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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발언' 교수, 이번엔 '파출부 발언'

"파출부 쓰면서 여성 사이 불평등해졌다"... K교수의 도넘은 언어성폭력

등록|2007.09.19 08:43 수정|2007.09.19 15:53

▲ 교수와 학생 사이의 권력 관계는 언어성폭력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어렵게 한다. ⓒ 서울대 강의실 성폭력 모니터링단


"능력있는 여자가 능력없는 여자를 파출부로 쓰기 시작하면서 여성들 사이의 관계가 엄청나게 불평등해졌다."

지난 18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서울의 한 사립대 '한국외교정책론' 수업시간에 나온 K(59)교수의 발언이다. 나를 포함해 100여명 정도가 수강하는 전공수업이다.

점심을 먹고 난 뒤라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 있던 나는 그 말을 듣고 번개에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교수와 남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강의실 전체에 번졌다. 간간이 여학생들의 웃음소리도 섞여 있었다.

'남녀평등'을 이야기하다가 어째서 느닷없이 '여성이 여성 때문에 불평등해졌다'는 말을 한 것일까? 여성의 권익이 신장됨으로써 여성들끼리의 관계가 불평등해졌으니 조선시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말인가? 능력있는 여자와 능력없는 여자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머리 속은 하얗게 변했고 충격으로 먹먹해졌다. 교수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불쾌감을 느낀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걸까? 아니,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던 내 옆에 앉았던 학생과 나. 이렇게 둘 뿐이었을까?

'성폭력 발언' 이미 잊으셨나요?

'파출부 발언'이 나오게 된 경위는 대략 이렇다.

K교수는 이날 수업에서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가 의화단 운동을 거쳐 신해혁명을 일으키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신해혁명의 강령 중에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남녀평등'에 대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다음 설명이었다.

"당시의 '남녀평등'이라는 것은 여성이 전쟁터에 나가서 돌 던지고 싸우는 것을 의미했다. 이후 사회주의 국가들이 내세운 '남녀평등주의'도 거의 다 그런 맥락이다…(중략)…능력있는 여자들이 생겨났고, 그 여자들이 능력없는 여자들을 파출부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여성들 사이의 관계가 엄청나게 불평등해졌다. KBS <사랑과 전쟁> 보면 그런 사례 많이 나온다(웃음)."

문제의 발언을 한 K교수는 2005년에도 수업시간에 "취업하고 싶은데 못하는 심정은 성폭행을 당하고 싶은데 못 당하는 늙어가는 여자의 심정과 같다"는 말을 해 물의를 빚은 바있다.  당시 '한 유명 사립대 K교수'로 시작하는 기사가 신문지상을 도배했고 학생들이 공식사과를 요구했지만, K교수는 해당 과목을 다른 교수에게 넘기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됐다.

이에 대해 이 학교 양성평등센터 관계자는 "당시 피해학생이 직접 사건 접수를 하지 않아서 공식적으로 처리할 수 없었다"며 "'처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흐지부지 넘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K교수가 수업을 그만두고 안식년 얻어서 1년 동안 쉰 게 전부"라며 "피해 학생이 찾아와서 얘기하지 않은 경우 센터에서 나서기 힘들다"고 말했다.

설치는 여성 등장하는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

이번 학기 들어서 K교수가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은 비단 이날 수업 뿐이 아니다. 2학기 개강 후 첫 강의 시간에 교수는 앞줄 가운데 앉은 여학생을 지목해 질문을 했다. 여학생이 대답을 못하자, K교수는 "너 그런 식으로 하면 시집 못 간다"고 말했다. 대상이 남학생이었더라도 교수는 같은 말을 했을까?

18일 K교수의 여성 비하 발언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수업을 들은 내가 듣기에는 폭탄발언 정도가 아니라 거의 폭격기 수준이다.

'파출부 발언'에 이어 교수는 뜬금없이 "설치고 폭력적인 여성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라고 말했다.  나에겐 그 말이 '페미니스트는 설치고 폭력적인 여성'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함께 수업을 들었던 김지영(가명·22)씨는 "저 교수 예전에도 이상한 말(성폭력 발언)을 해서 시끄러웠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저렇게 할 줄 몰랐다"며 "버젓이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또다른 학생인 황주희(가명·23)씨는 "K교수는 사례를 들 때마다 '여성'을 가지고 얘기하더라"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는 학생들을 그리 많지 않다. 사건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왜 그렇게 예민하냐" "그냥 좀 넘어가지" "너가 그러면 그 분이 쌓아온 업적은 뭐가 되느냐" 등 교수를 두둔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태연한 교수, '좋게좋게' 넘어가는 학생들

교수는 문제가 되는 발언을 자연스럽게 하고, 그에 반발하는 학생은 오히려 매도되기 십상이다. 정작 문제를 느끼고 반발하는 목소리는 교수에게 가 닿기도 전에 학생들 선에서 먼저 차단된다. 학생들이 강의평가서를 통해 강의실 내 언어성폭력 사례를 신고할 수 있지만 교수가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학교는 지난 2001년 성희롱 및 성폭력 근절을 위해 '성희롱 및 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고 사건처리를 담당하는 '양성평등센터'를 만들었다. 양성평등센터는 피해자나 제3자의 신고 또는 상담 중에 피해사실을 인지한 경우,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중재하거나 조사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다.

양성평등센터는 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징계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해당징계기관에 징계를 요구하거나 발의할 수 있다. 교원의 경우 교원징계위원회의 징계의결에 따라 징계처리하게 돼 있다.

이 학교 김은진(가명·22)씨는 "익명이긴 하지만 신고했다가 불이익을 당하게 될까봐 두렵다"고 처리 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태연한 교수와 '좋게좋게' 넘어가기를 원하는 다수의 학생들 속에서 '안 괜찮은' 나는 "나의 수업권을 침해받았어"라고 마음 속으로만 외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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