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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와 이치로, "대테러보다 양극화가 더 시급"

등록|2007.09.13 09:06 수정|2007.09.13 09:14

▲ 9월 11일 당사에서 정례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오자와 이치로 일본 민주당 대표. ⓒ 일본 민주당 홈페이지

오자와 이치로 대표가 이끄는 일본 민주당이 집권 자민당의 테러대책특별조치법(테러특조법) 연장에 제동을 걸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전격 사퇴를 발표한 것도 테러특조법 연장을 위한 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이 결렬된 데에 한 가지 원인을 두고 있다.

9·11 테러 이후인 지난 2001년 11월 2일부터 시행된 테러특조법은 대테러활동을 수행하는 외국군대에 대한 협력지원·수색협조 등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이다. 미국 등의 대테러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유엔헌장의 이념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를 갖고 출발한 법률이다.

하지만, 이 법률은 실제로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 수행을 지원하는 법적 근거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례로, 최근에 에다 겐지 일본 중의원 의원은 “자위대가 미군에 지원하는 연료의 80% 이상이 대테러활동이 아닌 이라크전쟁에 전용되었다”며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본래 이 법은 시행기간 2년의 한시법으로 출발했지만, 2003년 10월에 2년 연장, 2005년 10월 및 2006년 10월에 각각 1년씩 연장되었다. 금년 10월까지 연장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이 법은 오는 11월에 소멸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자위대가 미군을 상대로 급유·급수 등의 지원활동을 수행할 법적 근거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동안 아베 신조 총리가 우려한 점은, 시행기간을 연장하지 못해 법률이 소멸될 경우 일본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핵심적 국가과제인 대테러활동을 지원하지 못할 경우 미·일 협조체제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테러특조법 연장과 관련하여 오자와 민주당 대표의 도움을 구하려 했으나, 이것이 실패하자 결국 사퇴를 선언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문제해결의 부담은 아베 총리의 후임자가 떠맡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테러특조법 연장에 대해 제동을 걸고 있는 민주당은 어떤 논리를 갖고 있을까? 이에 관한 기본적 입장은 지난 11일 민주당 본부에서 열린 오자와 대표의 정례회견에서 일정 정도 드러났다.

오자와 "자위권 행사는 직접 공격 받는 경우로 한정해야"

이 날 테러특조법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오자와 대표는 “미군의 활동에 대한 자위대의 지원은 명백한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라고 전제하면서 “자위권의 행사는 우리가 직접 공격을 받거나 혹은 그럴 위험이 있는 주변사태가 발생한 경우로 한정되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어서 그는 “전수방위(專守防衛)의 원칙에 입각하여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급박하고 불법한 침해를 받은 경우에 한하여 헌법 제9조에 근거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함으로써, 인도양에서의 대미(對美) 지원활동은 일본의 평화 및 안전과 직접 관계가 없는 것이라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표시했다.

그는 또 “일본 정치가 직면한 과제가 테러특조법 뿐인가?”라는 기자의 유도성 질문에 대해 “연금문제·지역격차·소득격차·고용격차 같은 불공정·불평등의 문제가 급속히 전개되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있다”면서 미국의 대테러활동에 대한 지원보다는 일본 국내의 양극화문제가 지금 당장 더 시급하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오자와 대표가 자위대의 대미 지원활동을 명확하게 반대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의 정세변화에 따라 민주당이 입장을 변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자민당 총재와의 당수회담에 관한 질문을 받은 그는 “가능한 한 국민 모두에게 공개되는 오픈 형식의 논의라면 당수회담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지만, 일단은 여야 당수회담을 회피하기 위한 논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다음 날인 12일 아베 신조의 전격 사퇴를 불러온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으며, 오자와 대표가 후임 총리에 대해서도 이 같은 입장을 내세워 압박을 계속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테러 지원보다는 양극화 해소가 더 중요하다는 오자와 대표의 답변은 자민당 정권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는 측면을 갖고 있는 동시에, 일본 정계에서 서서히 확대되고 있는 반미감정을 반영하는 측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는데다가 미국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일본의 행보를 제약하곤 하는 현재의 동북아 구도는 세계 정상급의 군대와 경제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에게는 여간한 불만거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미국을 거역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직은 미국을 필요로 하는 후임 일본 총리가 어떤 방법으로 테러특조법 연장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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