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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중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추리무협소설 <천지> 274회

등록|2007.09.17 08:53 수정|2007.09.17 08:57
중의는 회와 함께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잠룡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드디어는 성공했다. 잠룡이 군산혈전에서 이미 죽은 두 명 중 하나로 분류되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철담도 동정 군산혈전 때까지 잠룡이 살아 있었다면 우리는 매우 곤란했을 것이라 말한 적이 있었네. 헌데 어떻게 자네 딸아이가 정순한 혼원잠을 익히고 있는지 매우 궁금했다네. 그것은 이미 분실된 잠룡의 비급(秘笈)이 있어도 불가능한 일인데.”

동정 군산혈전 이전에 죽었다는 두 명 중 하나가 잠룡이었다. 그리고 중의의 말에는 분실된 잠룡의 비급을 운중이 가로채 딸아이에게 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내포하고 있었다.

“비급만으로는 불가능하지.... 맞네..... 하지만 잠룡이 살아있다면 가능하네.”

그 말에 중의는 물론 성곤까지 놀란 표정으로 보주를 쳐다보았다. 한편으로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농담하고 있나? 잠룡은 분명 시력을 잃고 쫓기다가 죽었네.”

중의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잠룡이 살아있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이 사실만큼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자네가 시신을 확인했는가? 그리고 그 시신이 잠룡임을 확인한 것인가?”

중의는 멈칫했다. 시신을 확인한 것은 사실이었다. 불에 타 짓뭉개졌지만 잠룡이라고 확신했었다.

“분명 확인했네. 물론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체구나 그 당시 상황으로 보아 잠룡이 분명했네.”

운중의 입술꼬리에 미미한 미소가 맺혔다.

“사람의 일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은 없네. 항상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자신의 눈으로 확인을 했다 해도 종종 믿지 못할 일도 일어나는 법이지.”

사실 그렇다. 사람이 절대적이라 믿고 있는 일도 시간이 지나고 또 다른 면을 알게 될 때에는 절대적이 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절대적인 확신은 종종 절대적인 불신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자네는 잠룡이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여전히 믿지 못하고 오히려 운중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말투였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네. 지금도.... 바로 여기 운중보 내에..... 물론 죽은 것이나 다름은 없지만....”

“무엇이라고....?”

중의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마터면 운중의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 태세였다. 그러더니 잠시 노기가 서린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처연한 눈길로 바뀌더니 자리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자네는.... 어느 순간부터 그랬어....”

탄식이었다. 중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아주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은 자신의 술잔에 정지한 채 말을 이었다.

“자네는 구룡이 사라지는 순간부터 구룡을 그리워했어. 그리고 구룡과 관련된 인물들을 최대한 보호하기 시작했지. 우리 동정오우와 회에서는 그들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 그리도 애쓰고 있는데도 말이야.”

“이유야 자네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겠지만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네.”

“그것이 회에서 자네를 선택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였네.”

“나는 회가 나를 선택하길 바라지 않았네. 당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내가 이 운중보의 허울 좋은 보주가 되었을 뿐...”

운중의 음성은 가라앉아 있었다. 중의는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운중의 말이 이어졌다.

“만약 내 아내와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중원 어느 구석 쓰러져 가는 초막에 머물러도 행복했을 것이네. 그것을 회와 자네들이 막았지.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짓을 해가면서 말이야.”

“...............!”

중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알고 있다.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모르길 간절하게 바랬다. 그런데 알고 있다. 그 사건에 대해서 운중은 얼마나 더 깊이 알고 있는 것일까? 머리가 어지럽고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그건...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도대체 이 친구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더욱 나를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든 것은 바로 자네들....”

알고 있다. 모두 알고 있다. 마지막까지 감추고 싶은 비밀까지 알고 있다.

“그만... 그만 하게.....!”

“그 계획을 처음 짜낸 사람이 바로 자네였고, 철담이 거기에 동조했지. 회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혈간과 성곤 이 친구는 묵인했고.....”

보주의 말은 중의의 바람과는 달리 멈추어지지 않았다. 또한 음성 역시 변함이 없었다. 자신의 아른 상처를 헤집고 있는데도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자아를 깨달을 나이 이전부터 같이 먹고 잤던..... 그래서 형제보다 더 가까운 자네들이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 것이지. 만약 그 계획이 회에서 나왔다면 나는 지금까지 참고 있지 않았을 것이네.”

“두려웠네.... 지금도 그렇지만 자네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네.”

정말이었다. 두려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 그때에도 운중은 왠지 두려운 존재였다. 같이 있으면 절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돌아서 버리고 나면 언제나 가슴 속에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다.

“아마 진정으로 의지할 친구나 형제라고 느꼈다면 그렇지 않았겠지. 자신이 넘어야할 상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게야...”

성곤이 끼어들었다. 그 역시 진심이었다. 같이 먹고 자고, 같이 고생하고, 같이 수학했지만, 그리고 뚜렷하게 운중이 나서는 일도 없었지만 언제나 다섯 친구들 사이에서 운중은 독보적인 존재였다. 언제나 뒤에 처져 있기를 바란 듯 보였지만 언제나 제일 앞에 있었다. 

또한 친구를 가정이란 테두리 안에 안주하게 하여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가정이나 혈육에 유독 집착을 보이는 운중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운중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한 시기에 운중이 훌쩍 떠나가 버리면 일이 어렵게 꼬일 수 있었고, 운중이 없는 공백을 메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철담이 고백하던가....? 그렇군. 철담이 왜 자네에게 죽여 달라고 사정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이미 중의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정말 철담이 왜 그랬는지 이제야 절실하게 느껴졌다. 자신이야 훌쩍 떠났다가 일년 만에...어떤 때는 수년 만에 들러 얼굴을 보지만 철담은 매일 얼굴을 마주보며 지냈지 않은가?

“이제 어찌할 셈인가?”

운중이 대답이 없자 중의는 다시 물었다. 하지만 운중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잔에 술을 따르고는 훌쩍 마셨다. 사실 어떤 대답을 기대한 질문도 아니었는데..... 그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기 어려워 어떤 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운중은 그저 입을 다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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