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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모양의 송편을 거부한다

아이들이 만든 개성 있는 송편, 구경하세요

등록|2007.09.23 13:23 수정|2007.09.24 11:18

송편 만들기.아이들은 자신들이 무슨 도자기 예술가라도 된 듯 '송편 만들기 삼매경'에 들어가 있다. ⓒ 송상호


"송편 만들 때 꼭 저를 불러요."
"알았다."

우리 마을에 사는 한 소녀의 부탁이다. 현재 '더아모의집'의 열혈 멤버인 이 소녀는 '송편 만들기'를 직접 해본 경험이 없는 듯 잔뜩 기대하고 있다는 게 물씬 느껴져 온다.

"연지야, 송편 만드니까 우리집으로 와."

딸아이가 전화한 지 1분도 안 되어서 그 소녀는 집에 도착했다. 마치 비상 대기조가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출동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오는 소녀를 보며 우습기도 하다. 이제 앙팡지게 한 판을 벌일 때다.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은 무슨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볼지 생각하며 눈을  반짝인다.

처음엔 평범한 모양(그러니까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송편의 모양)을 따라하는가 싶더니 조금 지나고 나선 순수 창작의 세계로 접어든다. 모양이 가지가지다. 어른들의 머리로선 상상이 안 되는 아주 기발한 모양들이 속출한다. 서로가 만든 모양을 보며 왁자지껄 떠들고 웃기도 한다.

솔잎아내와 내가 마을 야산에서 따온 솔잎들이 마치 부추처럼 먹음직스럽다. 송편의 필수 요소인 솔잎이 일역을 감당하기위해 대야에서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 송상호


"송편은 먹는 것보다 만드는 게 더 좋아요."
"나도, 나도."

아이들의 솔직한 고백이 터져 나온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재미도 없을 것을 아이들은 놀이라고 생각하는 듯 신이 났다. 때로는 도자기 모양을 빚어내는 예술가의 진지함도 엿보이고, 때로는 송편을 만들어 가족에게 먹이겠다는 주부의 정성스러움도 보이고, 때로는 미술 수업시간에 임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도 보인다. 이런 다양한 면모들이 어우러져 개성 있는 모양의 송편들이 하나둘 만들어져 간다. 

"이것 봐라~ 내 것은 이런 모양이다~"
"와. 누나 잘한다."
"내 것은 이런 모양인데."

자신이 만든 모양을 자랑하는 누나 앞에 아쉬워하는 동생들도 얼굴에 쌀가루를 묻혀가며 열심이 한다.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작품이 더 소중함을 잘 아는 사람들처럼 꼬맹이들도 '작품 만들기'에 열심이다.
        
나이 드신 어르신이 옆에 있어 가르쳐주고 지도해주는 '송편 만들기'가 아니기에 아주 어설플 법도 한데, 오히려 아이들의 창작 세계를 가늠할 수가 없어진다. 아이들은 먹는 음식인 송편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망각해가는 듯하다. 이미 아이들의 마음은 미술 시간의 '만들기' 콘셉트로 가 있은 지 오래다. 그러니까 만들기 재료가 찰흙이 아니고 쌀가루와 콩이라는 차이일 뿐.

별모양 송편(왼쪽), 주사위 모양.수가 가장 큰 면이 보인다. ⓒ 송상호


눈사람 모양 송편(왼쪽), 도너츠 모양 송편. ⓒ 송상호


"아빠는 안 만들고 뭐 하세요."
"야. 나는 니네들이 송편 만들도록 여러 가지를 준비해 줬잖아."

아이들이 송편 만드는 옆에서 사진이나 찍고 있는 나를 향해 딸아이가 직격탄을 날린다. 할  말이 없던 내가 겨우 둘러댄 말이 준비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송편 만들기'를 누구보다도 많이 준비한 아내가 누구보다도 열심히 송편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맘대로 생긴 송편을 쪄낸 초판이 아이들 앞에 도착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송편이 무슨 맛일까 싶어 하나씩 집는다. 그 많은 송편 중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모양의 송편으로 제일 먼저 손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인가보다.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먹어보는 느낌을 아이들은 지금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어라, 맛도 괜찮네?"
"그래도 먹는 것보다 만드는 게 더 재미있어."
           

팬더모양 송편(왼쪽), s 라인 또는 해마 모양. ⓒ 송상호


하트모양 송편(왼쪽), 케이크 모양. 몇 개의 공 모양 위에다 콩을 얹은 것이 참 기발하다. ⓒ 송상호


송편을 빚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먹기'보다 '만들기'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좀 더 재미있고 기발한 모양을 머리에 그리며 아이들의 손이 더 바빠진다. 아이들은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은 10분도 못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벌써 수십 분 동안 이 일에 빠져 있다.

어릴 적 추석을 앞둔 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가 모여서 함께 하던 '송편 만들기'를 지켜보던 부모님의 마음도 지금의 나와 같았을까. 그때도 지금처럼 아이들은 먹는 것보다 만드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을까. 아이들과 함께 아기자기하게 송편을 만드는 기쁨을 나누겠다던 아내의 마음이 그 시절 어머니의 마음이었을까. 그렇게 해서 밀려드는 행복을 맛보고 싶어 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은 것일까.

정답 없는 질문들이 내 맘속에 밀려드는 가을밤, 무심한 귀뚜라미들이 우리가 송편을 만들고 있는 '더아모의집' 바깥에서 가을을 불러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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