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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설득한 김일성 주석의 말

등록|2007.09.17 10:50 수정|2007.09.17 10:56
10월 2-4일까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두 사람은 만남이 보통 만남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상회담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 사람에게서 말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준이다. 어눌한 말투가 어떤 때는 사람들을 더 감동시킬 수 있지만 감동시키기에는 부족하다. 특히 정치가들의 말은 인민대중을 설득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격정과 열정이 담긴 말을 통하여 사람들을 설득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39' <정치와 진리>에서 김선욱은 "정치적 행위는 언어적 행위"라 주장했다.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언어를 통하여 서로를 알아가고 정치적 행위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말 자체가 정치인 것이다.

▲ <김일성의 말, 그 대중 설득의 전략> ⓒ 책세상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40' 전미영의 <김일성의 말, 그 대중 설득의 전략>은 김일성 주석이 북한 인민을 말을 통하여 설득시켰다는 매우 흥미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북한이라는 특정집단이 김일성을 신격화시키고 그들의 교주로 섬기는 것과 같은 현상을 두고 사이비 종교라고 비아냥거리지만 우리는 독재정권이 한 세대 이상 유지하는 것을 20세기 이후에는 경험할 수 없었다. 아무리 폭압정권이라 해도 20년 이상, 자기 아들에게까지 폭압정권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일성 체제에는 분명 무엇인가 있었다는 뜻이다.

북한의 김일성 60년 체제는 과연 어떻게 존속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김일성은 폭군, 폭정의 정치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의 경험을 통하여 김일성이 폭압과 억압의 방법만으로 자기 뿐만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까지 정권을 유지하게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궁금증을 전미영은 김일성 주석의 말의 정치를 통하여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었다. 김주석은 폭압만으로 정권을 유지한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하여 인민 대중을 설득시켰다. 전미영은 김일성 주석의 말을 인용했다.

"김일성은 영도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모든 사업의 집행에서 설복과 해설의 방법으로 대중을 동원하는 것, 대중으로 하여금 무진장한 적극성과 창발성을 발휘하게 할 수 있다고 정책적 의미를 밝히고 있다."(본문 19쪽)

김일성 주석의 통치방법은 설복하고 해설의 방법 곧, 언어를 통하여 인민 특히 지지자들과 소수의 동요분자들을 다스렸다. '언어는 사유를 이루며 사상을 나타내주는 기본 수단이다.' <주체의 언어 이론>에서 밝힌 언어가 갖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북한 언어 이론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 중 일부이다.

이를 위하여 북한은 정부 초기부터 '문맹퇴치운동'를 적극 실시하였다고 전미영은 밝히고 있다. 말과 문자, 곧 언어를 통하여 북한 정부, 아니 김주석은 철저히 인민대중을 교화시켰다. 이 교화는 총과 탱크를 통한 폭압정치보다 훨씬 인민대중을 자신을 신격화, 수령으로 모시는 데 나은 방법이 된 것이다. 힘으로 누르는 정치는 언젠가는 폭발하기 마련임을 김주석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말을 담은 저작들을 통하여 김일성은 북한을 통치했다.

"김일성의 저작들은 북한의 모든 공공집회, 연설, 보고회 등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상 언어생활에까지도 인용해야 하는 북한의 사상, 이론의 원전으로 군림하게 된다. 이는 이제 김일성의 '말'이 북한 사회의 준거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김일성의 노작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김일성 저작선집> <김일성 저작집>은 북한 사회에서는 일종의 '경전'이며 그 이외의 북한 문헌은 모두 이 경전의 주석서에 불과하다고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다."(본문 37쪽)

김일성 주석의 통치방법은 언어였고, 언어를 담은 저작들이었다. 탄압과 폭압적인 방법을 전혀 통치수단만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하여 북한을 통치한 김일성의 통치철학은 언어가 얼마나 인민대중을 설득하는 데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전미영은 김주석의 언어 사용법을 대중성, 반복성 민족성을 말한다. 인민대중은 사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하여 강의하는 강의실의 언어에 감복하지 않는다. 고급 언어를 말하라 하지만, 시장통에서 회자되는 말에 더 설득당하기 마련이다. 김일성은 말하고 있다.

"선전원과 선동원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남이 알아들고 깨닫게 하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남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본문 47쪽)

온갖 미사어구와 어려운 말을 통하여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본다.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고, 쓰는 무리들을 볼 때 김일성의 이런 언어감각은 놀랍다. 인민이 알아 듣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인민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는 이들을 보면 참 어리석다는 생각을 한다.

반복성이다. 언어는 반복 나는 이를 세뇌시키는 방법이라 말하고 싶다. 민족성, 일제강점, 폭압기를 경험한 인민대중에게 민족성을 가미한 언어는 더 큰 설득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 김일성정권을 우리는 도깨비와 같은 이들로 규정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얼마나 허황된 규정이었는지 깨닫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김일성이 총과 칼만으로 북한을 50년 이상 지배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말과 언어, 50년 이상 인민대중을 설득시켰왔다. 물론 갇힌 공간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언어적 행위가 북한 인민대중을 새로운 세계와 사상에 대하여 전혀 열려있지 못하게 한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 수도 있다.

북한의 주체사상와 김일성 숭배사상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고, 받아 들일 수 없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와 어떤 단체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아니 일상 생활에서 많은 사람과 대화를 통하여 우리가 언어 사용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배울 수 있다. 김일성은 자신의 언어를 통하여 인민을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들어오게 하였고, 조작된 언어 내면에서 김일성은 북한을 60년 이상 통치하고 있다.

우리가 김일성의 말을 올바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북한을 제대로 알 수 없으며, 북한 체제의 본질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무조건 악의 축이니, 처단해야 할 집단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면 우리는 북한을 바로 알 수 없다. 북한을 말로 통치한 김일성의 탁월한 언어 통치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덧붙이는 글 김일성의 말, 그 대중설득의 전략 l 전미영 | 책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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