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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 조상님께 마지막 봉사하다

행정복합도시 산소 이장을 앞둔 마지막 벌초

등록|2007.09.19 17:14 수정|2007.09.20 14:55

벌초벌초는 조상님께 드리는 최소한의 예의이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벌초를 강행했다. 사진은 지난해 벌초모습 ⓒ 김동이

"휴우~휴우~"
"오늘 꼭 해야 되는디 비가 이렇게 와서 원."

아버지께서는 답답하신지 연신 담배만 피워대며 한숨을 내쉬셨다.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었다. 하지만, 비는 예보와는 달리 아침부터 억수같이 쏟아부었다. 비가 예보됐던 15일은 비가 내리지 않고 흐린 날씨만 보였고 비가 예보되지 않았던 16일은 비가 억세게 퍼부었다. 집 안에서는 이러한 기상예보를 보고 이미 16일에 벌초하기로 날을 잡아놓은 상태여서 옮길 수도 없었다.

특히나 서울에서 내려오는 친척들이 있었기에 날을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 더 미루었다가는 추석에 성묘도 못 갈 판이었다. 그리하여 이미 약속돼 있던 날짜인 16일에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벌초를 강행했다.

요즘 기상 예보 때문에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일례로 현재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현장에서도 여름에 비로 인해 자꾸 공사가 미루어지고 있는 상태임에도 기상예보를 보고 비온다는 예보가 있으면 공사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비온다던 날씨가 비는 안 오고 갑자기 햇빛이 쨍쨍 내리쬐면 어차피 인부들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공사를 하지 못하게 된다.

무슨 연기지?무슨 연기일까요? 아직도 아궁이에 밥하는 집이 있나? 그게 아니고 비때문에 고추를 말리지 못해 불을 지펴 굴뚝에서 연기나는 모습입니다. ⓒ 김동이

또한 고추를 말려야 하는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으면 일단 널어놓지 않고 있다가 비가 오지 않는다는 예보가 있으면 널어놓는데 요즘 기상예보가 하도 제멋대로여서 시골에 있는 농민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이외에도 다른 문제가 많지만 이쯤에서 마무리 짓고 다시 벌초 이야기를 해보자.

아무튼 간에 벌초는 강행하기로 했다.

약속시간대로 아침 8시가 되자 친척들이 속속들이 도착했고 곧바로 예초기와 낫, 톱, 갈퀴 등의 벌초 도구들을 들고 산소가 있는 선산으로 이동했다.

매년 그래왔지만 이날 벌초를 해야 할 산소는 15기였다. 15기면 예년에 비교해 보면 예초기 3대를 돌릴 경우 한나절이면 벌초를 다 끝낼 수 있었다. 이날도 우리 예초기를 포함하여 총 3대의 예초기를 들고 나선 터였다.

“올 해가 마지막 벌초니까 다같이 힘내서 해보자구.”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면 묘(墓) 이장해야 하니까 작년처럼 정교하게 깎을 필요는 없어.”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이내 예초기가 돌아가고 본격적인 벌초가 시작되었다.

“부릉부릉~ 웽~ 사각사각”

예초기에 힘찬 시동이 걸리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날이 매섭게 돌아가자 길게 자란 풀과 나무 등 산소를 둘러싸고 있던 이름 모를 잡초들이 순식간에 잘려 나갔다. 비가 내리는 날씨임에도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빗물과 섞여 내리고 있었다. 또한 예초기에서 튄 풀의 잔해들이 얼굴에 붙어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비가 내려 한 번 얼굴에 붙은 풀들은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푯말이 밖혀있는 산소세종도시내 산소에는 이렇게 산소앞에 푯말이 꽂혀져 있다. 이것이 묘의 번호이자 신고가 된 묘인지 알 수 있는 증표이다. ⓒ 김동이

특히,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 내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의 특성상 각 산소마다 산소번호가 적혀 있는 표지판들이 박혀 있어 벌초를 하기 전에 뽑아서 한 켠에 잘 놓았다가 벌초가 끝난 다음에는 다시 꽂아놔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벌초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하늘에서는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조상들에게 마지막으로 정성껏 봉사를 하고자 하는 자손들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3시간여가 지나갔고 어느덧 3대의 예초기가 한데 모여 마지막 묘를 깎고 있었다.

“자~ 오늘 모두들 수고했어. 배고플 텐데 점심먹으러 가자고”

벌초의 끝을 알리는 아버지의 한마디에 친척들은 가지고 간 도구들을 모두 챙겨서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동안에도 팔이 저절로 떨리고 있었다.

고향의 들녁고향의 들녁에서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정말 아름답고 정겨운 시골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 김동이

산을 내려오면서 얼마 안 있으면 떠날 고향마을을 둘러보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마을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고향마을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왜 진작에 몰랐을까?

탐스러운 밤너무 높은 곳에 따지는 못했지만 제법 탐스러워 보인다. 밤송이가 벌어지는 것을 보니 가을이 왔긴 왔나보군. ⓒ 김동이

박과 수세미오랜만에 보는 고향의 정겨운 모습이다. ⓒ 김동이

토란잎빗방울이 마치 토란잎에 박혀 있는 보석처럼 보인다.예전에는 토란잎을 우산대용으로 쓰고 다니기도 했다. ⓒ 김동이

호박잎아직 피지않은 호박꽃이 마치 주둥이를 내밀고 먹이를 달라고 울어대는 새끼새들같이 느껴진다. ⓒ 김동이

집에 도착한 친척들은 젖은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향했다. 미리 주문해 놓은 갈비탕을 한 그릇씩 들이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렇게 마지막 벌초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날 마지막 벌초를 마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사, 벌초, 성묘 등은 조상님께 드리는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데도 요즈음은 이마저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벌초대행서비스? 과연 이러한 것이 필요할까? 물론 외국에 나가 있어 벌초대행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같은 땅덩어리 안에 살면서 조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이 아무리 편해졌다 하더라도 조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옛말에 “잘되면 내탓, 못되면 조상탓”이라는 속담이 있다. 조상에게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키고 조상탓을 해야 하지 않을까? 관혼상제가 아무리 간소화 됐다지만 조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버리는 세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덧붙이는 글 가장 아쉬웠던 점은 비가 억수로 쏟아져 마지막 벌초하는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했던 사진으로 대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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