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운봉 장날, 7월 땡볕 아래서 넋을 잃다

<엄마하고 나하고 24회>

등록|2007.10.05 19:26 수정|2007.10.05 19:33
(23회에 이어서)

나는 안절부절했다. 어머니가 더위에 짜증만 내지 않았어도 굳이 농협 하나로마트로 에어컨을 찾아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가 버럭 화를 내 지를 때마다 매장에 와 있는 사람들이 어머니보다 내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복다방계속 이쪽을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 전희식


기대를 잔뜩 하고서 운봉읍 장 구경을 나왔는데 보는 것마다 짜증을 내고 모든 것을 거부하는 어머니 심정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신나게 장 구경하다가 어느 돌부리에 걸려 자빠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숨도 마음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었다. 내 몸과 마음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지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칠월의 뙤약볕은 정오를 넘기면서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우리는 갈 데가 없었다. 농협 앞 사거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자포자기 상태로 있는데 길 건너로 다방이 보였다. 평소에는 '꼰대다방'이라고 쳐다보지도 않았을 테지만 이 때 만큼은 '복다방'이라는 촌스런 간판이 향수어린 휴식공간으로 보였다. 만사 제쳐놓고 저런 다방 소파에 푹 파 묻혀 냉커피 한잔 마시고 싶었다.

그런데 '복다방' 정문에서도 마담인지 누군지 알 수 없는 여인네 하나가 다방의 발을 제치고 이쪽을 계속 보고 있었다. 기다리는 손님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 모자가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어쨌든 그 눈길이 부담스러웠다.

어머니어머니는 처음부터 지쳐 있었다. ⓒ 전희식


바퀴의자를 돌리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고개를 의자 뒤로 거의 90도로 젖히고 눈을 감고 계신 것이었다. 나는 소름이 확 끼쳤다. 옆에는 아까 만났던 뻥튀기 장사 트럭이 계속 시동을 켜 놓고 있어 배기가스가 숨을 막히게 하고 있었는데 그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어머니를 흔들었다.

어머니 고개가 그냥 덜렁덜렁했다. 모든 게 한 순간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와락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어머니 머리를 껴안았다. 온 세상이 샛노랗게 변했다. 어머니는 그사이 땡볕에 얼굴이 그을려 있었고 고개도 못 들고 눈이 꿈질꿈질했다. 고개를 들어 주었더니 겨우 눈을 뜨는데 초점이 없었다.

순간 나는 형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리산 수련장으로 떠나오는 날 형님은 그랬었다.

"거기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보상 해주는 곳이야? 허가가 난데냔 말이야?"

추궁하듯이 몰아붙이는 형님한테 나는 순간적으로 화가 솟구쳤다. 한 달 가까이 어머니가 심적 저항감 없이 지리산 수련장에 갈 수 있도록 시나리오를 짜고 옛날 사진을 현상하여 예행연습까지 하면서 준비하고서 모든 비용을 나 혼자 마련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만약의 사고에 대한 책임까지 나더러 지라는 것이어서 그동안에 쌓인 불만까지 실어 쏘아 붙였다.

"이 깊은 산골에서 내가 어머니 모시다 사고 나면 그것도 내가 보상해야 되는 것이오?"라고.

그 순간이 떠오르면서 당시의 격앙되었던 감정이 되살아나 어머니를 껴안고 나는 울부짖듯이 흔들어 댔다.

"어머니. 어머니."

겨우 눈을 뜬 어머니는 지금까지 기세는 다 어디가고 모기만한 소리고 "와 이카노. 나 여기서 다 듣고 있다. 와 이카노" 하셨다. (25회에 계속)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