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은 이명박 봐주기 작정했나?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부적절한 비유' 철저한 침묵의 카르텔
▲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8월 27일 저녁 서울 한 음식점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건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태국에서 마사지를 받으러 갔을 때 현지에서 오래 근무한 고참 직원은 마사지 걸 중에서 가장 얼굴이 예쁘지 않은 여자를 고르더라는 전언이었다. 왜 그런지 알아보았더니 예쁜 여자들이야 많은 손님을 받았겠지만 예쁘지 않은 여자는 자신을 선택해준 것이 고마워 성의를 다해 손님을 모실 것이기 때문에 그런 선택도 인생의 지혜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정치권에서도 날 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들은 일제히 이 후보의 발언을 비난하고 나섰다. 한 후보의 대변인은 "성매매 기술을 강의한 것은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 후보 측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본인이 아닌 선배 이야기', '편집국장들이 먼저 꺼낸 이야기'라며 진화에 나서고 있다. 한편으로 이를 첫 보도한 <오마이뉴스>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발마사지 이야기를 한 것인데, 마치 성매매 업소 이야기를 한 것처럼 오해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후보 측이나 한나라당이 <오마이뉴스>를 곧바로 제소할 것 같지는 않다. 제소 방침을 밝혔던 박형준 대변인도 "사태추이를 지켜보고, 상황이 정리 안 되면 언론중재위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해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명박 '부적절한 발언'에는 침묵하는 언론
왜 그런가. 여성 비하나 성매매와 같은 민감한 쟁점인데도 이명박 후보 측이 이처럼 여유가 있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이번 사안이 별로 문제될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믿는 다른 구석이라도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명박 후보 측으로서는 문제가 불거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 선에서 그친다면 최선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일부 인터넷 신문과 <한겨레>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언론도 이를 보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신문과 방송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이명박 후보의 '부적절한 발언' 문제는 사실 이 후보와 저녁 식사 자리를 같이했던 신문사 기자들로부터 제기됐다. 이 후보의 '인생의 지혜' 발언이 전해지면서 일부 여기자들을 중심으로 성매매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는 것 아니냐며 이를 보도해야 하지 않느냐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문 제작의 사령탑인 편집국장들이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조건으로 만난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였던 만큼 이런 문제제기는 힘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이들 기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의 보도로 이명박 후보와 편집국장들의 '오프더레코드'는 사실상 깨졌다. 또 여성단체들의 반발은 물론 정치권의 공방으로 비화되면서 더 이상 감출 수도 없게 됐다. 그런데도 대다수 신문과 방송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평소 1보를 가장 중시하고 있는 <연합뉴스>조차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부 방송의 경우 보도를 했다지만 메인뉴스 시간대를 피해 생색내기 정도에 그쳤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사실 여부가 확인이 안 되기 때문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 그 자리에 편집국장이 참석했던 만큼 사실 여부에 대한 판단은 너무나 간명한 일이다. <오마이뉴스>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면, 그 자체가 뉴스거리이다.
그렇지 않다면 보도할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 그렇게 판단해서일까. 그럴 수 있다. 기사 가치에 대한 판단이나 보도 여부는 전적으로 언론사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편집권의 자율성을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 정치권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도 빼놓지 않고 보도해온 지금까지의 보도 관행에 비춰 본다면 이명박 후보의 발언과 그 이후의 사태 전개에 대해 대다수 언론들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예외적이다.
방송·통신사까지 '이명박 후보 봐주기' 가세?
얼마 전 한명숙 전 총리의 '대리모 발언' 때와 비교해도 대조적이다. 한명숙 전 총리는 대리모란 개념을 잘못 이해한 '실수'라고 즉각 해명하고 나섰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그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의 '마사지 걸 고르는 법'에 대해서는 너그러워도 너무 너그러워 보인다. 형평에 맞지 않다.
후보 자질과 관련은 될지언정 청소년을 비롯해 모든 국민에게 공개되는 지면과 화면에 주워담기에는 너무 낯 뜨거운 이야기여서 피해가는 것일까. 한국 언론의 품격이 그 정도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신정아-변양균의 낯 뜨거운 이메일을 다루는 방식이나 신정아 누드사진까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과감하게 보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이명박 후보 봐주기다. 이미 봐주기로 작정한 신문들이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KBS나 MBC 같은 언론사들은? 명색이 공영방송이고, 국가기간통신사를 자처하고 있는 언론사들이다. 이들도 이명박 후보를 봐주기로 작정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벌써 이명박 후보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일까.
두고 보자. 시간은 좀 걸릴지언정 그 '침묵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조금씩 그 정체를 드러낼 테니까. 때는 바야흐로 카멜레온의 시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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