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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한테는 어떤 장난감이 즐거울까?

[그림책이 좋다 39] 알리 미트구치, <재활용 아저씨 고마워요>

등록|2007.10.05 11:01 수정|2007.10.05 11:11

겉그림줄거리며 그림이며 산뜻하고 싱그러운 그림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 최종규

- 책이름 : 재활용 아저씨 고마워요
- 글/그림 : 알리 미트구치
- 옮긴이 : 김경연
- 펴낸곳 : 풀빛(2005.4.20.)
- 책값 : 8500원


<1> 아이였던 지난날을 잊은 어른들

… “대체 여기서 뭐하는 거니? 집에 더 좋은 새 장난감이 얼마나 많은데!” 부모들은 아이들을 나무랐어요. 부모들은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22∼23쪽〉

새 장난감을 사 준다고 해서 아이들이 더 즐거워하지는 않습니다. 새 장난감이 더 좋다면, 아이들은 날마다 새 장난감을 사야겠지요. 부모도 새 부모로, 집도 새 집으로 바꾸고, 동무도 새 동무가 더 좋겠네요.

처음 보는 장난감에 놀라워하며 눈길이 쏠리는 일이야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호기심이 생기니까요. 이때, 어른들이 ‘새로운 물건’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자꾸만 새 물건을 사들인다면 아이들도 이런 어른들 버릇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길이 들고 익숙해집니다. 그러면서 새 장난감을 찾게 되지 싶습니다.

자, 그러면 그동안 사 놓은 헌 장난감은 어찌해야 좋을까요? 어른들이 자꾸자꾸 사들여서 쌓이는 헌 물건은 어찌할까요? 버릴까요? 버린다면 어디에?

… 크링겔 씨는 우선 모든 것을 한데 모았어요. 그러다 보니 쓸모있고 멋진,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물건들이 아주 많았어요. 아저씨는 옛날 생각이 났어요. 모두들 가난해서 새 물건을 사기는커녕 먹을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죠. 그때를 생각하니 아직 쓸 만한 물건들을 그냥 버리는 것이 마음에 걸렸어요. 아저씨는 꼭 버릴 물건만 버리고 좋은 물건들은 그냥 두기로 했어요… - 10∼11쪽

나무막대기 하나로도 재미있게 놀고, 돌멩이 하나로도 못할 것이 없는 아이들입니다. 아무것이 없어도 맨손으로, 또는 머리로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키득거리며 웃고 좋아하는 아이들입니다. 지금 어른인 모든 사람들은 바로 이런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 마음을 모르는, 아니 잊어버린 어른들은 새 물건이 나오기 무섭게 사들입니다. 신문과 텔레비전 광고를 보고 삽니다. 이웃들이 사서 쓰는 모습을 보고 삽니다. 새 물건이 집에 하나둘 쌓이니, ‘새’ 물건을 둘 자리가 모자라서 ‘헌’ 물건을 내다 버립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새’ 물건도 ‘헌’ 물건이 됩니다. 그러니 자꾸자꾸 버려야 할 물건이 생깁니다. 그러면 이 물건은 어디로 갈까요?

그림책 <재활용 아저씨 고마워요>에서, 이 헌 물건들은 ‘크링겔’씨 집으로 모입니다. 마음 착한 크링겔 아저씨는 쓰레기처럼 버려진 헌 물건을 누가 버렸는지 따지려고 했으나, 마을사람 모두 발뺌을 하겠구나 싶어서, 자기 손으로 한데 모아서 멀리 내다 버리려 합니다.

그러다가 어릴 적 일을 떠올립니다. 참으로 가난하고 가진 것 없어서 쩔쩔매던 때가 떠오릅니다. 그래, 헌 물건은 버리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차고에도 모으고 집구석에도 모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많이 쌓여서 어쩔 줄 몰라하던 때에, 마을 아이들이 하나 둘 찾아오더니 바로 이 ‘쓰레기처럼 버려진 헌 물건’을 재미있는 놀잇감으로 삼는군요.

속그림 1아이들은 `헌 장난감'이든 `새 장난감'이든 가리지 않고, `자기 손길'이 탄 장난감을 좋아하고 즐기지만, 어른들은 `그런 구질구질한 곳에서 나오라'며,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서 손만 깔딱깔딱합니다. ⓒ 풀빛


<2> 새 장난감이란 무엇일까?

무엇보다 근사한 것은 물건들의 주인이 아이들이라는 것이었죠. 로케트도, 집도, 인형의 방도, 경주용 자동차도 모두모두 아이들 것이었어요. 아이들은 오래오래 크링겔 씨 집에서 놀고 싶었어요. - 21쪽

새로운 장난감은 틀림없이 아이들을 기쁘게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장난감이 아이들을 기쁘게 하는 시간은 아주 잠깐. 아이들은 또 다른 새 장난감을 기다리게 됩니다.

제 어릴 적을 떠올려 봅니다. 국민학교 평교사인 아버지는 네 식구 먹여살리는 일을 빠듯해 했습니다. 어머니는 늘 부업을 했고, 형과 저는 어머니가 하는 부업을 늘 도우며 놀았습니다. 지금에서야 또렷이 떠올리지만, 어릴 적 형과 저와 어머니가 둘러앉아서 먹던 밥상에 반찬이 한두 가지밖에 없던 것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밥이라도 많이 먹으면 좋았고 배불렀으니까요.

