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폼페이>겉표지 ⓒ 랜덤하우스코리아
히스토리 팩션 작가로 알려진 로버트 해리스는 <폼페이>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서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시도가 눈길을 끈다. 폼페이의 최후를 워낙에 생생하게 그렸기 때문이거니와 선정적인 시선에 머무르지 않고 로마라는 시대를 깊숙이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인가? 아틸리우스는 적대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그 비밀을 풀어보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사실들을 알게 된다. 부정부패와 비리가 지역을 지배하고 있으며 사악한 기운이 로마에까지 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이 폼페이 최후의 날 이틀 전부터 그가 겪은 일이다.
두 번째 중심인물은 아틸리우스와 반대편에 서 있는 갑부 암플리아투스다. 그는 해방 노예 출신으로 지역이 지진으로 초토화됐을 때 운 좋게 돈을 모았다. 그는 사악하다. 관리들을 매수하고 노예들을 짓밟는다. 하늘 아래 무서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지닌 그는 딸을 팔아서 전 주인이었던 남자를 자신의 사위로 만들고 자신의 것을 조금이라도 손상을 입힌 자들을 잔인하게 죽인다. 다른 귀족을 흉내 내 노예를 뱀장어 양식장에 던져버리고 마는, 탐욕스러움의 절정을 보여주는 남자가 바로 암플리아투스다.
세 번째 중심인물은 엑솜니우스다. 그는 아탈리우스 전에 임무를 맡았던 인물인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 탓에 <폼페이>에서도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무성하게 나온다. 여러 가지 비리와 연루된 인물로 당시 로마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탐욕에 전염된 남자가 바로 이 남자인 것이다.
이외에도 암플리아투스의 딸로 아틸리우스를 돕는 코렐리아, 학문적인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걸고 탐구를 하는 플리니우스, 명예와 권력을 위해 자신이 해방 시킨 노예에게 몸을 파는 포피디우스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당시 폼페이 최후의 날을 그리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서인가? <폼페이>의 백미는 화산이 폭발하는 순간일 것으로 생각됐지만, 그보다는 인간 사회의 혼탁한 사회를 그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 사회란 무엇인가? 돈에 미친 사회다. 문명이라는 것이 사실상 돈 놀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권력에 눈이 먼 시대이기도 하다. 더불어 사회적인 명예를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사회다. 관리들은 사적인 이익을 채우는 데 눈이 멀었다. 로마의 찬란한 전통과 사회적인 가치는 이미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사회가 <폼페이>의 그 시절이다.
저자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서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인가. 화산 폭발이 마치 인간 사회를 응징하려는 자연의 천벌로 보인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농락하고 나아가 인간 스스로를 모욕하던 그들을 향한 심판으로 보일 정도다. 저자가 실감나게 더럽혀진 사회를 그렸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절망적인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돈과 권력을 거부할 줄 아는 아틸리우스와 코렐리아라는 인물을 통해 희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폼페이 최후의 날에도 남을 위해 살았고 또한 끝까지 남을 살리려고 했던 이들이다. 자연 또한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준다. 단순히 폼페이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남겨 세상에 이야기를 전하도록 한다. 비록 세상이 그 이야기를 비웃는다 할지라도 말이다.
참고자료를 풍성하게 준비한 노력 때문일까. <폼페이>는 최후의 날을 그리는 데 엉성하지 않았다. 저자가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펜을 잡은 듯하다. 그 펜으로 여러 인물을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시대를 보여주게 하는 건 어떤가? <폼페이>라는 소설이 하나의 소설에 그치지 않고 그 시절을 여행하게 해주는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눈길 끄는 소재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가 발군이다. 폼페이 최후의 날 카운트다운, 웅장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 이상으로 기대치를 높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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