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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남북 평화무드 덕 아니겠어?"

인왕산 옛 성곽이 복원되고 있다

등록|2007.10.01 16:21 수정|2007.10.01 16:44

▲ 위에서 바라본 성곽이 복원된 모습 ⓒ 이승철


“어, 저기 좀 봐, 옛 성곽이 복원되었네.”


녹슬고 흉물스럽던 가시철조망이 걷힌 인왕산에 조선시대의 옛 성곽이 복원되고 있었다. 지난봄에 찾은 이후 여름을 나고, 지난 토요일(9월 30일)에 오른 인왕산의 모습이 산뜻하게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무언가 달라진 풍경이 낯설어 보였다. 그러나 그 낯선 풍경의 주인공이 바로 복원된 성곽이라는 것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직공원에서 시작하여 독립문 쪽으로 넘어가다가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 왼편에는 예전에 복원된 성곽이 조금 이어지다가 끊어지고 만다.

그리고 이어지는 길은 작년까지 녹슨 가시철조망이 높직하게 서 있던 자리가 조금은 휑뎅그렁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정상에 오를 때까지 옛 성곽이 있던 자리는 등산로 겸 경비초병들의 통행로가 종전대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정상에서 내려와 북악산 쪽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발견한 것이 새로 복원하여 하얀색으로 드러난 성곽이었다. 복원된 성곽 옆에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져 있고 그 옆으로는 공사자재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 복원된 성곽옆을 걷는 등산객과 주변의 공사자재 ⓒ 이승철


“역시 옛날의 가시철조망보다는 이렇게 성곽을 복원해 놓으니까 보기가 정말 좋구먼.”


인왕산 등산로가 개방된 이래 해마다 몇 번씩 같이 오른 일행 한 명이 느낌이 새로운지 복원된 성곽을 쓰다듬어 본다.

“정말 그렇구먼, 아직은 너무 하얀색이어서 보기가 좀 그렇지만, 곧 때가 묻고 이끼가 끼어 옛 성곽의 모습을 찾아가겠지.”


그러고 보니 복원된 성곽의 석재들이 매끄럽게 다듬어지지 않고 표면처리를 거칠게 해놓았다. 되도록 빨리 때가 묻고 이끼가 끼게 하기 위한 방편인 것 같았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산을 옛날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으니 원!”


청년기에 이 산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산에 오를 수 없었던 아쉬움을 갖고 있던 친구는 인왕산에 오를 때마다 감회가 남다른 모양이었다.

“이게 다 남북한의 평화무드 덕분 아니겠어?”

“물론이지, 오랫동안 안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의 접근을 막아왔던 옛날의 절대 권력과는 달리, 도심에 있는 산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려는 집권층의 의지의 산물이겠지.”

그건 그럴 것이다. 이미 옛날부터 막아놓았던 산을 그대로 놓아둔다고 해서 뭐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산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발상을 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막은 권력과 그것을 풀어준 권력의 차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시대적인 상황의 변화는 있었겠지만 꼭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북악산에 오를 때도 느꼈었지만 국민위에 군림하는 권력과 국민의 편에선 권력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는 생각을 했지.”

“아! 그거 얘긴가? 북악산 경비병들의 복장이 등산복 차림이었던 것 말이야?”
“바로 그거야. 그건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결코 작은 일이 아니지. 북악산을 찾는 시민들이 불편해 하거나 위압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배려 아니겠어?”

일행들은 지난번 북악산을 오를 때 만났던 경비병들이 모두 등산복차림이어서 비슷한 등산객 같은 평안한 마음을 느꼈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인왕산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옛 성곽을 복원하는 일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는 것이었다.

▲ 성 바깥쪽에서 바라본 복원된 성곽 ⓒ 이승철


서울시가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복원하고 있는 인왕산성곽복원사업은 작년에 복원될 성곽자리에 세워져 있던 철조망울타리를 철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된 것이다. 아직도 철조망이 남아 있다면 복원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한양도성 사대문을 잇는 성곽복원사업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한다. 본래 한양도성의 전체 길이는 18km인데 그동안 역사의 굴곡을 거치면서 너무나 많이 훼손된 상태다. 복원사업도 빌딩이 세워지고 도로로 사용되고 있는 도심구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성곽상태가 대체로 양호한 북악산에 이어 인왕산 지역의 성곽이 완전히 복원되면 도성의 북쪽 산악지역은 옛 모습을 거의 되찾을 것이다. 흉물스럽던 철조망울타리를 걷어내고 인왕산에 복원 중인 옛 도성 성곽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여간 따뜻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보기 좋은데요. 이제야 인왕산이 옛 모습을 찾고 우리 시민들의 것으로 되돌아오는 느낌입니다.”


잠실에서 왔다는 한 50대 등산객의 말이었다. 복원공사 중인 인왕산 성곽 위의 하늘도 등산객들의 마음처럼 해맑은 가을 하늘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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