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딸들아! 사랑한다"

아이들이 추석 선물로 넥타이를 사왔습니다

등록|2007.09.23 16:31 수정|2007.09.23 16:33
“아빠 고맙습니다.”

딸 셋이 약속이나 한 듯이 말한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딸이 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였던가? 그냥 좋다.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다. 주어도 주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런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고맙다고 말하니,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봉급자의 한 달 생활은 거의 고정되어 있다.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금방 티가 난다. 그만큼 생활비가 미리 정해져 있다. 지출 항목들이 정기적이니, 그 틀을 흔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감정에 휘말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게 되면, 그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니 새로운 지출 비용이 생기게 되면 난감할 뿐이다.

돋보이는 사랑 ⓒ 정기상


명절은 정해져 있고 아이들에게 지출해야 할 비용도 같다. 아이들도 이제는 성인이 되었고 돈 씀씀이도 많아져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금액도 상향되어야 맞다. 마음은 그렇게 해주고 싶은데 현실이 가로막는다. 아이들의 얼굴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형편을 짐작하고 있어 입으로는 불만을 토로하지 않지만,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비용을 늘일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맞추기 위하여 직접 옷을 사주던 것을 현금으로 주기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여 직접 옷을 사서 주었지만 그 것은 내 생각일 뿐이었다. 유행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을 수 없다는 항의에 직면하게 됨으로서 내린 결정이기도 하다.

추석을 손꼽아 기다리던 설렘이 명절이 다가오면 되살아난다. 모두가 가난하였던 그 때였지만, 명절 때면 풍성하였다.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 옷을 얻어 입을 수 있는 유일한 때였다. 명절이 아니면 새 옷은 아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니 평상시에는 아예 포기하고 살았다.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새 옷을 보면 날아갈 것 같았다.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차원이 아니었다. 유행은 더더군다나 상관없었다. 5일장에서 사온 옷이지만, 새 옷이란 그 자체만으로 신나고 즐거웠다. 새 옷을 입고 새 신발을 신게 되면 세상을 얻은 것처럼 좋았다.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행복 바로 이곳에 ⓒ 정기상


세월이 흘렀으니, 생각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머리로는 달라진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표정을 보면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다고 하여 아이들에게 불만을 털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만족을 시켜주지 않은 미안함이 앞서기 때문이다.

올해는 아이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조금 무리하였다. 고정되어 있는 봉급이니, 아이들을 위한 지출이 늘어나면 다른 곳에서 줄일 수밖에 없다.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아이들의 환한 웃음꽃을 보기 위하여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그에 대한 보람이 있어서 아이들이 인사를 하는 것이다.

환하게 피어난 꽃무릇처럼 보기가 좋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피어난 웃음이 그렇게 보기가 좋을 수 없었다. 저런 꽃을 보는데, 비용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더 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행복해한다면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할까. 아이들의 인사말에 내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났다.

“선물이에요.”
“무슨 선물?”
“아이들이 추석 선물로 넥타이를 사왔어요.”
“그래?”

아이들에게 인사를 받아 하루 종일 기분 좋게 일할 수 있었다. 일하여도 힘들지 않고 상쾌하였다.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들어오니, 집사람이 하는 말이었다. 예상 밖이었다. 조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나에게 선물을 사 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일이었다. 그런데 선물이라니, 의외였다.

자랑스러운 딸들 ⓒ 정기상


명절이면 아이들에게 새 옷을 사주는 것은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어머니가 그렇게 하셨고 나 또한 그렇게 해오고 있다. 그러니 힘이 들어도 기꺼이 해왔고 아이들이 만족해하면 그 것으로 충분하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나를 위해서 선물을 준비하다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사랑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았다.

“딸들아 ! 사랑한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세 딸을 가슴에 모두 다 안을 수도 없다. 아빠를 사랑하는 딸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행복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빨간 색으로 활짝 피어난 꽃무릇처럼 빛나고 있는 딸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春城>
덧붙이는 글 사진은 전북 완주에서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