을 향해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 정기상
덧붙이는 글
사진은 전북 전주시 삼천천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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