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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기자, 왜 경부운하 검증에 올인하나

[取중眞담] 1년째 심층취재... 한나라당에서조차 반대 목소리 나와

등록|2007.10.05 11:22 수정|2007.10.05 16:17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 <오마이뉴스>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을 심층기획 보도한 김병기 부국장을 특별 포상했다. 사진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김 부국장에게 상금을 전달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이종호

경부운하 심층보도 특별 포상
지난 4일 오후 <오마이뉴스>에는 작지만 의미가 큰 시상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김병기 사회부장.

김 부장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제1공약인 경부운하를 심층기획 보도했다. 경부운하를 집중적으로 보도한 건 우리나라 언론에서 김 부장이 유일하다.

김 부장의 보도로 이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존폐 논란이 일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대선 후보자 공약 검증의 새로운 모범을 보여준 김병기 기자에게 100만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사실 지난 1년 동안 그를 지켜볼 때마다 답답할 때가 많았다. 너무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의 기사 목록을 펼치면 처음부터 끝까지 경부운하다. 실제로 가끔씩은 "이제 좀 그만하죠"라며 말렸다.

그가 "이명박 후보 경부운하에 발목 잡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면, 나는 속으로 물었다. '선배야 말로 경부운하에 빠져 허우적대는 거 아닙니까?' 물론 이런 나의 간곡한 뜻은 전달되지 못했다. 속으로만 삭혔다.

경부운하 문제를 쓰고 또 쓰던 그는 언젠가 회의 시간에 웃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난 한 놈만 팬다!" 지난 시절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지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때로는 경부운하를 공약으로 들고 나온 후보가 불쌍하기도 했다. 언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 이명박 후보가 그렇게 싫어요?"

그는 하나도 조심스럽지 않게 단호하게 말했다. "이명박이 싫은 게 아니라, 경부운하는 말이 안 되거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전문가였고, 나는 "강에 시멘트는 왜 바른데요?" 정도 밖에 물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파고 또 파고... 1년 동안 경부운하 한 놈만 팼다

김병기 기자. 그는 나의 선배고 내가 속한 부서의 책임자이며, 부국장 직함을 갖고 있는 회사의 고위 간부다. 그런 김 선배는 연료 떨어지지 않는 포크레인처럼 경부운하 하나를 파고 또 팠다. 무려 1년 동안!

사실 그의 부재는 후배들의 외로움이기도 했다. 나를 포함한 사회부 후배 기자들이 기사의 방향을 잡지 못해 헤맬 땐 부장인 그가 무척 그리웠다. 그의 현명한 대답을 듣고 싶어 전화를 하면 그는 낙동강이거나, 아니면 조령산맥에 있었다. 좀 가까운데 있다 싶으면 경기도 여주 남한강 물속에 들어가 있었다.

전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더 없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행복하게 취재하고 있는 그에게 "빨리 오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낙동강과 한강에서 돌아오면 그가 주로 가는 곳은 경부운하 관련 토론회였고, 그가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운하 관계자들이었다. 게다가 가끔은 우리 후배들의 동참을 제안하기도 했다. 

"경부운하 함께 하지 않을래? 이거 엄청 재밌는 건데…."

나를 포함한 후배들은 그냥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우리가 아무 말 없자, 그도 활짝 웃었다.

추석 연휴 전날인 9월 21일 오전이었다. 그가 내 자리로 왔다. 역시 예의 그 활짝 미소를 머금고서 말이다. 이번엔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야, 이재오 의원이 말이야. 추석 연휴 동안 낙동강에서부터 한강까지 자전거를 탄다는데, 우리가 따라 가야하지 않겠어? 경부운하를 홍보한다는데…."

그와 함께 길을 나서기로 한 건, 미워할 수 없는 그 미소 때문도, 경부운하 보도에 참여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순전히 낙동강에서 한강까지 560㎞ 물길을 달려보는 게 재밌을 거라 생각했다. 



▲ 지난 추석 연휴 기간동안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의 '경부운하 홍보 자전거 투어'에 함께 한 김병기 기자. ⓒ 박상규

결국 그와 나는 달렸다. 560㎞를 달리는 동안 비가 내리기도 했고, 태양이 이글거리기도 했으며, 길을 잃기도 했다. 쉬면서 기사를 썼고, 자전거 위에서 취재를 했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해 보였다. 내가 허벅지가 아파 허덕일 때, 그는 타령을, 휘파람을 불었다. 자전거 위에서 말이다.

25일 추석 당일, 이재오 의원을 좇아 문경새재를 넘을 때였다. 내가 언덕을 오르며 서툴게 페달을 돌릴 때 그가 말했다.
"야, 빨리 가려하지 말고. 천천히 가. 빨리 가는 놈이 이기는 게 아니라, 끝까지 가는 놈이 이기는 거야."

난 자전거 위에서 말없이 페달을 돌리며 그 말을 곱씹었다. 조금씩 지난 1년 동안 경부운하에 '징하게' 매달려온 그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건 집착이 아니라 집중일 수 있고, 고집이 아니라 심층분석이라는 긍정이 조금씩 커졌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볼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다른 쪽 후보와의 대결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이명박과 김병기 기자의 대결. 후자의 관전 포인트는 누가 먼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느냐가 아니다. 누가 끝까지 가느냐가 핵심이다.

선배 김병기 기자는 요즘 "낙동강에서 한강까지 뗏목투어를 한번 가야하는데"라거나 "미국 운하 탐방을 한번 가봐야 하는데, 회사에서 보내줄까 모르겠네" 라는 말을 농담처럼 진담인 듯 종종 꺼낸다.

김병기 선배 가는 길에 진달래꽃 뿌려줄 수는 없겠지만, 이제 웃으며 그의 취재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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