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익히지 않으면 뜻을 모른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지 못했다"(43)
매년 10월 9일이면 온갖 미디어 매체들은 한글특집을 낸다. 한글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순한글식 이름 등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이 때를 즈음하여 한글학자와 단체들은 ‘한글전용’을 거세게 외치는가 하면 한자사용을 ‘망국병’으로 몰아세우곤 한다. 매년 있어온 일이다. 한글전용세대들에 있어 한글전용은 참으로 반가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컴퓨터 시대를 맞아 한자와 한문을 거의 모르고 있는 오늘날의 세대들에 있어서랴.
배운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고, 배웠다 해도 건성으로 또는 시험을 치기위해 의무적으로 몇 자를 배웠으니 그 뜻과 의미를 제대로 깨쳤을 리 없을 것이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펜으로 글을 직접 쓰는 게 아니라 컴퓨터 화면으로 일을 처리하다보니 한자 역시 ‘한자 키’를 눌러 찾아 써는 판국이다. 그러니 볼 줄은 알아도 쓸 줄 모르며, 쓸 줄 모르니 그 뜻과 의미를 제대로 알 리가 없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정한 국제특허협력조약(PCT, Patent Cooperation Treaty)기준에 따르면 2006년 한국인이 낸 국제출원 건수는 5,935건으로 미국과 일본 독일에 이은 세계 4위였다.
이를 계기로 2007년 9월 제네바에서 열린 WIPO 43차 총회에서 한국어를 국제공개어로 공식 채택키로 결정했다. 그동안 국제공개어는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 등 8개 국어였는데 여기에 한국어와 포르투갈어가 추가된 것이다.
언어가 국가자산인 상황에서 이제 국제특허를 한국어로 당당히 제출하게 된 것인 만큼 국가적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훈민정음의 창제 후 최대의 낭보가 아닌가 싶다.
이제 한국어에 대해 차분히 한번 생각해 보자. 한국어의 언어구조부터 살펴보자. 한국어는 그 형성구조로 볼 때 다른 언어에 없는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한글은 표음문자(表音文字)인 한글 고유어(固有語)와 표의문자로만 표현할 수 있는 한자어(漢字語)라는 두 가지 종류의 언어로 조합돼 있다. 쉽게 말하면 한글로 구성된 고유어와 한자로 이뤄진 한자어의 결합 또는 융합에 의해 국어가 형성돼 있다.
동질의 언어로 구성된 중국어나 유럽어와는 판이하다. 한 나라의 말이 이처럼 두 가지 언어로 형성된 것은 중국을 빼고 한자를 사용하는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공통된 현상이다. 일본어도 그렇다.
“언어와 사상의 발달은 상호 깊은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문화가 사상의 표현일진대 문자가 없는 문화가 제대로 발전할 리가 없다. 필리핀어와 인도어 등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자국의 언어로 고급문화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아예 영어 등을 통째로 빌려 쓰고 있다."
국전초대작가이자 예술원회원, 한국어문교육연구회 부회장 등을 지낸 오지호(吳之湖) 선생의 주장이다. 그는 이어 "이런 이유로 우리도 자연스럽게 중국문자인 한자를 갖다 쓰게 되었고, 이를 통해 고급의 문화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한국어에 있어 한자의 사용은 불가피한 사정이었으며, 자연스런 차용도입이었던 셈이다. 한자를 빼버리고 순수한 한글고유어로만 언어를 만들려고 했더라면 한글은 이미 현재에 이르기 전에 도태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벨기에어 등도 그들 자체로 문자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집트어를 뼈대로 하고 그리스어와 로마어였던 알파벳문자를 차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국어도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한글고유어와 한자어의 결합에 의한 집합문자라고 봐야 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한자어가 중국의 것인 외국어가 아니라 한국어의 한 구성요소라는 것이다.
언어는 인접 지역의 언어에도 큰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특히 인접국가의 문화적 수준이 앞서 있을 때에는 자연스레 언어의 역류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그쪽 언어를 받아들여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기술 용어와 의학, 경영학, IT용어 등이 주로 영어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억지로 고유말로 풀어 쓰기보다 그대로 차용하여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은 억지로 자국어로 바꿔 쓰기도 하지만.
