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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이신 어머니랑 배추 심던 날

참으로 행복했던 하루

등록|2007.09.25 12:17 수정|2007.10.0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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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랑 배추 심던 날의 하루어머니랑 배추를 심었습니다. 가벼운 치매에다 하반신을 못 쓰시는 분이지만 흙을 묻히며 하루 즐거웠습니다. ⓒ 전희식


새벽에 눈을 뜨신 어머니가 "아즉도 비 오나?"하셨습니다. 방문을 활짝 열었더니 하늘이 창창한 게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파란 하늘이었습니다. 지난 8월 27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배추 심으러 가자. 하늘이 뺀 할 때 가야지 또 비온다. 어서 챙겨라."

어머니는 당신이 다 하실 듯이 서둘렀습니다.

"그럼 어머니는 옆에서 두발 리야카(어머니는 바퀴의자를 이렇게 부릅니다)에 앉아서 구경하세요. 같이 가요."
"무슨 소리고? 한 사람 구디 파믄 한 사람 포기포기 놓고 한 사람 묻고 그래야 빠르제."

이렇게 해서 배추를 심으러 가게 되었습니다.

아침 밥상을 받고 어머님이 기도를 극진하게 하셨습니다.

"올 가을에는 애써 농사 지은 거 풍년이 되어 가지고 나락가마니 잴 데가 없게 해 줍시사. 여기서 농사 첨 짓는데 잘 되고로 해줍시사. 이제 비가 안 오고 볕이 나서 나락 잘 익고로 해 주시믄 다 하나님 덕인 줄 알낍니다."

배추 200포기 심는 데 하루 종일 걸렸습니다. 집에 와서 흙투성이 어머니 목욕을 시켜드리면서 "오늘 어머니 일 많이 하셨어요. 힘드셨죠?" 했더니 "헤. 일 푸지기 했다. 보듬끼 각고 댕긴 사람이 힘들긴 뭐가"라고 했습니다. 밤에는 마루에 앉아 어머니가 뜯어 오신 쑥을 가렸습니다.

하루가 참 푸근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모모시기 - 자식 키우기 반만이라도(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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