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민심은 '노-정 단일화' 주문, 인터넷선 'MJ 허무개그' 유행

[5년 전 한가위엔] 이 '소외계층 끌어안기', 노 '현장과 함께', 정 'TV 토론 데뷔'

등록|2007.09.23 13:04 수정|2007.09.23 13:33
대선 치러지는 해의 한가위 차례상에는 반찬이 하나 더 오른다. 바로 '대권주자들'이다.

밥상을 앞에 놓고 올해는 어떤 후보를 찍을 것인지가 화제로 오르게 마련이다. 한가위가 지나고 나면 한 집안의 '대표 지지후보'가 정해지기도 한다. 이런 탓에 대선주자들은 한가위에도 쉴 새가 없다.

5년 전 한가위엔...

올해 대선구도는 경선을 마무리하지 못한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 때문에 아직 불확실하지만, 5년 전 한가위엔 이회창(한나라당)·정몽준(무소속)·노무현(민주당)의 '빅3'로 구도가 정리됐다.

바야흐로  '노풍'이 잦아들고 '정풍'이 불어 닥친 시점이었다. 한때 60% 가까이 치고 올라섰던 노 후보의 지지율은 8월엔 20%까지 떨어졌다.

반면 정 후보의 지지율은 한일 월드컵 바람을 등에 업고 8월 30%대까지 치솟았다. 월드컵 이전인 5월말 10%대에 비하면 석 달 만에 20%P가 급상승한 셈이다.

이 후보는 지지율 30%대로 1위 자리를 힘겹게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최하 29.2%(8월 31일 MBC/코리아리서치)~최상 40.2%(6월 15∼16일 <중앙일보> 자체조사)로 이 후보의 평균 지지율은 30%대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세 후보 모두 한가위를 기점으로 어떻게든 지지율 반등을 모색해야 했다.

① 이회창... 장애인과 보낸 한가위, 연휴 기점으로 지지율 반격 모색

이회창 후보는 추석 연휴 내내 소외계층을 두루 만났다. '귀족 이미지'가 강했던 이 후보에게 '서민'은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 특히 장애인을 만나고 장애인을 주제로 한 영화를 관람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후보는 추석 다음날인 2002년 9월 22일 장애인 복지시설 '샬롬의 집'을 찾은 데 이어 같은 날 저녁에는 취재진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강남의 한 극장에서 영화 <오아시스>를 봤다. 24일에는 장애인 체육대회 선수촌을 방문했다.

추석 전인 18일에도 이 후보는 부인 한인옥씨와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쌍굴다리 밑에서 최일도 목사가 운영하는 '다일 공동체'를 방문해 결식 이웃을 위한 점심 나누기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에는 '병풍' 반격에 나섰다. 당시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던 홍준표 의원이 선두에 섰다. 홍 의원은 당시 9월 23일 서울지검에 대한 국회법사위의 국정감사에서 한 녹취테이프를 공개한다. 이 후보의 아들 정연·수연씨의 병역면제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씨와 서울구치소에서 함께 복역했던 선아무개씨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다. 홍 의원은 이를 근거로 여권과 김씨 사이의 커넥션 의혹을 제기했다.

이 후보가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특보단을 대폭 보강한 점도 눈에 띈다. 지금 대변인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판사 출신 나경원 의원도 당시 이 후보가 기용한 대표적인 여성 특보였다.

▲ 지난 2002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9월 18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1동 다일공동체를 방문, 자원봉사자를과 함께 배식을 하고있다. ⓒ 이종호

②노무현... 지지자들은 'MJ와 연대' 충고, 본인은 '반대'

민주당이 전하는 추석 민심은 날카로웠다. 특히 당시 국민들이 민주당이 승리하려면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게 흥미롭다.

당시 23일자 <한국일보>에 따르면 "민주당 의원들이 전한 추석 민심은 당의 사분오열로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조차 흔들린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반노'뿐 아니라 '친노' 계열의 의원들도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가 합쳐야 한다는 의견이 많더라'며 곤혹스러워 했다"는 것이 기사의 뼈대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김효석 의원은 "호남에서는 노 후보에 대한 영남 지지도가 오르지 않아 실망하는 눈치였고 정 후보 지지가 많이 올랐더라, 두 후보가 통합해야 집권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많이 하더라"며 흔들리는 호남 민심을 전했다. 설훈 의원도 "서울의 민주당 지지층조차 노 후보가 왜 '우리끼리 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결국은 대선 막판 단일화에 성공했지만, 당시만 해도 노 후보는 이런 민심에 무관심했던 것 같다.