실제로 한국어에 있어 한자어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학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어림잡아 90%이상일 것이란 주장이 지배적이다. 영어 역시 그 어원 중 7분의 5정도가 라틴어에서 유래됐다.
“한국어는 한자어에 한글 토를 달아가지고 성립된 언어다. 그래서 우리 국어에는 한자어가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실상인 즉, 한자어가 국어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지호 교수는 한국어의 표현은 한자어 없이는 사실상 어렵다고 단언했다.
반면에 한글학자들의 한글전용 의지는 그야말로 굳고 거세다. 한글이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언어라는 주장과 함께 순수한 창작물이라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물론 한글은 배우기 쉽고, 보기에도 좋다. 그래서 좋은 문자이다. 하지만 표현능력은 별개의 문제이다. 한자어는 표의문자로 그 의미전달이 정확하여 사상전달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언어이다.
한글학자들은 이러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자어를 한자로 쓰는 것에는 목숨을 걸고 반대하고 있다. 사대주의(事大主義)의 극치이자 매국행위(賣國行爲)로까지 규탄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의 방안을 마련한 것이 한자어가 이미 한국어가 되었으니 그 음(音)을 한글로 적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大韓民國이라 쓰지 않고 대한민국으로 쓰면 한글이라는 주장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무슨 뜻인가? 한자어는 한자로 표기하지 않는 한 그 뜻과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수지라고 하면 무슨 수지인 지 알 수 없다. 수지(收支)도 있고 수지(樹脂)도 있다. 경기도 용인군 수지(水枝)라는 지역도 있다.
설사 그 말을 한국어로 표기했다해도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앞뒤 문맥을 따져 어느 ‘수지’인지는 알 수 있겠지만 정작 그 수지 본래 뜻을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는 한글 전용도 한자 우선주의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80년대 중반 한 진보성향의 언론사가 가로쓰기와 함께 한글전용을 표방하면서 지금 대부분의 신문이 한글쓰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감이 앞선다.
앞으로 우리가 한국 내에서만 살아갈 것은 아니다. 자녀들의 경우, 외국과의 교류는 더욱 많아질 것이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특히 미국과 중국, 일본과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질 것이며, 교류도 빈번해질 것이다. 경제적으로 대통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한자에 대한 인식은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한국어의 또 다른 밑둥이기도 한 한자를 자연스레 익히고 깨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한자를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많은 젊은층들이 이미 한글로만 쓰고 배운 탓에 한자를 마치 그림 그리듯 하고 있다.
하지만 한자가 갖는 장점도 적지 않은 만큼 하나씩 익히다 보면 그것만큼 재미있는 문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천자문(千字文)의 경지에 들어가 보아라. 얼마나 체계적이고, 논리적인가. 어떤 문자를 보고 그 글의 뜻과 의미를 안다는 것은 더욱 즐겁지 아니한가!
일본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필수한자를 익히고 있다. 학년별로 배워야할 한자가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한자실력을 바탕으로 하여 그들은 수많은 한자어를 만들어냈다. 국어(國語)라는 단어가 과연 중국어일까?
우리가 배우고 있는 법률용어나 의학용어 철학용어 건축용어 등 대부분의 언어들이 일본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것을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만 쓰는 순한글식 문자를 만드는데 노력하고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한자를 이용한 단어와 어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 바람직하고 어문정책상 효율적인지는 언어학자들에게 맡기기로 하자. 다만 분명한 것은 언어능력은 배우면 배울수록 발달한다는 점이다.
유럽 사람들이 자국어 외에도 주변국의 여러 나라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말의 모태가 비슷하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언어교육을 다양하게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어에만 매달려 유치원 때부터 닦달하듯이 한자교육에도 그러한 열정을 보인다면 훨씬 빠르게 익히고 배울 것이다. 어차피 우리가 말로써 그들 표현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한자실력과 관심도가 낮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국가정책의 혼미에 의한 결과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자식들에게는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내 나라말을 잘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한자어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나라의 수준은 곧 그 나라 국민들이 쓰는 말과 글의 수준이기도 하다.
