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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제이, 발레를 통해 서양에 한국을 심는다

공주도, 대사도 춤추게 한 서울발레시어터 대장정 마쳐

등록|2007.10.02 20:26 수정|2007.10.03 07:11

▲ 터키.이스라엘에 이어 세르비아에서도 관객의 호평을 받은 서울발레시어터의 신작 마스크의 한 장면 ⓒ 김기

발레를 통해 한국을 알린다? 누가 들어도 의아한 말이 분명하다. 그러나 1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세르비아 국립극장에서 지난 9월 28일 열린 서울발레시어터의 공연은 가장 서양적인 장르인 발레를 통해 역설적으로 한국의 정서를 거부감 없이 전달하였다.

이 공연은 주 세르비아 대사관의 초청과 외교통상부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또 세르비아 문화부, 국립극장과 한국 대사관이 공동주관하였다.

이날 공연에는 지난 터키나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한국 발레로서는 처음 소개되는 자리였다. 또 아직 한국과 교역 등 교류가 미약한 세르비아로서는 IT강국이라는 막연한 호감은 있어도 직접적으로 아는 것은 적은 상태다. 공연 중간 만난 세르비아 국립발레단장도 일본, 중국, 대만의 발레는 봤어도 한국 발레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이다.

현직 대사 중 유일한 여성 대사인 김영희 대사를 비롯해 대사관 직원들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세르비아를 방문한 서울발레시어터에 대한 관심은 놀랄 만큼 뜨거웠다. 공연을 위해 몸을 풀던 세르비아 국립극장 연습실에는 연일 현지 기자들의 방문이 잇따랐으며, 서울발레시어터 무용수들의 연습장면은 신문에 커다란 사진과 함께 소개되었다.

▲ 한국 대사관을 취재하고, 문화부에서의 기자회견 이후 연습실을 찾아 스케치한 사진들을 문화면 톱으로 실는 등 서울발레시어터의 방문에 세르비아 언론은 대단히 큰 관심을 보였다. ⓒ 김기

현지 반응이 뜨거울수록 공연을 준비하는 서울발레시어터는 더욱 긴장했으며, 무박 2일의 고된 여정에도 휴식 이 곧바로 연습에 매진했다. 또 이미 세르비아 문화부장관을 비롯한 많은 관료와 대사들이 참석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까닭에 그 긴장감은 갈수록 고조되었다.

더욱이 세르비아 엘리자베타 공주까지도 이미 참석을 약속한 것이 단원들에게 알려지면서 연습장은 긴장과 설렘으로 뜨거운 열기를 더해갔다.

한국 3대 발레단의 하나인 서울발레시어터는 가장 늦게 시작한 단체이나 상임안무가인 제임스 전이 매해 작품을 만드는 탓에 가장 많은 작품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세르비아에 소개한 작품은 초연인 마스크(mask)를 포함하여 총 다섯 개였다. 서울발레시어터가 기존 발레단체와는 달리 모던 발레라는 특성화를 추구했듯이 이 작품들 역시 그러했다.

안무가 제임스 전이 택한 모던 혹은 크로스오버 발레의 방향은 한국 전통과의 접목이었다는 점이 이번 서불발레시어터 해외 투어의 특이할 점이었다. 다섯 작품 중 셋은 그야말로 모던한 것이었으나 각설이타령을 음악으로 쓴 ‘희망’과 제임스 전이 해외 투어를 노리고 새로 만든 ‘마스크’는 한국발레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 뭉크와 한국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두 대상을 크로스오버 발레라는 원심력으로 용해하여 찾는 곳마다 호평을 맏은 제임스 전의 신작 '마스크'의 한 장면. 정혜령, 이세연 ⓒ 김기

기존에도 춘향전이나 심청전 등의 고대 소설을 발레화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단지 줄거리를 가져오거나 무용수들에게 한복을 입힌 것에 불과했다면 서울발레시어터의 ‘마스크’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현대사회의 공통 주제인 뭉크의 절규를 시적 감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적 해석을 보임으로써 외국인의 이해를 도왔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수 있었다.

한 번의 공연이 아니라 터키, 이스라엘을 지나 세르비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반응을 통해 우연이 아닌 계산된 효과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 관객들 눈에 익숙지는 않은 한국적 요소를 낯설지 않게 다가선 ‘마스크’의 성공은 우리가 취하고 있는 서양 문화양식을 남의 것이 아니라 우리 것으로 소화하는 데 있어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지게 됐다. 현대의 고독을 거꾸로 고대 신화적 표현으로 해석해낸 역설이 통한 것이다.

