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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결전- 83회(6화 3회)

우금치의 귀신 - 3

등록|2007.10.05 09:43 수정|2007.10.05 09:45
-드르르르륵! 투투투투투!

“앞으로! 앞으로!”

지휘관은 맹렬히 소리를 질렀지만 그 역시 총탄을 맞고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김학령을 비롯한 살아남은 자들이 용케 조선관군과 왜군이 버티고 있는 곳까지 다가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관군의 소총들이었다.

-파파바방!

동학병들은 총구를 겨누고 있는 관군의 모습도 보지 못한 채 쓰러져 나갔다. 관군이 지니고 있는 총은 서 있는 채로 총구에 총탄을 집어넣는 화승총과는 달리 엎드려 몸을 숨긴 상태에서 총탄을 장전할 수 있는 최신식 소총이었다. 동학병들의 돌격을 저지하는 연발총이라는 것은 개틀링건이라는 최신형 기관총이었는데 좁은 길목의 좌우에 교묘하게 들어서서는 밀집해 들어오는 동학병들을 마음껏 유린하고 있었다. 관군의 뒤에서는 일본군의 깃발이 무심히 나부끼고 있었다. 뒤이어 돌진해 오는 동학병들은 사방에 겹겹이 쌓여있는 동지들의 시체 때문에 움직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건 전투가 아니다! 일방적인 살육이야!’

김학령은 일본군을 뒤에 두고 동학병들을 살육하는 관군들을 향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의 손에 든 죽창 한 자루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김학령은 손에 든 죽창을 내동댕이치고 소리쳤다.

“야 이놈들아! 너희가 총구를 겨누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다! 너희들 뒤에 있는 왜놈의 깃발이니라!”

고함소리와 비명소리, 총소리가 가득한 아비규환의 전장 한가운데서 김학령은 우뚝 선채 계속 소리쳤다.

“어서 총구를 돌려라! 이 망할 놈들아! 이 더러운 왜놈의 앞잡이들아!”

김학령은 순간 장딴지가 뜨끔해지며 두 다리에 힘이 풀어지고 말았다. 정면에서 놀아온 총탄이 김학령의 다리를 관통한 것이었다.

“으악! 야, 이 망할 놈들아! 망할 놈들아!”

김학령은 비명을 지르고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악을 쓰고 고개를 치켜들었지만 곧 힘이 빠져 고개를 땅에 쳐 박고 말았다. 김학령은 순간 콧속으로 가득히 전해져 오는 피비린내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말했다.

‘아! 하늘이시여!’

땅바닥에 엎어진 김학령은 뛰어다니느라 미처 유심히 보지 못한 처참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우금치 고개에는 팔다리가 꺾이고 목이 돌아간 채 피에 젖은 동학 농민군의 처참한 시체가 가득히 널려 있었다.

“꽃분이...... 꽃분이가 보고 싶어.”

김학령의 옆에 쓰러져 있는 늙은 농민 하나가 중얼거렸다. 다리에 상처를 입고 주저 엎드려 있는 김학령은 그에 비해 양호해 보일 지경으로 그는 시체와 다름없는 몰골로 겨우 입만 여닫을 수 있을 뿐이었다.

“꽃분이 만나러 가야 되는데...... 꽃분이 만나러 이 고개를 넘어야 되는데......”

그는 끊임없이 말을 되풀이 하다가 조용해졌다. 김학령이 손을 뻗어 그의 코에 가져다 대보니 숨이 끊어져 있었다. 꽃분이를 찾던 늙은 농민은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었다.

‘나도 곧 저렇게 죽게 되겠지.’

김학령의 장딴지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리를 묶어 지혈을 해야 했건만 김학령은 그냥 죽은 척 엎드려만 있을 따름이었다.

‘참 덧없는 인생이었어.’

김학령은 어린 시절 따돌림을 당했던 일과 동학의 교리에 빠져들어 많은 동지들을 만나고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던 일들을 되새겨 보았다. 되돌아본 그의 인생은 그리 굴곡도 화려함도 없었지만 김학령은 그것이 후회스럽지도 기쁘지도 않고 그저 다른 이의 따분한 인생을 돌아보는 것만 같았다.

‘이런 게 죽는 기분일까?’

김학령은 눈을 감았다. 김학령의 코를 자극하던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가 서서히 사라지더니, 그의 귓가에 울려 퍼지던 총탄소리와 비명소리도 어느덧 조금씩 잦아들었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 끝이로군.’

김학령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덧붙이는 글 </br>1.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b>6. 우금치의 귀신 </b>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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