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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의 근육에서 나오는 팽팽한 긴장감

<유럽기행 5> 오르세 미술관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Herakles)'

등록|2007.10.03 12:45 수정|2007.10.03 13:09

오르세 미술관 입장객.오르세 미술관 앞은 언제나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 노시경


나는 볼 곳 많은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을 꼽으라고 하면 항상 오르세 미술관을 말하고는 한다. 회화와 조각상들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전시작품들의 세계적인 위상 때문이다. 오르세 미술관에는 미술 지식이 한참 모자라는 내가 일견해도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한둘이 아니다.

나는 우선 파리의 관광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뮤지엄 패스를 구매했다. 다행히 파리에서는 딸아이와 같은 어린이는 미술관 입장료가 대부분 무료이다. 뮤지엄 패스는 작품수준을 생각해도 과도하게 높은 편인 어른들의 미술관 입장료를 상당히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르세 미술관과 같은 대형 미술관의 끝도 없이 늘어선 입장 대기 줄을 피해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르세 미술관.과거에 역으로 사용되던 곳이 대형 미술관으로 아름답게 재탄생하였다. ⓒ 노시경

십 년도 지나 다시 와 본 오르세 미술관이지만, 미술관 전경이 어제 보았던 것과 같이 뚜렷하다. 그만큼 내 인상에 강렬하게 각인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세느강 아래 파리의 중심부에 있던 오르세 역은 도시가 팽창되면서 도심 역으로서의 지위가 상실되었지만, 미술관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나는 당시에 철도 역사를 개조해서 미술관을 만든 아이디어에도 탄복했지만, 철도역을 개조한 건물이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느냐고 내 여행친구에게 여러 번 되물었었다.

아내는 가족끼리 자유여행을 다니면서, 단체여행의 가이드들만큼 상세한 작품설명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내심 불만이었다. 아내는 이 오르세 미술관의 기라성 같은 작품들에 대한 상세설명을 원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르세 미술관을 만나기 전에, 한국에서 오르세 미술관과 소장 작품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왔다. 우리는 오르세 미술관 입구 계단에 앉아 그 자료를 차분히 읽어보았다.

미술관 입구의 철골 구조물 상단에 오르세 미술관의 상징이 되어버린 커다란 시계가 우리를 내려 보고 있었다. 나는 마치 영화 속에서나 봄직 한 엄청나게 큰 시계를 보면서 이곳이 과거에 기차역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

나는 십여 년 전 오르세 미술관 답사에서 다리가 아플 정도로 모든 전시관을 돌며 대부분의 작품을 감상했다. 그때에 피곤했던 기억은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딸이 함께 움직일 동선을 고려해서 전시관 사이마다 쉬는 시간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오르세 미술관의 모든 미술품을 감상하겠다는 욕심을 버렸다.

나와 내 가족은 2층의 전시실을 중점적으로 답사했다. 우리는 특히 미술책에서 보던 낯익은 작품들 앞에서 걸음을 자주 멈췄다. 그러다가 2층의 테라스 같이 공개된 전시실에서 발길을 멈췄다.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그리스의 영웅이 근대 작가에 의해 사실적으로 부활하였다. ⓒ 노시경


우리 가족의 눈에도 낯설지 않은 에밀 앙트완 부르델(Emile Antoine Bourdelle, 1861~1929년)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잘 가꿔진 근육질의 남자가 활을 당기고 있었다. 백 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현대판 근육질의 남성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황동으로 만들어진 근육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어서 강한 남성의 힘이 느껴지는 듯하다. 인체의 순간적인 근육의 긴장감 속에서 인간의 생명력이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 긴장감은 바위에 앞발을 내딛는 자세를 통해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고, 무언가를 노려보는 헤라클레스의 표정이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다.

헤라클레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화 속의 인물이다. 뛰어난 명사수였던 그는 무엇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가? 그는 그리스 미케네의 왕이며 자기의 사촌인 에우리스테우스(Eurysteus)에게 열두 가지 과업의 수행을 명령받았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이 전사는 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전설 속의 스팀팔로스(Stymphalos) 호수 주변 숲 속의 새를 겨냥해서 활을 당기고 있다. 단단한 발톱과 부리를 가진 이곳의 무서운 새들은 사람과 가축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이 새들을 몰살시키라는 임무를 받은 헤라클레스가 아침 일찍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을 향해 화살을 쏘는 순간이 바로 이 작품이 포착하고 있는 순간이다.

헤라클레스의 활을 당기는 순간이 아주 긴장되고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근육의 긴장감은 더할 나위 없이 강조되어 있고, 활을 쏘는 자세를 최대한 안정시키기 위해서 양다리는 최대한 넓게 벌려져 있다. 활을 당기는 강력한 팔은 뒤로 쭉 뻗어서 당장에라도 움직일 듯하다. 얼굴은 활과 함께 활이 향하는 공간으로 향하고 있다. 스팀팔로스 새들을 노려보는 헤라클레스의 눈은 이 작품의 공간이 저 멀리 허공에까지 연장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들은 절대적인 미와 엄격한 형식미, 건강한 순수함을 추구하고 있었다. 근대 조각의 유명 작가인 에밀 앙트완 부르델은 분명히 고대 그리스 조각의 단순함과 힘에서 영감을 얻었음이 틀림없다. 로댕의 제자였던 부르델이 걸출한 스승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기 세계를 보여주었던 작품이 바로 이 헤라클레스이다.

헤라클레스의 뒤틀린 근육과 같은 인체의 해부학적 묘사는 고대 그리스 조각들을 보는 듯하다. 그의 헤라클레스는 사실적이고 이상을 추구하는 고대 그리스의 고전적 양식에 활기가 더해져 있다. 나는 이 활력 있는 조각을 손으로 한번 만져보고 그 촉감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리스 신화에 심취해 왔고, 그 신화 중심의 율리시즈(Ulysses)와 아킬레스(Achilles), 헤라클레스는 현실과 신화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내 기억 속의 헤라클레스는 펠레폰네소스 반도에서 지중해의 작은 섬까지 모험의 여정을 펼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나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내 눈앞에서 활시위를 당기며 그의 모험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흑해와 지중해를 누비던 진취적인 신화 속 인물이자 그리스 아카이아(Achaea) 역사 속의 영웅이었다. 그의 험난한 모험과 사랑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근대 작가에 의해 사실적으로 부활한 것이 이 작품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의 진취적 기상이 영웅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그 이야기는 2천 년 넘는 세월이 지난 후에도 대작가에 의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나는 헤라클레스의 화살 시위는 그리스인들의 진취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앞에서 딸의 사진을 찍고, 아내의 사진을 찍고, 우리 가족의 사진을 찍었다. 나는 유명 작품 앞에서 사진 찍기에 열중인 한국 관광객이 되어 있었다. 우리 가족사진은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프랑스 청년이 찍어주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인화한 이 가족사진의 가족들 머리 위로 옷을 다 벗고 활을 당기는 헤라클레스의 실한 성기가 걸려 있었다. 이 사진은 약간 민망한 나체 때문에 서재를 장식하는 우리 가족 대표 사진에서 제외되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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