안무가 제임스 전은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에 미국으로 이민 가 자신 스스로 한국문화와 서양문화의 혼돈을 직접 경험한 것이 이와 같은 해석을 가능케 한 배경이 되었다"고 말하였다.

젊어서는 자신이 택한 발레만이 전부로 여겨졌으나 차츰 자신의 근원에 대한 갈증이 생겼고 한국발레가 본토 발레의 아류가 아닌 자기 색깔을 가져야 한다는 안무가로서의 당연한 동기 속에 몇 년 전부터 한국발레의 방향 찾기에 골몰하는 중이었다.

▲ 국내외를 막론하고 항상 관객들에게 큰 감명을 주는 서울발레시어터 대표작 중 하나인 '생명의 선'을 연기하는 전선영, 정운식. 세르비아 관객들도 역시 이 작품에 큰 관심을 보였다. ⓒ 김기

무대에서 수용되지 않는다면 안무가의 고민과 의도는 아무런 의미를 얻을 수 없지만 이번처럼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는다면 그 성공에 대해 인색할 이유는 전혀 없다. ‘마스크’는 전통 시조의 운율적 요소의 동선 표현, 풍물의 오방진 변형, 궁중무용인 교방무고의 응용과 탈을 통한 주제 변형 등 어떤 것이든 그대로 사용하지 않은 창의성이 돋보인 작품이다.

또한, 남도 구음(판소리 성조에 가사 없이 부르는 노래), 거문고, 가야금 등 한국 전통음악과 포레 등 서양음악을 상황에 맞게 이어 붙인 것도 한국적이면서도 동시에 서양적이기도 한 발레 크로스오버 작품인 ‘마스크’의 이해를 수월케 해주었다. 연습실을 찾은 현지 기자가 어느 것이 한국음악이고 서양음악인지 구분할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공연이 열리는 28일 저녁, 비록 작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세르비아 국립극장 로비는 명사들로 가득 찼다. 주 세르비아 대사관 안은주 일등서기관의 소개를 일일이 챙기기도 어려울 정도로 내국 귀빈들과 각국 대사들이 줄을 이었다. 문화부장관은 물론이고 여러 장관과 최고법원장 등과 일본, 러시아, 중국 대사 등 입추의 여지없이 객석이 채워졌다.

▲ 방송, 신문 20개사에서 참여한 세르비아 문화부 브리핑룸에서의 기자회견. 왼쪽부터 임영희 서울발레시어터 이사장, 세르비아 문화부차관. 장관, 김영희 대사, 통역, 세르비아 국립극장장, 제임스 전, 김인희 단장. ⓒ 김기

이미 프리뷰 기사가 나간 이후 대사관을 각처에서 몰려드는 입장권 문의에 진땀을 흘려야 했듯이 680석 규모의 객석이 모자라 빈 곳마다 보조 의자를 놓아야 했다. 공연 중 반응은 워낙 명사들로 채워진 탓인지 앞서 터키나 이스라엘처럼 뜨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준비된 다섯 작품이 모두 끝났을 때에는 긴 박수로 몇 번의 커튼콜을 거듭해야 했다.

공연 후 세르비아 문화부와 한국대사관이 공동을 연 리셉션에서는 미국 대사관 문화공보관이 안무가에게 찾아와 “한국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였고, 김영희 대사는 여러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단지 인사치레가 아닌 것이 명사들의 리셉션치고는 분위기가 대단히 들떠서 옆 사람 말소리도 가까이 귀를 기울이지 않고는 듣기 어려울 정도였다.

특히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으로부터 토슈즈를 선물 받은 엘리자베타 공주는 대단히 기뻐했고, 춤추는 동작을 보이며 다음에는 함께 무대에 서겠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에 질세라 김영희 한국대사도 맞장구를 치듯 춤 동작으로 답례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용수들은 고급관료들과 외국 대사들과 기념촬영하기에 바빴고, 안은주 일등서기관은 주저함 없이 대성공임을 확인해주었다.

15박 17일의 해외 투어를 마친 서울발레시어터는 여독을 풀 겨를도 없이 3일과 4일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마스크'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 공연은 대학로 아르코예술대극장에서 3일 오후 5시, 4일 오후 8시에 열린다.

▲ 공연 후 서울발레시어터 무용수들은 수많은 명사들의 기념촬영 요청에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왼쪽부터 제임스 전, 연은경 부단장, 엘리자베타 세르비아 공주. 김영희 대사, 정운식, 세르비아 최고 소프라노, 김은정, 정경표, 정혜령, 임영희 이사장, 송경원, 김인희 단장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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