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향단이는 왜 사투리를 안 쓰지?

주연이나 멜로 주인공이 사투리 쓰면 큰일나나

등록|2007.09.21 12:10 수정|2007.09.21 17:13

▲ MBC 드라마 <향단전> ⓒ MBC

‘춘향전’을 원전 삼은 대중문화 작품에서 향단은 대개 전라도 사투리를 쓰기 마련이다. 춘향전을 패러디한 KBS 드라마 <향단전>에서 향단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그러나 향단의 아버지는 사투리를 쓴다. 춘향의 어머니 월매는 사투리를 쓰지만, 춘향은 안 쓴다. 물론 이몽룡은 표준말을 쓴다. 전라도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데도 춘향과 이몽룡이 표준말을 사용하는 것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토지>에서도 양반은 모두 사투리를 쓰지 않았는데 동학 혁명군 수장 김개주(남접 김개남이 모델)라든지 그의 아들 김환은 천민 출신인데도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주인공 급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향단전>에서 향단이 사투리를 쓰지 않는 이유는 향단이 주인공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되면 사투리를 쓰고 싶어도 못쓴다. 물론 이 작품에서 방자는 여전히 사투리를 구사하는 인물이다.

사투리는 조연이나 희극적 인물의 전유물?

영화 <화려한 휴가>의 주요 인물들이 사투리를 쓰지 않아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영화는 광주 배경인데,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두고 정치적인 음모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었고, 광주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는 말도 쏟아졌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감독이나 출연 배우는 사투리를 주요 인물들이 사용하지 않은 것은 영화 <화려한 휴가>가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보편성이란 대중성도 말할 것이다. 감독은 어줍지 않는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보다 사투리를 포기하는 것이 광주 정신을 더 잘 그려 내는 것이라는 답변도 했다. 그래서인지 박철민과 같이 전라도 사투리에 능한 배우에게만 사투리 구사가 거의 전가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에서 사투리는 조연이나 희극적인 인물들이 전적으로 사용한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다. 차라리 모두 표준말을 사용했다면, 논란은 덜했을 것이다. 이렇듯 대중문화 작품들은 대개 희극적인 상황이나 주변부의 캐릭터에게만 사투리를 전가하기 때문에 항상 눈총을 받고는 한다.

▲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실제 광주 출신인 인봉 역 박철민은 전라도 말씨다. ⓒ CJ엔터테인먼트

한동안 사투리를 구사하는 젊은 주인공들을 내세웠던 작품들이 봇물을 이루었고, 이에 사투리의 재발견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들은 곧 사라졌다. 그것은 하나의 재밌는 소재거리로만 주목되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사투리 소재의 촉발은 <웰컴투 동막골>의 강원도 사투리 사용이었다. 이도 재미를 위한 것이었다. 또한 사투리는 계속 조폭 영화의 주인공에게서 집중적으로 등장했을 뿐이다.

요컨대, 구수하거나 거칠거나 재밌는 캐릭터에 빠지지 않았다.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은 항상 외모도 말끔하지 못하다. 지적이고 도시적이며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마이 아파”, "거시기는 혔능가"는  조폭스럽거나 촌스럽고 희극적인 유행 사투리의 예다. 무엇보다 여전히 한국 대중문화에서 멜로 영화의 주인공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절대 법칙은 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사투리 잘못 쓰는 경우도 여전하다. 예컨대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해야 하는데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경우다. 이는 영화 <맨발의 기봉이>나 <짝패>에서도 등장했다. <황산벌>에서는 부여 충화면 상천 마을이 고향인 계백장군이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이렇게 전라도 사투리가 압도하는 이유는 특유의 억양과 단어들 때문이다. 특히나 사투리가 코믹의 용도로 사용되는 상황에서는 단골로 전라도 사투리가 등장한다.

이렇게 사투리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기 때문인지 지역 출신들이 서울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이 사용하던 말을 버리는 일이다. 사투리와의 결별이 제 1과제가 되는 셈이다. 이는 일종의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고, 이를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미디어 기제들은 일종의 상징 폭력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투리를 사용하는 이들은 죄인이 된 듯하다.

대중매체 사투리 왜곡 심각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따르면 1만 년 전에는 세계인구가 500만에서 천만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언어가 1만2천개 정도였다고 한다. 60억 인구가 사는 오늘날 언어는 6800개의 언어만 있다고 한다. 더구나 2주에 하나씩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사멸위기 언어연구소'에 따르면 2100년까지 적게는 3400개에서 많게는 6120개의 언어가 없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때문에 고유어에 대한 보존책이 세계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사투리도 고유한 언어로써 대접받을 가치가 있다.

지난 11일 제주특별자치도 의회는 본회의를 통해 ‘제주어 보전 및 활용조례’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조례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주어 주간을 지정하고 학교에서 제주어 교육도 실시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말 지역말연구모임인 ‘탯말두레’ 회원들이 사투리와 관련한 헌법소원을 냈다. 모임은 소장에서 표준어 일변도의 어문정책 폐지와 사투리 교육 실시를 주장했다고 한다.

이렇다면 대중매체의 사투리 왜곡도 방송 위원회 등에서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닐까? 사투리를 왜곡해 사용하는 드라마나 영화들에 대해서 방영이나 상영을 못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각 지역의 삶과 전통, 사고와 가치관이 담긴 사투리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사투리가 문화유산으로 점차 정부의 어문정책에 포함되어가는 현실을 보면, 대중 문화 정책에서도 사투리가 존중받는 방안이 모색되어야겠다. 특히 공중파 방송에서도 특정지역 사투리만을 조폭이나 범죄자에게만 사용하는 빈도를 통제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보낸 글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