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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말랭이들이 허공에 편종(編鐘)을 울리다

정말 기발하지 않나요 ? 세탁소 옷걸이 재활용의 쓰임새

등록|2007.09.15 12:48 수정|2007.09.15 12:58

채소들의 가을 편종이 댕댕 울려요양지바른 담벼락에 곶감처럼 말라가는 호박과 토란 줄기 ⓒ 송유미

 가을날의 '생활의 발견'  가을볕은 여름볕보다 무섭다고 한다. 확실히 여름볕보다 가을볕에 내다 말리는 빨래와 이불들의 촉감에서 그 열기의 풍성함을 느낄 수 있다. 골목길 담벼락에 꼬들꼬들 말라가는 빨랫줄에 널린 채소 말랭이들이 말라는 것을 한참 지켜본다. 정말 여름볕 못지않게 가을볕 속에서 단단한 열매처럼 말라가면서 댕댕 편종을 울린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자 추수의 계절이다. 또 어디론가 떠나야 할 정거장에 서 있는 쓸쓸한 기분을 들게 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정말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인생의 색깔처럼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한 계절이다.  가을은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는 김광균의 <추일서정>을 생각케 하기도 하지만, 가을은 "밤은 아람처럼 굵고 대추는 볼이 붉구나. 감은 침이 들고 배는 거풀이 얇구나. 가을의 풍성은 과실이 먼저 알리는구나"의 최남선의 <가을>도 떠올리게 한다. 가을볕이 유난히 좋은, 공터의 동네 빨랫줄에 가득한 가을 채소들의 편종 소리는,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계절이다. 나는 화단 뒷자리를 깊이 파고, 다 타버린 낙엽의 재를 -죽어버린 꿈의 시체를-땅 속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된다. 이야기 속의 소년 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된다"의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을 떠올리게 한다. 가을은 고독의 계절도 우수의 계절도 아닌 정말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되는 생활의 계절이다. 

호박 편종이렇게 말린 호박은 떡을 해 먹어도 좋지만 바삭바삭 튀겨 과자처럼 먹는다 ⓒ 송유미

  채소말랭이들의 여문 종소리들 가을에 관한 여러가지 은유와 비유가 많다. 옛 중국인이 흉노라고 부르는, 말 타고 전쟁하는 기마 민족이 있었다. 무적을 자랑하는 진시황이 이 흉노의 침입을 막아 내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고 북쪽 광대한 들판에서 말에게 봄풀, 여름풀을 배불리 먹였다. 이 때 가을에 이 말이 살이 쪄서 타고 달리면 달릴수록 길들어서 힘이 생긴다는 뜻에서 유래된 천고마비. 하늘이 높고 식성이 좋아져 살이 찐다는 뜻으로 현대에 와서 쓰이지만, 가을은 겨울나기 위한 준비의 계절로, 수확한 것들을 잘 보관하여 말리고 거두는 추수의 계절이기도 하다. 우리동네의 가을 풍경은 이곳저곳 봄 여름동안 씨를 뿌리고 가꾼 것들을 정성껏 말리고 추수하는 데 바쁘기도 하지만, 새로 파종을 시작한 봄도 내재된 계절이다.  부산은 날씨가 따뜻해서 땅이 12월까지도 얼지 않아 얼마든지 가을 농사가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공터 작은 텃밭에서 나온 보람과 기쁨을 아는 이웃 아줌마에 이제는 아저씨들과 아이들까지 어울려서 텃밭을 가꾼다. 농촌의 큰 전문 추수와 수확에 비하면 정말 소꼽장난 같지만 그래도 한 가정의 겨울 양식이 될 정도로 풍부한 가을 걷이다. 가을 말랭이 익어가는 채소의 아름다운 열매 종소리에 올 추석은 오기도 전에 은은한 채소들의 편종소리로 집집마다 절 한채를 품은 것이다. 

토란줄기의 말랭이가을볕이 너무 좋아요. ⓒ 송유미

저리도 하늘 높혀 놓은 걸 보니순결한 수천의 말들보다그저 따뜻한 포옹을기다리는 가슴들이넉넉한 품을 그리는 게다 높이를 잴 수도 없고깊이를 알 수는 없는 사랑은느끼면 되지만그리움이 사무쳐 숨길 수도 없는이 계절의 눈빛에는서툰 사랑의 고백처럼두고 온 것이 너무 많이 밟힌다. 햇살 손바닥에 올려 놓아도데울 수 없는 외로움바람으로 떠도는데 ...중략... 밑그림도 없이허공에 그림을 그리고 있던바람은뜨겁던 햇살 달래어 보내고그렁 그렁한 가을이파리마다분칠을 시작한다.<가을>중- '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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