노 후보는 24일 <프레시안>과 인터뷰를 통해 정 의원과 후보단일화를 해야한다는 당내 여론에 대해 "정 의원과 나는 걸어온 길, 함께 하는 사람이 다르다"면서 "도저히 합쳐질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갈라져야 한다"고 단일화 불가 방침을 밝혔다.

노 후보는 "가능성을 일축하진 않겠지만, 단일화를 위해선 정책적으로 연대할 수 있어야 하고, 경쟁력에 대한 충분한 검증 결과를 토대로 어느쪽으로 단일화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며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지배구조인데 이 문제에 대해 같으냐 다르냐를 언론이 검증해야 한다, 이래도 단일화해야 하느냐고 국민에게 물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추석연휴 동안 노 후보의 행보는 '현장'이 화두였다. 노 후보는 19일 전방부대 위문을 시작으로 경의선 연결공사 현장, 태풍 루사 수해지역, 파출소와 소방서, 119구조대 등을 잇따라 방문했다.

▲ 지난 2002년 9월 6일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사무금융 노동자들과 함께 주5일 근무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종호


③ 정몽준... TV 토론 데뷔, 인터넷에서 '정몽준식 허무개그' 인기

한가위 인터넷에선 '정몽준의 토론 스타일'이 단연 화제였다. 이름하여 '정몽준식 동문서답'이다. 정 후보는 추석을 앞둔 19일 MBC의 <100분 토론>에 출연해  'TV토론'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런데 당시 핵심을 비껴간 정 의원의 엉뚱한 답변 때문에 토론 이후에도 뒷말이 많았다.  MBC '시청자 의견'란에만 1천여 건이 넘는 독자의견이 올라왔다.

당시 이를 전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면, 정 의원의 TV토론 데뷔무대에 대해 네티즌들은 대체로 "준비부실·내용부실"이란 평가를 내렸다. 특히 '개혁적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고교평준화 해제와 주5일근무제 도입 반대 등을 주장해 이회창 후보만큼이나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네티즌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정 의원의 문제점은 '동문서답' 혹은 '두루뭉술한 답변'이었다. 그를 지지하고 있었다는 한 네티즌은 "토론프로를 보고 무지하게 실망했다"며 "질문을 하면 그 질문에 대한 답변보다는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해서 다시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신 거 말하시고 영 질문한 사람들 무안하게 영 다르게 답변하시고…"라고 꼬집었다.

'하광현'이라는 네티즌도 "정몽준 의원의 100분 동문서답을 보며 이게 코미디 프로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촌평했다.

당시 인터넷에는 '정몽준식 허무개그'란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유머가 떠돌기도 했다.

<정몽준 토론회 요약1>

패널: 서울로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몽준: 글쎄요. 서울은 아주 멀죠. 그리고 아주 큰 도시입니다. 하여간에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라도 생각합니다.


<정몽준 토론회 요약2>

패널: 냉장고에 코끼리를 집어넣는 정 의원의 방안을 듣고 싶습니다.
정몽준: 역시 김치냉장고가 개발되면서 냉장고에 신기원이 열렸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만들지는 않았지만 우리 현대에서 만들면 하여튼 최고의 냉장고를 만들 겁니다. 그런데 뭘 넣는다고요?
패널: 아, 코끼립니다.
정몽준: 아 코끼리. 제가 코끼리를 지난 번에 넣어본 적이 있는데 다른 의원들은 못 넣더라구요. 그래서 왜 못넣나 물어보니까 코끼리보다는 하마를 좋아하더군요.
패널: 아, 저는 의원님의 구체적인 대안을 여쭤봤습니다.
정몽준: 음… 목민심서에 보면 코끼리는 열대동물이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잘 길들이면 코끼리가 온대지방에 살 수도 있지 않겠습니다. 좌우간에 코끼리가 한반도에 살 수 있다면 냉장고 문제도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 지난 2002년 대선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의원이 9월 25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 패널리스트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종호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