놀잇감이 따로 없었고, 5층짜리 조그마한 아파트(70년대에 잠깐 있었던 연탄으로 난방 때는 아파트)에 모인 동무들끼리 돌멩이 하나로 땅따먹기를 하고, 돌로 아스팔트 바닥에 금을 그어서 오징어놀이를 하고, 달리기 겨루기를 했습니다. 공이라도 하나 어디서 얻으면 공차기도 하고 찜뿌놀이도 했습니다.

시골에 살던 분들은 훨씬 더 많은 놀이를 ‘돈 없이 마련할 수 있는 놀잇감’으로 즐겼겠지요. 닭싸움도 많이 했고, 기마타기도 했고, 술래잡기와 얼음땡, 숨바꼭질은 얼마나 많이 했는지. 부루마블 게임 있는 동무한테 살살 알랑방귀를 뀌면서 한 번 할 수 있을 때는 참 즐겁기는 했지만, 이런 놀이판 하나로 심술을 부리는 녀석들하고는 그다지 어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도 잠깐뿐, 곧 살살 어르고 달래며 같이 놀자고 떼를 쓰기도 했고.

작은아버지 댁을 찾아갈 때면, 늘 새로운 장난감이 넘치던 사촌동생들 방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서는 구경도 못하는 게임기가 있고, 만화잡지를 한 호도 빠지지 않고 다 갖추고 있습니다. 형하고 제가 어렵게 돈을 모아 만화책 한 권을 사면 어머니는 어떻게 알았는지, 형하고 제가 학교 간 틈을 노려 쓰레기통 안쪽 깊숙이 내다 버리시곤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버려진 만화책(과 여러 가지 장난감)을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가서 찾아냈고, 어머니는 다시 버리시고….

그때, 작은댁 사촌동생 방에 널려 있던 장난감은 참 많았지만, 사촌동생이 그 장난감을 제대로 갖고 놀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언제라도 새 장난감을 아무 걱정없이 사 주시던 작은아버지 살림이었으니까요.

속그림 2어른들은 자기들 잘못을 차츰 깨닫고, 아이들 뜻을 따르게 됩니다. ⓒ 최종규


<3> 아이들 마음 헤아리기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아저씨네 집을 찾아왔어요. 함께 이것저것 만들며 노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죠. - 16쪽

지금도 드는 생각입니다만, 어머니가 저와 형 장난감을 안 버려 주었다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가뜩이나 얼마 없는 장난감인데, 그것만이라도 고이 남겨 주었다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장난감 없이도 잘 놀았습니다. 그러니 장난감 몇 가지 버려졌다고 해서 기분 나쁠 일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있는, 어렵게 마련한 몇 가지인데.

<재활용 아저씨 고마워요>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무엇보다 근사한 것은 물건들의 주인이 아이들이라는 것이었죠”라는 말을 어른들한테 하고 싶습니다. 저와 형이 갖고 놀던 장난감이 아무리 허름하고 구질구질해 보인다 할지라도, 공부에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값이 얼마 하지 않는 싸구려라 할지라도 ‘형 것’이고 ‘제 것’이고 ‘우리들 것’이었습니다. 이 장난감 하나만으로도 못하는 놀이가 없고 시간이 얼마나 길든 짧든 신나게 놀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새 물건을 갖다 놓을 자리가 필요했어요. 그렇다면 헌 물건은 어떻게 하죠? “그래, 캄캄한 밤에 몰래 내다 버리는 거야.” 사람들은 생각했어요… - 6쪽

아이들도, 어른들도 ‘헌’ 사람이 아니겠지요. 우리가 사서 쓰는 물건도 쓴 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헌’ 물건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히 여기느냐에 따라 값어치가 달라지고 쓰임새가 달라지는 물건입니다. 우리가 마주하거나 부대끼는 사람도 서로서로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고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서 애틋하고 살갑고 반가운 크기가 달라집니다. 중요한 대목은 마음이지 싶어요. 어른들이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는 일, 우리가 쓰는 물건이 어디에 어떻게 쓸모가 있으며 어떻게 쓸 때 참으로 좋은가를 살피는 일이지 싶어요.

… “크링겔 씨가 떠나야 해요. 그 사람이 여기 오기 전에는 모든 것이 좋았잖아요.” 또 어떤 사람이 말했어요. 그때 크링겔 씨가 공손하게 물었어요. “여러분, 그럼 누가 헌 물건을 우리 집 마당으로 던지셨나요? 지금 우리 집은 물건들로 꽉 차서 살구잼조차 가지러 갈 수 없어요! 그런데도 아이들은 우리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해요. 헌 물건들을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있기 때문이죠.” … - 24∼25쪽

헌책이든 새책이든 즐겁게 읽을 수 있으면 좋습니다. 새 장난감이든 헌 장난감이든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으면 좋습니다. 가난한 부모이든 넉넉한 부모이든, 아이들과 즐겁게 어울리며 놀 수 있으면 좋습니다. 벌이가 적은 일이든 많은 일이든, 자기 스스로 즐길 수 있고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면 좋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 아이들과 함께하려는 마음가짐, 물건을 다루는 손길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고 느껴요. 물건 하나를 헤아리는 마음과 갈라진 남북이 하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따로 떨어져 있지 않겠지요. 평화를 사랑하고 평등을 아끼는 마음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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