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간장 게장 물렀거라! '산초장아찌' 나가신다!

정선 가리왕산에서 만든 산초장아찌, 그 맛을 아시나요?

등록|2007.09.16 14:47 수정|2007.09.16 18:57
얼큰한 것은 가끔이면 된다. 화끈한 맛도 가끔 그립다. 그러나 은은한 향을 가진 산초열매 장아찌는 매일 그립다. 우리네 입맛이 인간사와 비슷하다.

태생이 산간내륙지방 이어서 그런가, 내 입맛은 영락없이 촌스럽다. 아무리 근사한 음식이라도 두어 번이면 고개를 흔든다. 폼 잡고 나이프 질을 해 보지만 배는 늘 헛헛했다. 손바닥만 한 고깃덩어리 하나 먹고 배부른 척 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고향의 맛, 산초 열매 장아찌는 그립다

어릴 적 살던 마을에서는 생선이라고 자반고등어 밖에 없었다. 소금에 절은 고등어가 가장 맛있었고 바다에서 나는 것은 죄다 고등어 밖에 없는 줄 알았다. 물론 초등학교 입학 전의 일이다.

산초열매산초장아찌 담그기에 적당하다. 검붉게 익은 열매는 기름을 짠다. ⓒ 강기희


언젠가 제주도에 갔을 때 고등어는 생선도 아니라는 말을 듣고 황망했던 기억도 있다. 대학시절 강릉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친구 어머니는 바다에 나는 것들을 사흘 동안 밥상 위에 올렸다. 처음 먹어보는 것들이 즐비했지만 된장찌개가 그리워 더 머물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산초기름 냄새는 십리도 넘게 퍼져

입맛이라는 게 그렇다. 태어난 곳의 맛을 기억하는 한 인간은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같은 곳에서 자랐지만 햄버거로 하루 세 끼를 떼우며 자신을 '뉴요커'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그 친구를 어쩌다 만나면 속이 거북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연일 내리는 비. 이렇게 비 내리는 날이면 산초 두부가 그립다. 산초 두부는 산초기름으로 구운 두부를 말한다. 솥두껑에 산초 름을 두르고 살짝 구운 두부는 정선 지방에서 별미 음식이다. 거기에다 막걸리 한 잔 보태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산초기름은 예나 지금이나 귀하다. 산초기름으로 두부를 부칠 때 나는 냄새는 그 향이 하도 짙어 십리도 넘게 간다. 어린시절 잔치집이나 명절 때가 아니면 그 냄새를 맡기도 어려웠다.

산초기름은 산초나무 열매를 이용해 짠다. 산초나무는 정선을 비롯한 중부내륙 지방에선 어느 산이나 분포한다. 열매는 9월 중순 이후부터 채취한다. 연두색인 열매가 검붉은 색으로 변하면 열매가 익은 것이다.

그 시기를 놓치면 열매는 스스로 껍질을 벗고 땅으로 떨어진다. 산초기름은 해수천식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도 생전 산초기름으로 몇 분이나 이어지던 기침을 다스렸다.

산초열매와 노린재산초열매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뿐 아니다. 노린재는 산초열매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운다. ⓒ 강기희


지난 해엔 산초열매로 기름을 짜 두 홉짜리 소주병 다섯 개를 만들었다. 이리저리 나눠주고 두 개 남겼지만 그 마저도 한 병은 어머니께서 파셨다. 산초기름은 귀하기 때문에 비싼 값에 거래된다. 그럼에도 만든 공에 비하면 헐하다.

산초장아찌, 삽결살과 함께 먹으면 찰떡궁합

남은 산초기름으로 가끔 두부를 구워먹지만 그것도 귀한 손님이 왔을 때만 있는 일이다. 귀한 만큼 귀한 대접을 하는 것이다.

