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장발족 교사, 그의 긴 머리는 '제자 사랑'

[인터뷰] 부안중 교사 김영화씨 "머리 짧다고 성적 오르나요?"

등록|2007.10.05 11:08 수정|2007.10.06 21:31
"저는 긴 머리를 보면 바리캉으로 확 밀어 버리고 싶어요. 답답하지 않으세요?"

초등학교 때부터 짧은 스포츠형 머리를 했다는 한 사람이 다소 투박하게 물었다. 술자리가 아니었다면 실례가 됐을 법한 질문이었다. 반면 이런 사람도 있다.

"저도 답답해요. 하지만 저는 멋으로 기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항의를 하기 위해 기르는 것입니다. 애들한테 머리 깎지 않는다고 학교에서 자꾸 뭐라고 하는데 저는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어요. 머리카락 짧다고 성적이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이 얘기를 듣고 그를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었다.

김영환(42· 안양 부안중학교 미술교사) 교사를 볼 때마다 머리 기르는 이유가 궁금했다. 짧은 소견으로 '미술 선생님이니까' 라고 생각했다. 미술·음악 등 이른바 예술하는 사람들은 약간 특이한 외모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내게는 고등학교 때 두발 단속에 걸려 머리를 바리캉으로 왕창 밀린 경험이 있다. 그 속상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언의 항의를 하기 위해 삭발하려다가 사려 깊은 친구들 만류로 그만 두었다. 실제로 삭발을 했다면 '사랑의 매'(?)를 수도 없이 맞았을 것이다.

문득 김 선생 같은 분을 내 학창 시절에 만났다면 행복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머리카락 짧다고 성적이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 김영환 교사. ⓒ 이민선


인터뷰는 4일 오후 5시경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경기지부 안양-과천지회 사무실에서 했다. 그는 전교조 안양-과천지회 사무국장이다. 김 교사가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항의라기보다는 답답함의 표현이다.

- 머리를 기르는 이유가 단순히 항의를 하기 위해서 입니까?
"항의라기보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작년에 학생부 1학년 생활지도 담당 업무를 했는데 '너, 대가리 그게 뭐야! 진짜 안 깎을 거야' 라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동료 교사들이 하는 말이지요. 아침 자율 학습시간마다 각반 머리 긴 학생을 학생부 앞 복도에 줄지어 놓고 하는 말입니다.

학생 생활규정에 대해 여러 차례 학생들과 함께 학교 측에 개정할 것을 건의 했지만 여의치 않더군요. 학교 방침에 문제 제기하는 데 한계가 있고 명쾌한 개선방법을 찾을 수 없는 데 대한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첫 질문에 기대했던 대답을 들었다. 학창시절 삭발하려 할 때 그런 마음이었다. 가슴 속에 하고 싶은 말이 가득 담겨있는데 밖으로 끄집어 내지 못하는 답답함이 삭발’을 부추겼다. 김 교사는 두발 단속이 학생들 인권만 침해할 뿐 교육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 두발 단속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요?
"머리가 길면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고 탈선의 우려가 있기에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허나 이미 두발 단속과 학력의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으로 압니다. 사실 현재 여학생들은 두발이 거의 자율화되었지만 그렇다고 탈선하는 여학생이 예전에 비해 많아진 것은 아닙니다. 또, 남학생들 두발 단속 철저히 해서 일탈 행위가 없다는 소리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머리를 짧게 해서 좋아진다면 교육하기 얼마나 쉽겠습니까. 우리나라 교육 문제 단박에 해결될 겁니다.

학교에서 두발을 왜 단속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껏 그렇게 해 왔으니까 단속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막연한 관성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개성과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모든 이가 한 목소리를 내는데 아이들의 정신과 육체는 왜 획일화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아내도 이 문제에 대한 첫 반응이 '학생은 단정해야 하는거 아냐?'이더군요. 단정함에 대한 기준이 무엇인지, 학생다움이란 것이 무엇인지, 그렇다면 어른은 단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답답함 때문에 머리 기르기 시작

▲ "선생님 멋있어요" 라고 아부(?)성 발언을 하는 제자도 있다며 웃는 김영환 교사. ⓒ 이민선


김 교사가 근무하는 부안중학교는 남학생의 머리는 '학생다운 단정한 머리형'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머리는 눈썹에 닿지 말아야 하고 옆머리는 귀를 덮지 않아야 한다. 뒷머리는 옷깃에 닿지 않아야 하고 꽁지머리는 안 된다. 머리 모양을 인위적으로 변형하거나 염색하는 것은 당연히 금지다.

여학생은 남학생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긴 단발형' 이라 규정하고 있다. 단, 어깨선을 넘었을 경우 단정히 묶어야 하고 현란한 머리핀 착용은 금지하고 있다. 김 교사의 행동을 동료들은 어떻게 볼까? 아울러 다른 교사들은 두발단속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했다.

"동료 교사 설득하기가 가장 힘듭니다. 70~80%는 두발단속에 찬성합니다. 군대 가서 찍혔다는 말 들어 보셨지요? 저는 많이 찍힌 편입니다. 교장·교감 선생님에게 확실하게 찍혔죠. 이젠 아주 내놓았는지 별로 나무라지도 않습니다. 대신 진급은 힘들 것 같습니다. 진급하려면 근무평가가 좋아야 하는데 평가하는 분이 교장·교감 선생님입니다. 점수 잘 줄 리가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전교조에서 '근평' 폐지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학교를 말 못할 구조로 만들어 버리거든요."

김 교사는 학교가 군대와 비슷한 구조라고 생각한다. 말 못할 구조로 만들어서 자유롭고 창조적인 생각을 가로막는 것이 비슷하고 운동장에 높다란 구령대를 만들어 놓은 것이 비슷하다는 것.  그는 구령대가 의미하는 것이 복종이라고 했다. 복종만을 강요하는 문화가 창조적인 생각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두발단속 자체가 일제의 잔재라고 주장한다. 식민통치를 위해 민족정기를 말살하는 차원에서 단발령을 실시했고 질서라는 이름을 가장한 채 관리 통제 감시를 용이하게 하기위해 군복 같은 제복을 입혔다는 것. 그러다 보니 제복과 어울리는 머리 모양을 강요하는 생활양식이 지금까지 여과 없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거침없는 달변과는 달리 해결책에 관한 생각은 신중했다. 갑자기 바꾸기보다는 서서히 바꾸는 것이 좋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갑자기 바꾸다 보면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변화를 위해서는 학생 생활규범을 만들 때 학생들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스스로 만든 규칙이기에 굳이 단속하지 않아도 잘 지키게 될 것이라는 것. 사실 김 교사는 관리하는 것이 귀찮아서 15년 전 대학 다닐 때 길러본 이후  머리를 길러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은 의지의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언제까지 머리를 기를 거냐고 물었더니 김 교사는 이렇게 답했다.

"두발 자유가 되면 자르려나…."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