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아파트에서 태양초 만들기, 거 힘드네

비 맞은 빨간 고추, 잘 마를까요?

등록|2007.09.15 18:30 수정|2007.09.15 18:53

▲ 채반에 널어 놓은 빨간고추. 이곳에 널어 놓아도 태양초가 잘될 줄 알았지만... ⓒ 정현순


"야! 이거 족히 한 근은 되겠다. 그런데 여기에 널어놓으면 다 썩어. 이것 봐라. 하나 둘씩 썩어 가는 거.  실 넣은 바늘로 고추 꼭대기에 구멍을 내서 하나 하나씩 매달아. 그럼 며칠이면 잘 마른다. 햇볕도 보고 바람도 맞아야 잘 마르지."

친구의 말이다. 난 고추를 채반에 널어도 잘 마를 줄 알았다. 그런데 친구 말대로 조금씩 썩어가는 고추가 있었다. 친구가 돌아간 뒤 그가 가르쳐준 대로 실로 매달았다. 그리곤 베란다 창문 밖에 널어 놓았다. 가을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 베란다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 ⓒ 정현순


그러다 14일 외출할 일이 있었는데 깜빡 잊고 그대로 놔두고 나갔다. 세상에, 이 일을 어쩐다. 오후부터 비가 쭉쭉 쏟아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집에 돌아갈 수도 없는 일, 혼자 발만 동동 굴렀다. 그리곤 최대한 볼일을 빨리 끝내고 집에 도착했다. 잘 마르던 고추는 비를 흠뻑 맞고 있었다. 고추를 집안으로 들이고 마른 수건으로 일일이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 중엔 시원치 않은 것도 생겨났다.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긴 했지만 잘 마를지 의심스러웠다.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고 선풍기의 바람을 이용해서 꾸들꾸들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하루 이틀 놔뒀다가 시원찮으면 냉동실에 넣어넣고 김치할 때 갈아서 쓰라고 위안해 준다.

그렇지만 나도 이번엔 태양고추를 한번 만들고 싶었다. 15일 오후에는 다행히 날이 개이고 가끔씩 햇볕도 나왔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오며가며 고추를 쳐다본다.

▲ 주말 농장에 열린 빨간 고추가 탐스럽다 ⓒ 정현순


2주 전 주말농장에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왔다. 잘 익은 고추를 보니 남편의 정성이 느껴졌다. 해서 잘 말려서 김장할 때 쓰려고 아침 저녁으로 햇볕을 쫓아다니며 말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해준 말이 더 효과가 있을 것 같기에 그 방법을 썼는데, 이놈의 건망증 때문에 그만 일이 커지고 말았다.

그래도 오후에 만져 보니 그런 대로 잘 말라가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내일 16일은 비가 더 많이 온다고 하니 걱정도 된다. 햇볕만 잘 뜨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

▲ 길위에 널어 놓은 빨간 고추 ⓒ 정현순


요즘 길을 오가다 보면 고추 말리는 게 눈에 자주 띈다. 예전에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치기가 일쑤였지만 직접 말려보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새삼 알게 됐다. 더군다나 집밖에서 말리려면 하루 종일 지키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야 제 몫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 앞마당의 고추 ⓒ 정현순


어느 집 앞마당에서 빨간 고추를 시원스럽게 널어놓고 말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풍경이 무척 예쁘다는, 단순한 생각만 했다.

아파트에서 태양초 만들기란 진짜 힘들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아파트만 힘들까? 마른 고추가 시장에 나오기까지의 농부의 수고로움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비맞은 고추가 잘 말랐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