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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 8살 소년들의 권력쟁탈사

8세 소년들의 행동을 통해본 인생사 풍자

등록|2007.09.28 17:50 수정|2007.09.29 12:02
 

맞장아들아이와 친구녀석이 맞장을 뜨고 있다. 시골 배 밭 앞에서 잡고 있는 폼들이 어설프다. 역시나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 송상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도권은 나의 아들(8세)에게 있었다. 하지만 이번 추석을 지나면서 권력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우리 마을 다른 8살 소년에게로 권력이 넘어간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고? 30가구 남짓 되는 시골 마을에 있는 단 두 명의 8살 소년(같은 초등학교 1학년 동문)의 힘겨루기 이야기다. 그렇다고 뭐 주먹다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야. 내가 말하는 대로 들어!"
"안 듣는다면 어쩔래!"

"그럼 내가 준 총 다시 뺏는다."
"알았어."


이게 바로 권력 이동이 발생하게 된 계기이자, 그때의 대화다. 추석이 되기 전까지는 나의 아들아이가 어느 정도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듯했다. 이유는 컴퓨터 게임 때문이었다. 우리집에선 컴퓨터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지만, 다른 소년의 집은 부모의 교육 지침으로 인해 컴퓨터 게임을 일절 못하기 때문.

그러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들아이가 누렸던 권력은 순전히 우리집의 가풍(?) 때문인 셈이다. 게임을 하든 무엇을 하든 자신의 자율에 맡긴다는 가풍 말이다. 컴퓨터 게임이 요즘 아이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놀이인가를 생각하면 그동안 아들아이가 누렸던 특권과 권력이 대단했을 터.

비비탄 총알사빈이가 가지고 다니는 비비탄이다. 병에 꽉찬 총알이 없어질 때까지 권력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 송상호


그런데 어떻게 역전 현상이 일어났을까? 바로 종전 대화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장난감 총 때문이었다.

아들의 친구 녀석이 추석 때 장난감 총을 선물로 받았던 게 화근이었다. 그 아이가 실물 크기의 장난감 총(M16 소총)과 '비비탄 총알'을 들고 우리집에 나타나면서 슬슬 권력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

"야, 바다(아들아이)야 우리 바깥에 나가서 놀자."
"그래, 사빈(아들 친구)아 놀자."

"내가 장군 할 테니 넌 졸병 해."
"알았어."


전 같으면 밖에 나가서 놀자고 사빈이가 말하면 몇 번은 튕기던 아들 녀석이 목자 앞의 순한 양이 된 듯, 너무도 순순히 밖으로 나갔다. 사빈이가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던 작은 장난감 권총을 바다에게 준(자신은 큰 총을 선물받았기 때문) 것도 많은 영향을 미친 듯하다. 한마디로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베푼 호의였던 셈. 그러니 바다는 사빈이에게 더욱 코가 꿴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두 총의 총알인 '비비탄' 한 병을 사빈이가 쥐고 있다. 바다가 사빈이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는 충분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아내가 나에게 한마디 한다.

"바다도 좀 느껴야지. 컴퓨터 게임을 통해 누렸던 권력 때문에 눈치 보고 살았던 자의 설움을 말야."
"허허허허. 그렇긴 해."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10년을 못 넘긴다는 그런 말이 지금 우리 마을 8살 소년들에게 일어났다.

잠정적 평화아이들이 더아모의집 거실에서 디지털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로 잠정적인 평화를 누리는 것은 힘의 균형 탓일까. ⓒ 송상호



아이들 둘이 하는 행동들을 보며 별 걸 다 이야기한다 싶지만, 아이들을 통해서 사람 사는 게 훤히 보인다 싶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간의 주도권 다툼, 거기서 생기는 권력 누림과 권력 쟁탈.

"하지만 솔직히 속상하다. 그걸 지켜보고 있으니."

장난감 총 때문에 조금은 기가 죽은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비굴해 진 것 같기도 한 아들 녀석을 보고 있는 아내의 말이다. 남과 혈연관계의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이중적인 잣대까지도 어쩌면 그렇게도 우리가 사는 인생사의 축소판인가 싶다.

평소 장난감은 잘 사주지 않는다는 우리집 가풍(?)을 이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사빈이가 쥐고 있는 주도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아마도 '비비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는 이어가게 되지 않을까.

하여튼 지금 우리집 거실에서 각자의 총을 옆에 끼고 디지털 게임을 하고 있는 두 녀석에겐 잠정적으로 평화가 온 듯하다. '힘의 균형' 말이다. 아들아이에겐 '디지털 게임'이라는 힘이 있고, 사빈이에겐 '비비탄'이라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누구도 자기 거라 주장할 게 별로 없었던 지난해 겨울이 좋았다.

두 소년지난 해 겨울 무덤 잔디에서 뒹굴며 놀던 두 아이는 참으로 천진난만하다. 마을의 유일한 동갑내기 친구들이니 오죽하랴. ⓒ 송상호



덧붙이는 글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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