올해는 산초기름 대신 산초 장아찌를 담그기로 했다. 산초열매는 나무에 있는 가시때문에 따기도 힘든데다 기름을 짜면 쥐오줌 만큼 나오기 때문이다. 기름을 짜는 대신 장아찌를 담그면 열매를 다 먹을 수 있어 경제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장아찌를 담그면 열매뿐 아니라 산초 간장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산초 간장은 밥을 비벼 먹을 때 쓰이는데, 그 맛이 간장 게장 '저리 가라'다. 삼겹살을 구울 때 함께 먹으면 그 맛이 찰떡궁합이다.

산초열매로 장아찌를 담글 때는 열매가 익기 전에 따야 한다. 담그는 방법은 만드는 이의 입맛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올해 만든 장아찌는 진간장과 사과식초, 정종, 흙설탕을 같은 비율로 하여 30kg 담갔다. 이와 함께 집에서 달인 간장과 진간장을 같은 비율로 하여 10kg병에 따로이 만들어 두었다.

이것들은 담근지 100일을 넘긴 후에 먹어야 하지만, 맛이 궁금하여 벌써 몇 차례나 들어냈다. 맛이 제대로 익지 않았음에도 맛은 기가 막히다.

산초다듬기산초를 가위로 다듬어 물로 씻는다. 다음 물기를 완전히 뺀 다음 유리병에 넣는다. ⓒ 강기희


절집에서 가장 인기있는 밑반찬 중 하나도 산초 열매 장아찌이다. 절집에서도 어지간히 귀한 손님이 아니면 산초열매 장아찌를 대접하지 않는다.

산초열매는 음식뿐 아니라 몸을 다스리는 민간요법으로도 많이 쓰인다. 산초는 종기나 타박상에 좋으며, 산초열매나 나무를 달인 물은 마시면 두통과 기침을 멈추게 하고 입 안에 담고 있으면 충치의 아픔도 멎게 한다. 또한 치질환자에겐 달인 물로 씻으면 치질에도 효험이 있다고 알려졌다.

버릴 것 없는 산초, 약효도 풍부해

산초가 이렇게 민간요법으로 널리 알려진데는 산초가 지닌 성분이 살충과 해독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한방에서도 산초열매를 방향성 건위약, 염증약, 위장염, 이뇨제 등의 치료제로 쓰고 있다.

산초뿌리 또한 약효가 크다고 하지만 큰 나무를 만나기 어려운 게 단점이라 열매나 잎을 많이 사용한다. 산초는 자극성이 강한 열매이므로 임신부에겐 이롭지 않다는 것도 알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사랑은 얼마나 비열한 소통인가 네 파아란 잎과 향기를 위해 나는 날마다 한 桶의 물을 길어 나르며 울타리 밖의 햇살을 너에게 끌어다 주었건만 이파리 사이를 들여다보면 너는 어느새 은밀히 가시를 키우고 있었구나

그러나 사랑은 또한 얼마나 장렬한 소통인가 네가 너를 지키기 위해 가시를 키우는 동안에도 나는 오로지 너에게 아프게 찔리기 위해, 오로지 상처받기 위해서만 너를 사랑했으니 산초나무여, 네 몸에 돋아난 아득한 신열의 잎사귀들이여

그러니 사랑은 또한 얼마나 열렬한 고독의 음악인가



- 박정대 시 '산초나무에게서 듣는 음악' 전문

강원도 정선이 고향인 박정대 시인은 산초나무에게서 고독한 음악을 들었지만 산초열매로 담근 장아찌는 절대 고독하지 않다. 홀로 먹기엔 눈가로 어른어른 떠오르는 이들에게 미안하고 아무에게나 선뜻 내놓기엔 아까운 게 산초장아찌이다.

산초기름으로 구운 산초두부와 산초 열매 장아찌 한 접시 놓고 삼겹살 지글지글 굽는 자리에 초대되는 이는 적어도 벗 하나는 잘 두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산초장아찌막 담은 장아찌이지만 맛과 향이 좋다. 생선의 비린내와 고기의 기름기를 없애주는 데 탁월하다. 간장은 소스로 사용한다. ⓒ 강기희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