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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의 이례적 '이명박 발언' 비판... 그러나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언행에 자제력 모자라면 대통령 결격사유"

등록|2007.09.21 12:00 수정|2007.09.21 15:14

▲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한법률구조공단 강당에서 열린 신용불량자와의 '타운미팅'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생각에 잠겨 있다. ⓒ 권우성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서는 오늘 <동아일보>가 조금은 섭섭할 듯하다. <동아일보>가 이명박 후보의 언행과 처신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오늘(21일) 사설 ‘이명박 지지 성적표와 설화’에서 한나라당 지도부가 대선 승리를 위해 무리한 방법으로 의원들을 선거운동에 나서도록 독려하고 있는 실태와 이명박 후보의 부적절한 언행을 문제 삼았다.

<동아일보>가 먼저 문제 삼은 것은 한나라당 사무처가 의원들에게 보낸 ‘월간 성적표’다.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최근 영남지역 의원들에게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역구별 여론조사 지지율 표를 보냈다.

<동아일보> 사설은 이를 경선 후 한 달 동안 이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얼마나 뛰었는지를 채점한 ‘월간성적표’라고 했다. 이 성적표는 노란 봉투에 넣어 보내졌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지금 ‘노란 봉투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에서는 국회의원이 '집표 영업사원'?

<동아일보>는 이 사설에서 “대선 승리를 위해 의원들을 독려하는 것은 당 지도부의 역할”일 수 있지만 “국회의원은 독립적인 입법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17대 마지막 국회의 소임을 다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진정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민주주의를 지켜 내는 데 헌신한다면 그것이 곧 ‘한나라당이 집권해야 할 이유’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국회의원을 ‘집표 영업사원’ 쯤으로 내몰아서는 (제17대 마지막 국회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이런 약속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질타했다. “유권자들은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공선사후의 정치인과 정당을 알아보고 지지할 정도의 안목을 갖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나아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규용 환경부 장관의 위장전입 문제를 한나라당 의원들이 감싼 것을 두고 “이명박 후보의 위장 전입 전력을 의식했음을 세상은 쉽게 안다”고도 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곧바로 이명박 후보의 거친 언사에 대해 직격탄을 퍼부었다. “경선 때 ‘관기’ 발언으로 비판을 받고도 또 ‘마사지 걸’ 발언으로 설화를 자초했다”며 이명박 후보의 ‘마사지 발언’을 문제 삼았다. 조·중·동을 비롯해 보수적인 언론 가운데 ‘마사지 발언’을 정면으로 문제 삼은 것은 <동아일보>가 처음이다.

<동아일보>는 “언행에 자제력이 모자라는 것은 국가리더십의 결격사유임을 현직 대통령이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지 않느냐”며 이명박 후보의 언행을 문제 삼았다. “말로써 나라를 어지럽히고 국민을 피곤하게 만드는 대통령이 다시 나와선 안 된다”고도 했다.

정확한 지적이자 비판이다. 이명박 후보로서는 다른 신문도 아닌 <동아일보>가 이같이 지적한 것이 뼈아플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동아일보>는 그동안의 보도태도나 논조 등에서 이명박 후보에 가장 ‘우호적인 언론’ 가운데 하나라는 평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실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의 최근 사설 가운데 이명박 후보의 언행을 문제 삼은 사설은 전무하다. 이명박 후보의 ‘마사지 걸’ 파문에 대해 시민사회, 특히 여성계가 모두 들고 일어설 정도로 문제를 삼아도 이들 신문들은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그런 점에서 <동아일보>의 이번 사설은 이례적이다.

사실 이명박 후보의 ‘발언 내용’이나 그 ‘스타일’은 그 누구보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들이 집중적으로 검증해야 할 대목이다. 왜냐하면 노무현 정부 내내 조·중·동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던 점이 바로 이 대목이기 때문이다.

사실 언행 스타일에서는 이명박 후보와 노무현 후보는 닮은 점이 꽤 많다. 우선 표현에 거침이 없다. 두 사람 모두 직설적이다. 비교적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 등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스타일’을 집중 비판했던 보수언론들로서는 당연히 주요 검증대상이 될 만하다.

<동아일보> 사설, 모범적이기는 했지만...

그런 점에서 <동아일보>의 오늘 사설은 ‘모범적’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 측으로서는 섭섭한 일일지 모르나 사실은 그것이 그들에게도 ‘보약’이 될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동아일보> 사설이 이 후보의 ‘마사지 걸’ 발언 파문 등을 단지 ‘언행의 자제력’ 문제 정도로 치부한 것은 문제의 본질에서 비껴간 게 아닌가 싶다.

이명박 후보의 ‘마사지 걸’ 발언에서 중요한 것은 ‘부적절한 발언’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런 발언을 한 이 후보의 ‘생각’과 ‘체질’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후보로서는 왜 <동아일보>가 이런 비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이명박 후보는 지난 19일 대한법률구조공단 앞에서 <오마이뉴스> 기자가 ‘마사지 걸’ 발언에 대해 묻자 “45년 전 남의 이야기, 우리 선배 이야기”라면서 “왜 직접 안들은 사람들이 기사를 써요”라며 그 자리에 초청받지 못했던 <오마이뉴스> 등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동아일보> 편집국장도 ‘그 자리’에 없었다. 마침 해외 출장 중이었다. <중앙일보>처럼 부국장을 대신 보내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명박 후보로서는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동아일보>가 왜 뒤늦게 또 문제를 삼나 싶기도 할 것이다.

사실은 언론에 대한 이런 ‘무지’와 ‘경시’가 더 문제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도 그랬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들은 희한하게 언론을 우습게 아는 경향들이 있다. 왜 그럴까.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조·중·동 등 보수언론에게 있다. 한나라 후보들이 보기에 ‘보수언론’들은 꼼짝없이 ‘내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동아일보>가 모처럼 제 할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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