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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치'에서 벗어나기

등록|2007.09.21 14:06 수정|2007.09.21 15:26
 20년 전 쯤 잘 아는 분이 제게 승합차 기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할아버지 부부, 할아버지 여동생 부부, 손자와 손녀들, 우리 부부 등 10여 명이 경기도에서 승합차를 몰고 제주도로 관광을 떠났지요. 승합차를 배에 싣고 제주도에 도착한 뒤로는 대충 잡은 일정에 따라 배고프면 사먹고, 지치면 쉬어가며 제주도 관광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목적지에 닿으면 노인들은 대부분 차에서 내리지 않았습니다. 힘들어 쉬겠다는 것이지요. 여기까지 왔는데, 산꼭대기에 오르지 않으면 무슨 재미예요. 조랑말 안 타보면 무슨 재미예요하고 말씀드려도 그냥 우리 부부와 아이들만 다녀오라는 겁니다. 전에 제주도에 왔던 노인은 한 술 더 떠서 수석박물관에 가보았자 돌을 잔뜩 진열해 놓았는데, 그 돌멩이가 그 돌멩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끼리 놀다오면 차 안에서 노인들은 그 나이에도 시누이, 올케가 되어 수십 년 묵은 감정을 끄집어 내놓고 말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시집왔을 때 어쨌다느니, 그때 그럴 수 없었다느니 하며 얼굴이 벌겋도록 싸웠습니다.

제주도에 놀러와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즐거웠고, 노인들은 오랜만에 만나 함께 제주도에 놀러 와서 관광은 하지 않고 여행 내내 그렇게 싸움만 하였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은 희로애락이 무뎌집니다. 온갖 음식을 먹어보고, 온갖 일을 겪으며, 온갖 사람을 만나면서 모든 것이 다 그렇고 그렇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는 것이 그게 그거다’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겪는 다양한 상황이 이치로 따지면 ‘결국 똑같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사람과 저런 사람이 만나면 불륜이듯, 결혼한 네가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면 역시 불륜이라는 거지요.

그러나 사람 사는 이치는 말로만 이치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이치대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텐데도 나이 먹으면서 어느새 그 이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희로애락조차 그 이치에 맞춰 기계적으로 느낍니다.

밥 먹으면 배부르지 뭐. 자식이 용돈 주면 기쁘지 뭐. 자식이 죽었으니 슬프겠지 뭐. 공부 잘하면 좋지 뭐. 특히 고생을 심하게 겪은 사람일수록 큰일에 치어 작은 일을 아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이런 일을 겪은 놈이 그까짓 일쯤이야’하는 심정이겠지요.

제주도에 갔던 할머니들이 얼굴이 벌겋도록 싸울 때는 감정이 살아있다가도, 돌멩이 앞에서는 죽습니다. 왜냐하면 돌멩이는 이치에 맞춰 돌멩일 뿐이라고 마음에 정리해놓았지만, 상대방 시누이 올케는 아직 내 마음에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어느 노인이 예쁜 돌멩이를 보며 지금도 돌멩이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느끼신다면, 돌멩이를 단순한 돌멩이로 정리하지 않고 즐겁게 사시는 겁니다. 

그러니 사회의 이치, 자식의 이치에 맞춰 사는 부모님들이 그 이치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마음에 정리된 것을 하나씩 털고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그런 짓을 왜 하세요? 그게 그렇게 하고 싶으세요?’라고 하면 어머니를 죽이는 건지도 모릅니다. ‘하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세요. 앞으로 언제 그런 것을 해보시겠어요?’라고 어머니를 흔들어야, 사실은 어머니가 제대로 사시는 거겠지요.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더부천>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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