이 때를 즈음하여 한글학자와 단체들은 ‘한글전용’을 거세게 외치는가 하면 한자사용을 ‘망국병’으로 몰아세우곤 한다. 매년 있어온 일이다. 한글전용세대들에 있어 한글전용은 참으로 반가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컴퓨터 시대를 맞아 한자와 한문을 거의 모르고 있는 오늘날의 세대들에 있어서랴.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펜으로 글을 직접 쓰는 게 아니라 컴퓨터 화면으로 일을 처리하다보니 한자 역시 ‘한자 키’를 눌러 찾아 써는 판국이다. 그러니 볼 줄은 알아도 쓸 줄 모르며, 쓸 줄 모르니 그 뜻과 의미를 제대로 알 리가 없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정한 국제특허협력조약(PCT, Patent Cooperation Treaty)기준에 따르면 2006년 한국인이 낸 국제출원 건수는 5,935건으로 미국과 일본 독일에 이은 세계 4위였다.
이를 계기로 2007년 9월 제네바에서 열린 WIPO 43차 총회에서 한국어를 국제공개어로 공식 채택키로 결정했다. 그동안 국제공개어는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 등 8개 국어였는데 여기에 한국어와 포르투갈어가 추가된 것이다.
언어가 국가자산인 상황에서 이제 국제특허를 한국어로 당당히 제출하게 된 것인 만큼 국가적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훈민정음의 창제 후 최대의 낭보가 아닌가 싶다.
이제 한국어에 대해 차분히 한번 생각해 보자. 한국어의 언어구조부터 살펴보자. 한국어는 그 형성구조로 볼 때 다른 언어에 없는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한글은 표음문자(表音文字)인 한글 고유어(固有語)와 표의문자로만 표현할 수 있는 한자어(漢字語)라는 두 가지 종류의 언어로 조합돼 있다. 쉽게 말하면 한글로 구성된 고유어와 한자로 이뤄진 한자어의 결합 또는 융합에 의해 국어가 형성돼 있다.
동질의 언어로 구성된 중국어나 유럽어와는 판이하다. 한 나라의 말이 이처럼 두 가지 언어로 형성된 것은 중국을 빼고 한자를 사용하는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공통된 현상이다. 일본어도 그렇다.
“언어와 사상의 발달은 상호 깊은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문화가 사상의 표현일진대 문자가 없는 문화가 제대로 발전할 리가 없다. 필리핀어와 인도어 등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자국의 언어로 고급문화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아예 영어 등을 통째로 빌려 쓰고 있다."
국전초대작가이자 예술원회원, 한국어문교육연구회 부회장 등을 지낸 오지호(吳之湖) 선생의 주장이다. 그는 이어 "이런 이유로 우리도 자연스럽게 중국문자인 한자를 갖다 쓰게 되었고, 이를 통해 고급의 문화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한국어에 있어 한자의 사용은 불가피한 사정이었으며, 자연스런 차용도입이었던 셈이다. 한자를 빼버리고 순수한 한글고유어로만 언어를 만들려고 했더라면 한글은 이미 현재에 이르기 전에 도태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벨기에어 등도 그들 자체로 문자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집트어를 뼈대로 하고 그리스어와 로마어였던 알파벳문자를 차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국어도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한글고유어와 한자어의 결합에 의한 집합문자라고 봐야 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한자어가 중국의 것인 외국어가 아니라 한국어의 한 구성요소라는 것이다.
언어는 인접 지역의 언어에도 큰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특히 인접국가의 문화적 수준이 앞서 있을 때에는 자연스레 언어의 역류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그쪽 언어를 받아들여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기술 용어와 의학, 경영학, IT용어 등이 주로 영어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억지로 고유말로 풀어 쓰기보다 그대로 차용하여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은 억지로 자국어로 바꿔 쓰기도 하지만.
