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모두 무죄인가?
- 이재무 시인의 연시집 "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 -
▲ 이재무 연시집 "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의 책표지남궁산이 작업한 판화가 일품이다 ⓒ 정용국
이 가을 모든 신문과 방송이 청와대 관리와 가짜 대학 교수의 '부적절한 관계'에 전 지면과 시간을 쏟아 부으며 마치 남의 불륜을 짜릿하게 비웃는 '즐김'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각종 주간지와 여성 월간지들은 또 얼마나 많은 소설 아닌 소설을 써댈 것인가? 이 번잡한 가을의 길목에서 다시 묻는다. 사랑 너는 모두 무죄인가?
목포대 교수인 김선태 시인은 이 시집의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천명의 나이에 이재무 만큼 사랑에 목을 매다는 이는 흔치 않다. 그런 점에서 그는 숙명적으로 사랑의 허기를 타고난 시인이다.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구해지고 마는 지천명의 철부지 소년이다. 부디 아프도록 아름다운 그의 사랑 노래가 메마른 세상을 촉촉이 적시며 강물처럼 흐르길 바란다."
과연 이 연시집에서 이재무는 '사랑에 목을 맨' 사람처럼 보인다. 때로는 무구한 소년처럼, 그러다가 불륜이라도 저지를 것 같은 눈 먼 탕아처럼, 사랑으로 아파하고 울부짖고 나뒹군다. 이미 시 제목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것들이 많다. '방화범' '저 못된 것들' '모텔' 은 이 시대 사랑을 직감적으로 들춰내고도 남는다.
저 못된 것들 좀 보소 / 흐르는 냇물 시켜 / 가지 밖으로 얼굴 내민 연초록 시켜 / 지갑 속 명함 버리라네 / 기어이 문제아가 되라 하네 - <저 못된 것들> 중에서 -
시인은 하잘 것 없는 핑계를 들이대며 '못된 것들'이 꼬득이는 사랑의 유혹을 고백하고 있다. 아무도 쉽게 입 밖에 내기 힘든 넋두리 같은 내면의 이야기를 술술 잘도 엮어내고 있다. 정말 무구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지금 세상이 온통 불륜의 이야기로 들썩거리는 판국에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는 공인이 겁도 없이 사랑타령에 빠져있다니 엄청난 뱃장이다.
너의 감옥 벗어나려고 / 컥컥, 목 찌를는 울음 삼키며 / 온밤을 조롱박으로 퍼올린다 / 부질없는 줄 알면서 퍼올려도 / 호수의 바닥은 보이지 않고 / 퍼올려도 너는 호수를 떠나지 않는다 / 살아 있는 동안 이 형벌로 / 나 괴롭고 즐거우리 - <囚人> 중에서 -
사랑을 해본 사람은 다 안다. 사랑이 결코 달콤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아! 목이 타고 가슴이 떨리는 고통을 즐기는 연인들이여. 그러나 사랑의 형벌로 즐겁고 괴로운 것을 다 지고 가겠다는 '시'를 시로만 볼 것인가. 이재무 시인의 고백으로 들어 줄 것인가? 나는 그것이 더 큰 고민이다.
그러나 나는 시인의 거짓부렁은 믿지 않는다. <이재무의 사랑노래는 타고난 생태적 본능과 리듬에 충실하며 사랑의 아픔으로 인한 깊은 성찰과 잔잔하게 흘러가는 문장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값싼 연애시와는 분명하게 구분된다>고 말한 김선태 시인의 말을 더 믿기 때문이다.
연시의 별미를 더하기라도 하듯 생명 판화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남궁산의 힘차면서도 애틋한 판화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맛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끈질기게 '생명'을 주제로 한 연작에 몰두해 온 남궁산은 연시집의 판화를 작업하였으니 그가 늘 주장하고 있는 ‘판화의 대중화에 큰 몫을 한 것은 아닐까?
자, 깊어가는 가을 서서히 단풍이 들고 옷깃을 여밀 때가 다가온다. 올 가을에는 시집을 들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문정희 시인이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무죄이다"라고 설파한 마술에라도 걸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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