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사과 따간 얌체 시민은 누구?
서울 양재 나들목 '사과공원' 무차별 서리 당해
▲ 서리 맞기 전서리 맞기 전, 빨갛게 익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 조광선
"이런 한발 늦었네, 또 따갔군, 또 따갔어!"
지난 17일 서울 양재 나들목을 지나던 기자는 놀라움과 허탈감에 빠졌다. 빨갛게 주렁주렁 열려 있었던 맛나 보이던 사과가 대부분 없어졌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몰염치한 시민들이 채 익기도 전에 사과를 서리해갔던 터라 올해도 또 그러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이 되던 터였다. 그러나 올해는 사과가 빨갛게 익을 때까지 그런 조짐이 없는 듯 했다.
이번에 서리를 맞은 사과는 기자가 추정 해 본 결과 대략 4500여개 정도, 박스(15kg기준)로 치면 90~100여 박스 정도로 그 양은 생각 보다 매우 많다.
기자는 사과가 서리를 맞기 1주 전 서초구청 해당 관리부서인 가로수정비팀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곧 구청직원들이 사과를 따서 요양원 등에 보낼 예정이라는 계획을 알고 취재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면 사과 따는 날 취재를 하려고 하니 꼭 연락을 해 주세요"하고 부탁도 했다. 그런데 한발 늦은 것이다. 사과를 서리하려는 사람들의 성미가 아무래도 급했고 행동도 한발 빨랐다.
"사과를 따신 건가요? 아니면 서리 맞은 건가요?"
"그러게 말이에요, 요양원 등 불우한 시설에 보낼 예정이었는데 벌써 다 따 가버렸네요."
서초구청 담당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그녀 역시 허탈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로 사과는 누가, 그리고 언제 따 가는 건가요?"
"낮에 구청으로 신고 전화가 가끔 옵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차를 대놓고 사과를 막 따고 있어요, 빨리 와서 좀 못 따게 해주세요' 이렇게 시민들께서 다급하게 신고 전화를 가끔 하십니다. 그래서 바로 현장에 출동해서 가보면 이미 따가고 사라진 상태구요."
"대낮에 그렇게 따 간단 말인가요? 우와~ 낯 두꺼운 사람들 많네요!."
기자는 기가 찼다. 어떻게 백주 대낮에 차들이 줄줄이 다니며 차에 탄 그 많은 사람들이 빤히 쳐다 보고 있는데 사과를 따 갈까?
기자는 매일 같이 이곳 사과를 보며 출퇴근을 했던 터라 사과에 대한 애정은 남 달랐고 본격 취재가 시작되기 불과 며칠 전 이런 일이 벌어지니 더욱 더 허탈했다.
올 한여름 동안 사과는 비가 많이 왔음에도 간간히 비쳐지는 햇볕으로 서서히 빨갛게 익어가기 시작했었다. 어느새 무더위가 끝나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9월 둘째주에 접어들자 사과는 탐스럽게 잘 익었었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 서리 맞은 후서리를 맞은 이후 사과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 조광선
심은 사과나무는 조생종 갈라품종 150주와 후지품종 150주, 모두 300주 라고 한다. 서초구청은 이곳을 일명 '사과공원'이라고 명명하고 관리를 해오고 있었다.
2006년에 첫 사과열매를 맺었으나 조류 피해가 심해 대부분 사과를 수확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올해는 새가 사과 쪼아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물망을 쳐 놓았다.
그런데 올해는 걱정했던 조류피해는 망 덕분에 다행히 없었는데 빨갛게 잘 익은 사과가 탐스러웠던지 이 사람 저 사람이 하나 둘씩 따가서 결국에는 남은 것이 없을 정도로 사과나무가 휑해졌다. 결국 조류보다 사람들이 문제였다.
서초구청에서는 사과가 완전히 익을 때를 기다리며 날을 정해 수확해서 요양원이나 불우한 시설을 방문해 전달을 할 예정이었다
이제 이곳에는 아직 비교적 늦게 여무는 후지사과가 남아 있다. 지금 이 후지 사과도 이제 햇볕을 받으며 빨간 빛깔이 올라오며 익어가고 있다.
사과가 본격적으로 익는 10월쯤 또 한번의 '대서리'가 시작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번에는 구청에서 발 빠르게 움직여 이 후지사과만이라도 불우시설에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가로수 사과를 따갈 만큼 대담한 시민들은 누구인지 그 얼굴이 참 궁금하다.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를 보는 재미와 따서 불우한 곳에 나누는 재미를 실현할 날은 결국 오지 않는 것일까?
▲ 잘익은 사과이 탐스러운 사과를 누가 따 갔을까? ⓒ 조광선
▲ 탐스러운 사과시골 과수원에서 재배한 사과 못지 않게 크기와 빛깔은 좋았었다. ⓒ 조광선
▲ 도로옆에서 영글어 가고 있는 사과무더웠던 8월, 차량들이 달리는 바로 옆에서 사과가 영글어 가고 있다. (지난8월말 촬영) ⓒ 조광선
덧붙이는 글
취재에 협조해 주신 서초구청 가로수정비팀 박고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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