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산사에 피어난 상사화의 전설
고창 선운사의 상사화가 애절하게 부릅니다
▲ 비와 상사화 ⓒ 조정숙
추석연휴, 일기예보만 믿고 선운사 상사화를 카메라에 담은 뒤 학원농장에 들러 기필코 메밀꽃을 찍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래서 마음먹고 새벽 단잠을 뿌리친 채 선운사로 향했다.
몇 년째 꽃이 피는 시기와 고향을 찾아가는 시기가 맞지 않아 제대로 구경 한 번 못해본 터라 더욱 더 마음은 상사화와 함께하고 있었는데…. 아뿔사! 서해안 고속도로 대천쯤 지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슬슬 불안함이 엄습해온다. 남편은 내 명절 스트레스를 조금 덜어준다는 마음으로 고향 가기 전에 선운사에 들러 상사화를 보고 가자고 했는데 말이다. 그런 남편의 고마운 마음에 감격하며, 신나게 선운사로 향하고 있는데, 비라니….
▲ 흐르는 물과 함께 상사화의 애절함도 흐른다. ⓒ 조정숙
▲ 군락을 이루고 있는 상사화 ⓒ 조정숙
그래도 이왕 마음도 먹었겠다, 무조건 선운사를 향해 달렸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출발을 한 터라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 더덕구이 정식으로 배를 채웠다. 그리곤 주인아저씨에게 상사화가 얼마나 폈냐고 여쭸더니, "지금이 한창 만발혔는디, 이노무 비가 지속 내리니께 어쩍혀"라고 하시는 거다.
"아무래도 빵꾸 났나벼유…"라는 아저씨의 푸념을 뒤로하고 고즈넉한 산사의 아침이라도 볼까 하고 경내로 향했다. 비가 내려서일까, 상사화와 운해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이른 새벽부터 방방곡곡에서 온 사진작가들이 카메라에 상사화를 담고 있었다.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어 꽃과 잎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꽃. 하여 잎은 꽃을, 꽃은 잎을 서로 그리워한다는 상사화(相思花).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꽃말을 가진 이 꽃은 잎이 먼저 나와 6월∼7월에 시든 뒤 8월∼9월에 꽃이 핀다.
▲ 비가 내려도 상사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과 작품을 담으려는 사람들이 어루러지는곳 ⓒ 조정숙
전설에 의하면 옛날 한 스님이 불공을 드리러 온 여인을 사모하게 되었다 한다. 스님은 날마다 여인을 그리워했지만 스님의 신분으로 여인을 만날 수 없어 사모하다 상사병에 걸려 죽었는데 그 자리에 꽃이 피었고, 그 꽃이 상사화다.
이처럼 애절한 사연을 지닌 상사화는 종류가 여러 가지다. 상사화 본래의 원종이 있고 방계로서 꽃무릇, 석산화, 개상사화 등이 있다. 그러나 넓게 보면 모두 상사화의 일종. 일반적으로 '상사화'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상사화와 꽃사과 ⓒ 조정숙
'꽃무릇' 일명 '상사화'라고 불리는 이 꽃은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는 것만큼 보는 이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전라도에서는 울긋불긋하고 색이 현란해 '꽃상여' 같다고 하여 상여꽃이라고 부른다. 작년 추석에는 영광 불갑산에 있는 불갑사에 가서 이 꽃을 담아보려 했지만 시기가 늦어서 시들어버린 꽃잎만 보고 돌아왔었다. 올 추석에는 비록 비가 내렸지만 만개할 때 잘 맞춰가서 애절한 사연을 담은 상사화를 눈과 가슴속에 담고 돌아왔다.
빗줄기가 점점 강해져서 메밀꽃은 구경하지 못하고 왔다. 다음에 꼭 한 번 가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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