실제로 한국어에 있어 한자어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학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어림잡아 90%이상일 것이란 주장이 지배적이다. 영어 역시 그 어원 중 7분의 5정도가 라틴어에서 유래됐다.
“한국어는 한자어에 한글 토를 달아가지고 성립된 언어다. 그래서 우리 국어에는 한자어가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실상인 즉, 한자어가 국어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지호 교수는 한국어의 표현은 한자어 없이는 사실상 어렵다고 단언했다.
반면에 한글학자들의 한글전용 의지는 그야말로 굳고 거세다. 한글이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언어라는 주장과 함께 순수한 창작물이라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물론 한글은 배우기 쉽고, 보기에도 좋다. 그래서 좋은 문자이다. 하지만 표현능력은 별개의 문제이다. 한자어는 표의문자로 그 의미전달이 정확하여 사상전달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언어이다.
한글학자들은 이러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자어를 한자로 쓰는 것에는 목숨을 걸고 반대하고 있다. 사대주의(事大主義)의 극치이자 매국행위(賣國行爲)로까지 규탄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의 방안을 마련한 것이 한자어가 이미 한국어가 되었으니 그 음(音)을 한글로 적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大韓民國이라 쓰지 않고 대한민국으로 쓰면 한글이라는 주장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무슨 뜻인가? 한자어는 한자로 표기하지 않는 한 그 뜻과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수지라고 하면 무슨 수지인 지 알 수 없다. 수지(收支)도 있고 수지(樹脂)도 있다. 경기도 용인군 수지(水枝)라는 지역도 있다.
설사 그 말을 한국어로 표기했다해도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앞뒤 문맥을 따져 어느 ‘수지’인지는 알 수 있겠지만 정작 그 수지 본래 뜻을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는 한글 전용도 한자 우선주의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80년대 중반 한 진보성향의 언론사가 가로쓰기와 함께 한글전용을 표방하면서 지금 대부분의 신문이 한글쓰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감이 앞선다.
앞으로 우리가 한국 내에서만 살아갈 것은 아니다. 자녀들의 경우, 외국과의 교류는 더욱 많아질 것이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특히 미국과 중국, 일본과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질 것이며, 교류도 빈번해질 것이다. 경제적으로 대통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한자에 대한 인식은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한국어의 또 다른 밑둥이기도 한 한자를 자연스레 익히고 깨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한자를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많은 젊은층들이 이미 한글로만 쓰고 배운 탓에 한자를 마치 그림 그리듯 하고 있다.
하지만 한자가 갖는 장점도 적지 않은 만큼 하나씩 익히다 보면 그것만큼 재미있는 문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천자문(千字文)의 경지에 들어가 보아라. 얼마나 체계적이고, 논리적인가. 어떤 문자를 보고 그 글의 뜻과 의미를 안다는 것은 더욱 즐겁지 아니한가!
일본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필수한자를 익히고 있다. 학년별로 배워야할 한자가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한자실력을 바탕으로 하여 그들은 수많은 한자어를 만들어냈다. 국어(國語)라는 단어가 과연 중국어일까?
우리가 배우고 있는 법률용어나 의학용어 철학용어 건축용어 등 대부분의 언어들이 일본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것을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만 쓰는 순한글식 문자를 만드는데 노력하고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한자를 이용한 단어와 어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 바람직하고 어문정책상 효율적인지는 언어학자들에게 맡기기로 하자. 다만 분명한 것은 언어능력은 배우면 배울수록 발달한다는 점이다.
유럽 사람들이 자국어 외에도 주변국의 여러 나라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말의 모태가 비슷하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언어교육을 다양하게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어에만 매달려 유치원 때부터 닦달하듯이 한자교육에도 그러한 열정을 보인다면 훨씬 빠르게 익히고 배울 것이다. 어차피 우리가 말로써 그들 표현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한자실력과 관심도가 낮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국가정책의 혼미에 의한 결과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자식들에게는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내 나라말을 잘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한자어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나라의 수준은 곧 그 나라 국민들이 쓰는 말과 글의 수준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아들과 딸 그리고 옛 직장의 후배들에게 던지는 삶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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