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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부여의 반가운 시골 풍경

고향은 아득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등록|2007.09.14 15:48 수정|2007.09.15 11:42
부여에 다녀왔다. 할아버지, 할머니에 이어 두 분의 삼촌들마저 돌아가신 뒤, 옛고향은 더욱 멀어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분들이 쉬는 곳을 손질하는 일거리나마 남아 있어 아직 고향은 고향이고, 나의 어린 시절 한자락을 차지하는 추억들도 거품처럼 사라져버리지는 않을 테니 다행이다. 그렇게라도 생전에 못다한 대면을 이어가고, 추억들을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하는 것이겠지.

백제시절 백마강을 해자로 낀 읍내 전체가 커다란 궁궐 안이었던 충남 부여는 오늘날 그저 쇠락한 소도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랜만에 찾은 부여에는 '유소년축구의 메카'를 자처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 백마강변에는 여러 개의 축구장을 설치하여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예전에는 저 백마강 둔치가 무수한 수박밭일 뿐이었는데, 철이 지나서였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소도시의 생존방식이 바뀐 걸까. 어떻게든 변화를 시도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들이 나름 신선해 보인다.

백마강 유소년축구대회부여읍은 유소년축구의 메카를 자처한다. ⓒ 이병철


나의 고향마을은 구룡면 용당리이다. 아홉마리 용이 백제의 수도 부여를 지켜주고 있었을까?  용당은 용이 사는 못이라는 뜻이다. 백마강으로 연결되는 지류를 끼고 있는 마을은 평야지대인데, 한때 커다란 저수지였을지도 모르겠다.

논티라는 고개가 있는 마을에서 내리면 작은 장터가 나온다. 어린시절부터 늘 보았던 특이한 이층집 건물이 아직 헐리지 않은 것은 나의 추억에 대한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일제시대에 지어졌을 법한 근대적인 건축기법과 부분적인 기와지붕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논티장터의 어느 낡은 건물건축양식이 이채롭다. ⓒ 이병철



논티장터를 벗어나면 곧바로 펼쳐지는 논들이 이 지역에서는 구룡평야라고 불리고 있었다. 마을 가장자리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같은 풍경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느티나무논티는 구룡평야의 가장자리에 있다. ⓒ 이병철



고향집 앞에서는 깨를 말리고 있었다. 어릴적 도리깨질로 깨를 털어본 적이 있다. 도리깨란 어린 내게도 참 과학적이고 재미있는 농기구였다.

 

수확한 깨고향집 앞 비닐하우스에서 수확한 깨 ⓒ 이병철



어느덧 장성한 사촌동생들은 이렇게 아이를 안고 나타날 나이가 되었다. 이 꼬마의 엄마가 이 꼬마만 했을 때, 이 마을 벌판에서 함께 뛰놀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세월은 변함없는 풍경 속에 박제되기만 하는 것이 아닌데, 추억은 변화를 거부하는 무엇인가 보다.

사촌동생의 딸장성한 사촌여동생은 이미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 이병철


지친 나비 한마리가 콘크리트 바닥에서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애벌레에서, 고치를 입었다가, 화려한 날개를 달고 세상에 나왔을 이 나비에게도 일생은 그저 한여름밤의 꿈만 같은 것인가….

마지막으로 그대의 화려한 비상을 보고 싶었으나, 가련하게도 더이상 날지 못하는 나비여….

나비이제 지쳐버려 날지 못하는 나비가 안쓰럽다 ⓒ 이병철


가을은 그렇게 익어간다. 고개를 숙이며, 허리가 굽어가며, 알곡으로 남을 것인가, 쭉정이로 시들 것인가. 우리 모두는 삶을 알차게 채워내고 한순간 행복하게 거둬질 수 있을 것인가….

고개숙인 벼이삭추석을 앞두고 들판의 벼들은 익어간다 ⓒ 이병철


짧은 옛고향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제 이런 시골에서도 교통카드가 일반화되어 더 이상 정류소에서 표를 사지 않아도 된다.

남겨두고 싶은 장면을 촬영하는 것을 안에서 지켜본 주인아주머니는 남은 표를 처분하려는 듯, 밖으로 마중나와서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글쎄요.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돌아가는 걸까요?

구룡정류소교통카드가 일반화되면서 이젠 매표소도 사양길이다. ⓒ 이병철

부여읍내, 부여궁내의 주도로에는 두 개의 위인상이 있다. 여기 찬란한 문화를 일군 백가제해의 나라, 쿠다라의 성군 성왕이 계시고, 맞은편에는 백제의 마지막을 장렬히 지킨 계백장군의 상이 서 있다.

이번 방문길에 시간이 촉박해 궁남지에 들르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궁남지에 가면, 요새 어느 TV광고에서처럼 '천오백년전의 저물녘 산책길'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궁남지 일대의 발굴과 개발이 그러한 옛스러움을 행여나 망쳐놓지는 않았는지도 확인하고 싶었는데….

성왕찬란한 백제문화를 꽃피운 성왕의 상이 군청앞에 서있다. ⓒ 이병철

버스는 백마강을 따라 달린다. 섬진강변의 19번 국도에 견주기엔 아직 덜 정리된 느낌이 있었지만, 이 길 또한 너무 아름다운 길로 꼽아줄 만하다. 그리고 계속된 비 탓인지 물이 불어 더욱 옛스러운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오직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천오백년 전에도 저 하늘은 저렇게 물들며 저물어가고 있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나이들수록 선명해지는 추억들과 막연히 짙어져가는 정, 어린시절을 잠시 보냈던 옛고향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그보다 장구하게 축적되어 왔을 유전자 속의 추억 때문인지도….

백마강변 국도저물어가는 백마강변의 노을 ⓒ 이병철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무브온21(moveon21.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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