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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자르는 모습에서 세월이 느껴집니다

가족행사로 보낸 형님의 칠순

등록|2007.10.04 13:38 수정|2007.10.04 14:51

▲ 형님이 자른 떡 케이크는 맛깔스럽고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 임윤수


지금이야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국민의 노령화가 사회적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지만 평균수명이 길지 않았던 그때, 살아계시면 99세가 되는 필자의 아버지 세대만 해도 환갑은 커다란 잔치였습니다.

아무리 살기가 어려워도 집안 어른이 환갑을 맞게 되면 돼지 한두 마리쯤 잡는 건 기본이고, 일가친척은 물론 먼 동네사람들까지 실컷 먹고 즐길 만큼 넉넉하게 음식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자식 된 도리이기도 했겠지만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던 시대니 그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마을잔치에서 얻어먹은 것에 대한 답례이기도 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다보니 환갑이 있는 집에선 일 년 김장을 하더라도 더 많이 해야 하고, 된장을 담그더라도 넉넉히 담가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할 만큼 집안의 커다란 행사였습니다.

집안 커다란 행사였던 환갑잔치

환갑집 마당엔 잔치 전날부터 차일이 처지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들어 잔치음식을 준비합니다. 도랑 근처에서는 남정네들이 돼지를 잡고, 잡채 같은 음식은 부엌에서 만들지만 전이나 부침개만큼은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마당 근처에 부쳤습니다.

▲ 촛불을 ‘후’하고 불어 끄는 모습은 젊게만 보였습니다. ⓒ 임윤수


▲ 케이크를 자르느라 구부린 허리에서 왠지 노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 임윤수


밀가루 반죽에 김치나 파를 넣고 부치는 밀가루부침개도 있었지만 녹두를 갈아서 부치는 녹두전이나 간납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환갑집에서는 음식을 장만하는 아주머니들의 말소리만큼이나 맛난 냄새도 끊이지 않았지만 뭐니뭐니해도 동네를 온통 뒤덮을 만큼 사람들 코를 자극하는 것은 역시 부침개를 부치느라 뒤집어 놓은 솥뚜껑에 두르는 들기름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였습니다.

환갑날 아침이 되면 알록달록한 과자와 온갖 과일, 고기와 푸짐한 음식들을 수북하게 쌓아놓은 환갑상이 마련되고, 환갑을 맞은 어르신을 모시고 자식들이 큰절을 올리는 것으로 잔치는 시작되었습니다.

살기가 넉넉했던 집에서는 요즘으로 말하면 악단이나 가수라고 할 수 있는 풍각쟁이나 창꾼을 불러 한바탕 흥을 돋우며 놀이판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랬던 환갑잔치가 아름아름 생략되거나 약식화 되더니 언제부턴가 ‘환갑잔치’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옛말이 되며 칠순잔치가 등장을 하였습니다. 옛날에도 칠순잔치야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육십갑자를 매듭을 짓는 환갑잔치만큼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입니다.

나이어린 형은 없어도 배내삼촌은 있다는 말이 있듯 항렬(촌수)이 높은 편에 속하는 필자의 경우 위로는 형님들뿐이니 나이가 훨씬 많은 조카는 물론 손자뻘 되는 일가도 꽤나 됩니다.

가족행사로 보낸 형님의 칠순

▲ 평생 농사를 지으며 시골에 살고 있는 형님이 아직은 건강해 보입니다. ⓒ 임윤수

필자와 나이가 동갑인 조카, 한 마당에서 자라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녀 동기동창이기도 한 조카의 아버지이자 필자의 형님이 10월 13일 칠순을 맞이하였습니다. 칠순이라고 해서 잔치를 한 것은 아니었고, 그냥 넘기기는 서운하니 형제들끼리 모여 점심 한 끼를 함께 하는 가족행사였습니다.

예전처럼 얻어먹은 것을 갚아야 할 만큼 빈곤한 시대도 아니고, 70이란 나이가 엄청나게 장수라고 자축하기엔 조금 머쓱할 수 있는 노령의 시대인데다, 한참 바쁜 농번기에 동네사람들은 초대한다는 것 또한 알게 모르게 부담을 주게 되니 그냥 가족행사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평생 고향을 떠난 적 없이 농사를 짓고 있는 형님이지만 70이란 나이가 무색할 만큼 건강한 편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논물을 보러다니는 것은 물론 털털거리는 경운기를 비탈길에도 거침없이 몰고 다니니 먼발치에서 보면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 건강한 모습니다. 그러나 형님 역시 70이 된 할아버지였습니다.

가족들이 모이고, 떡케이크를 자르는 순간 형님의 얼굴에서 세월이 느껴졌습니다. 제과점 케이크보다 훨씬 맛깔스럽고 보기에도 좋은 떡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후하고 불어 끄는 모습에선 젊은 모습이 보였지만 케이크를 자르느라 구부정한 허리는 노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냥 지나치듯 보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주름도 보였고,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는 큰아들의 인사말에 조금은 겸연쩍어하며 "허허" 하고 웃으시는 웃음소리에서 세월의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 형님이 살아온 삶의 궤적일수도 있는 자식들 중 일부입니다. ⓒ 임윤수


▲ 형님의 칠순을 맞아 함께 자리를 한 형제들과 조카들입니다. ⓒ 임윤수


당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일 수도 있는 손자손녀들을 보며 흐뭇해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으며 아들딸, 형제들과 함께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더 없는 어비이며 형님의 모습입니다.

세월은 주름의 모습으로 흘렀고, 사회적 호칭은 할아버지라는 타이틀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건강해 보이는 형님의 여생이 정말 건강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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