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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속에 더욱 눈부신 꽃무릇

선운사는 꽃무릇으로 인해 새롭게 태어나고 있어

등록|2007.09.17 17:50 수정|2007.09.17 17:57
“야 ! 곱다.”

빨간 꽃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다. 어찌도 저렇게 화려할까? 극락이 있다면 아마도 저런 모습이 아닐까? 아무 것도 더할 필요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이었다. 온통 화엄 세상이다. 바라보는 이의 가슴에 열정을 심어주고 있었고 잠자고 있는 사랑의 불길을 되살려주고 있었다. 그냥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취한 모습이었다.

꽃무릇 화려한 얼굴 ⓒ 정기상


선운사는 온통 꽃 세상이다. 시원하게 새로 뚫린 도로에서 선운사로 들어서니 도로의 양편에 꽃무릇들이 피어 있었다.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우뚝 솟은 꽃대의 모습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빨간 꽃잎이 그렇게 열정적일 수가 없다. 바라보는 시선까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북상하는 태풍 소식에 출발하는 것을 망설였었다. 구름이 짙게 내려앉아 있기만 하였어도 그렇게 주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창을 두드리며 내리는 빗소리가 가로 막고 있었다. 그러나 그대로 마음을 접을 수는 없었다. 지난 번에 가서 보지 못한 아쉬움이 그대로 살아 있고 거기에 고창 수산물 축제가 오늘까지 열린다고 하지 않는가.

꽃무릇의 개화시기에 맞춰서 매년 열리는 수산물 축제가 오늘(16일)까지다. 그러니 비가 내려도 가고 싶었다. 비를 바라보면 집안에서 한숨을 내쉬면서 앉아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집사람을 꼬드겼고 나선 것이다. 야속한 빗줄기는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야속한 마음이 들기는 하였지만, 비속을 달리는 기분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눈부시게 돋보이고 ⓒ 정기상


꽃무릇의 열렬한 환영 속에 축제장에 들어섰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로 인해 행사장도 썰렁하였다. 만약에 꽃무릇마저 없었다면 처연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였을 것이 분명하였다. 애써 준비한 다양한 볼거리들이 외롭게 비를 맞고 있었다. 예쁜 분재들이며 행사 부스들이 텅텅 비어 있었다. 비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었다.

행사장의 썰렁함과 달리 꽃이 피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우비를 쓰고 우산을 들고서 환하게 웃고 있는 꽃을 감상하기 위함이었다. 군락을 이루고서 피어나고 있는 꽃들의 유혹에 모두 다 넘어가고 있었다. 꽃은 활짝 만개해 있지는 않았다. 피어 있는 것보다 아직 꽃봉오리채로 있는 것이 더 많았다. 앞으로 일주일 정도가 더 지나면 만발할 것이 분명하였다.

꽃을 바라보면서 여유를 생각하게 된다. 스케줄에 밀려 살아간다면 맛볼 수 없는 느낌이었다. 정신없이 살다보면 다른 것을 볼 수가 없다. 일에 묻혀 주변의 것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 여유를 가질 수 없게 되고 다른 생각조차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미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기계일 뿐이다.

보이는 사랑 애틋한 ⓒ 정기상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처럼 살아가게 되면, 창조는 생각할 수가 없다. 자유를 느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밀려서 수동적으로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행복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꽃에 대한 느낌은 다양하다. 하려하다. 아름답다. 곱다. 가지고 싶어진다. 꽃처럼 장식하고 싶어진다.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을 끌어내고, 끌려 나온 생각들은 다시 다른 생각들을 연쇄적으로 이끌어낸다. 이런 생각들은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다양한 생각들은 다양한 감정으로 이어진다. 감정들은 조합하고 어우러져 새로운 생각으로 발전하게 된다. 새로운 생각을 새로운 세상에 들어서게 만든다. 경험하지 새로운 세상에 들어서면 경이로움에 전율하게 된다. 그것은 스릴이고 흥분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실은 욕구가 저절로 생기고 그것을 성취하였을 때의 기쁨이 설레게 한다.

가슴에 그득 채워지는 ⓒ 정기상


비가 내리는 중에서도 마음에 그득 차는 기쁨은 바로 여기에서 오는 것이었다. 꽃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에 여유를 주고 그 여유에서 창출되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유란 바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것에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환희의 세상으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비속에서 눈부시게 피어난 꽃무릇이 마음을 충만하게 해준다. 더 이상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꽃을 바라보면서 자유를 만끽한다.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상에서 마음껏 날개를 편다. 그리고 걸림 없이 하늘을 마음껏 난다. 가슴에 그득 차는 기쁨에 황홀해졌다. 선운사는 꽃무릇으로 인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꽃 속에 푹 젖었다.<春城>

덧붙이는 글 사진은 전북 고창의 선운사에서 촬영(07.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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