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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의 미얀마 개입, 신중해야 한다

미얀마인의, 미얀마인에 의한, 미얀마인을 위한 '미얀마 시위'가 되길

등록|2007.09.29 08:58 수정|2007.09.29 11:29

▲ 승려와 학생들의 평화시위를 유혈진압한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는 집회가 27일 낮 서울 한남동 주한 미얀마 대사관 에서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와 국내 인권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미얀마 문제가 장기화됨에 따라 이에 대한 국제적 개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미얀마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입은 무원칙적으로 고려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미얀마 문제는 미얀마인의 것이다. 미얀마 문제의 주체는 미얀마인들 자신이므로, 국제사회는 일단 미얀마인들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얀마 사회에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쟁점도 있고 민족주의와 관련된 쟁점도 있다. 이 나라에서 군부가 독재하고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관련된 쟁점이고, 서양의 식민지로 전락한 경험이 있는 이 나라가 아직도 서양세력의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은 민족주의와 관련된 쟁점이다.

특히 미얀마의 민주화 문제를 판단할 때에는 혹시라도 서양식 민주주의의 관념에 사로잡혀서 미얀마 고유의 풍토와 문화를 경시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이 지구촌에서, 어느 한 쪽의 가치관으로 다른 한 쪽을 재단하는 일이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미얀마 문제가 이 같이 복합적 구도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문제에 대한 국제적 개입은 민주주의적 가치와 민족주의적 가치를 동시에 안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적 가치의 보호에만 매몰돼 민족주의적 가치를 훼손해서도 안 되고, 민족주의적 가치의 보호에만 치중해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해서도 안 될 것이다.

둘째, 미얀마 문제는 미얀마인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 미얀마 문제의 일차적 해결책임은 미얀마인들에게 있으므로, 국제사회의 개입은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카드로 보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원칙상 그 개입은 경제적·정신적 측면에 한정되어야 한다. 미국처럼 처음부터 군사적·정치적 개입을 서두른다면, 이는 미얀마 문제의 해결 주체가 미얀마인 자신임을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개입하려는 나라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미얀마에 대한 군사적·정치적 개입은 '비장의 카드'로 보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맨손으로 무장군인에게 맞설 수 있을까

여기서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미얀마 정부는 총으로 무장한 데 비해 미얀마 민중은 맨손뿐인데, 군사적·정치적 수단이 배제된 개입이 과연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민중의 힘에 대한 과소평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군대와 군대의 싸움은 화력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지만, 군대와 민중의 싸움은 천명, 즉 민의의 향방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민중의 분노가 극에 달하면 외국 군대의 도움 없이도 자국 정부군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잘 증명하고 있다.

외세가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남의 나라에 정치적·군사적 후원을 제공하는 예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외국의 후원은 본질적으로 대가성 있는 뇌물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외국의 정치적·군사적 후원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미얀마인들은 어떻게든 그 대가를 치루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미얀마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처음부터 외국 군대에 의존하려 한다면, 이는 그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질 능력과 의사가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천명이 미얀마 민중 편에 있다면, 외국 군대가 지원하지 않더라도 최종적 승리는 미얀마인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셋째, 미얀마 문제는 미얀마인을 위해 해결되어야 한다. 미얀마 문제가 해결되면 그 결실은 일차적으로 미얀마인들의 수중에 들어가야 한다. 만약 팍스 아메리카나 혹은 팍스 시니카에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미얀마 문제가 해결되어 버린다면, 이는 미얀마 민중들에게 새로운 고통과 숙제를 안기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미얀마 문제에 대한 국제적 개입의 결과로서 미얀마인들의 자주적·민주적 정부가 아닌 외세의 꼭두각시 정권이 들어선다면, 미얀마 사회는 반군부 투쟁이 아닌 반외세 투쟁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또 그 결과로서 미얀마에서 강대국들이 각축을 벌이는 상황이 조성되면, 미얀마 사회는 지난 날 식민지시대의 과제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얀마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불안정한 상황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국제적 개입의 결과가 그런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견제할 만한 뚜렷한 방법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미얀마 문제에 대한 국제적 개입을 지지하고 거기에 힘을 보태는 사람들이 그런 결과가 생기지 않도록 견제하고 또 그런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미얀마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입은 미얀마인들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전제 하에서 신중하고 제한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당사자인 미얀마인들의 의사가 무엇인지 또 진정으로 그들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등도 고려하지 않은 채, 제3자들이 균형감각을 잃고 자신들의 잣대로 이 문제를 해결해버리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얀마인들에게는 다소 힘들고 어려운 길일지라도, 일단은 그들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되 정치적·군사적 개입은 최후의 수단으로 보류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미얀마인들이 직접 피를 흘려야만 보다 더 값진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일본은 조선의 소요사태를 진정시키겠다며 군대까지 파견해서 문제를 '깔끔히' 해결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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