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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교수가 말하는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 식별법

등록|2007.10.06 16:10 수정|2007.10.06 16:14

▲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독일 하노버대학의 맨프레드 하이네만 교수가 10월 5일 성균관대에서 특강을 통해 자신의 연구성과를 소개했다. ⓒ 김종성


통일된 지 17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독일 학계에서는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Stasi)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슈타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부서가 설치된 이래, 이 비밀경찰에 관한 새로운 자료가 계속 발표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비밀 해제된 슈타지 문서를 쭉 늘어놓으면 그 길이가 160킬로미터가 될 정도로 많은 양의 문서가 공개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통일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자료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슈타지 비밀문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독일 하노버대학의 교수가 한국을 방문하여 자신의 연구성과를 소개하고 있다. 이 대학 교육학과 교수이며 '교육 및 학문의 현대사 연구소' 소장인 맨프레드 하이네만 교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

흥미로운 것은, 하이네만 교수가 슈타지 요원들에 대한 심층분석을 통해 이 요원들을 식별하는 방법까지 나름대로 연구해냈다는 점이다. 10월 5일 오후 3시~5시에 성균관대학에서 열린 '국가안전부 기록을 통해 본 동독의 정치와 사회-국가안전부 기록의 국가 사회적 의미'라는 하이네만 교수의 특강에서 그러한 점들이 설명되었다. 그리고 독일어로 진행된 이 강의에서는 한국어 통역이 제공되었다.

한국 학계에서는 다소 생소한 연구방법일지 모르지만, 하이네만 교수의 특강을 통해 독일 등 유럽국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흥미로운 연구방법의 일면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1943년 태생인 하이네만 교수는 뮌스터대학·함부르크대학·보쿰대학(역사학 박사) 등을 졸업한 후에 보쿰대학 조교수를 거쳐 1979년부터 하노버대학 교육학과에서 정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독일 통일 이후에는 동독의 교육제도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고 있다. 슈타지 비밀문서에 대한 연구도 슈타지의 동독 대학 침투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보안부(Ministry for State-Security)라는 뜻을 갖고 있는 슈타지는 지난 1950년에 구소련 KGB를 모방하여 설립된 동독의 비밀경찰이다. 그런데 하이네만 교수의 말에 따르면, 슈타지는 형식적으로는 경찰조직과 유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볼셰비키 같은 정당과 비슷한 조직이다.

그리고 독일 통일 직전인 1989년 현재 슈타지 요원 중에서 정규 요원은 9만1015명이고 비정규 요원은 대략 60만명 정도였다. 그리고 동독 전역에 슈타지 장교와 비밀공작원의 접선장소로 이용되는 주택이 3만2천개 정도 있었다고 하이네만 교수는 말했다.

그럼, 슈타지 요원의 신분이 엄격하게 관리되는 동독에서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식별할 수 있었을까? 다소 엉뚱한 것 같기도 하지만, 하이네만 교수의 말에 의하면 슈타지 요원들은 그 용모로 어느 정도 구분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많은 경우에 슈타지 요원들은 사회적 특권을 향유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슈타지 요원이라는 사실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비밀요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출세의 기회 등 각종 특권을 보장받았다.

대학생이 슈타지 요원이 되는 경우에는 해외 유학 등의 특전이 제공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많은 대학생들이 슈타지에 적극 가담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슈타지 장교가 학생들에게 접근하여 비밀요원이 되겠느냐고 권유하는 방법으로 슈타지 가입이 이루어지만, 어떤 학생들은 자신들이 먼저 슈타지 청사에 가서 가입을 자원하기도 할 정도로 슈타지 요원은 동독 대학생들에게 인기 직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특별대우에 대한 대가로 슈타지 요원들은 다른 것들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슈타지 요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또 이들 대부분은 고도의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모든 보고를 극비로 하는 등 슈타지 요원들은 항상 비밀엄수를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다는 것이 중대한 결점이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자연히 심리적 위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개중에는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내면상태가 얼굴에 표현되었다는 것이 하이네만 교수의 주장이다.

하이네만 교수는 "외부적 자극이 가해졌을 때에 일반인들과 달리 이들의 얼굴에서는 반응이 더디게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었다"면서 그들은 대개 창백한 얼굴의 소유자들이었다고 말했다. 일반인들 같으면 금방이라도 웃고 울고 놀랄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이들은 웬만해서는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경직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주변의 분위기에 대해 매우 늦게 반응하고 또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슈타지 요원인 경우가 많았다고 이 교수는 주장했다. 달리 말하면, 주변 환경과 뚜렷이 부조화되는 표정의 소유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슈타지가 소속 요원들의 이 같은 심리적 문제점을 인식하고 나름대로 대책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슈타지는 이들의 심리상태를 치료하기 위해 일종의 정신병원 같은 심리치료센터를 자체적으로 운영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치료센터에서까지도 항상 보고와 통제가 이루어졌고 또 슈타지 요원인 환자와 의사의 대화까지도 모두 보고되었다고 하이네만 교수는 소개했다.

위와 같이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비밀성 때문에 내부 요원들 중에는 세심한 관찰자가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심리적 이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하이네만 교수의 말이다.

서독 출신인 하이네만 교수는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내놓았지만, 슈타지가 일종의 정신병원을 두어 내부 요원들의 심리상태를 배려했다는 점을 보면 슈타지가 아주 비인간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슈타지 요원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간이 만든 사회체제의 한계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는 평등 구현이라는 관점에서는 자본주의보다 우월했지만, 전체를 위해 개성을 일정 정도 희생시켰다는 점에서는 그 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보다 더 균형 잡힌 사회체제는 인간이 계속해서 추구하고 만들어나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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