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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쓰레기가 고맙다고요?

재활용품 주워 팔아 이웃돕기성금 모은 구산역 미화원들

등록|2007.10.08 14:14 수정|2007.10.08 16:11
"쓰레기를 버려주어서 고마워요"

세상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까마는, 분명히 그런 사람들이 있다. 서울 지하철 6호선 구산역(역장 이민홍)의 청결을 위해 청소용역을 맡은 서한실업(대표 노정조51)에서 배치된 이 역 청소미화원 아줌마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아무리 청소 미화가 그들의 할 일이지만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가 유쾌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한 걸음만 가면 깨끗하게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이 있는데도 바닥에 팽개쳐진 쓰레기를 보면 짜증이 안 날 수 없었다.

청소에 열중인 미화원 아줌마들구산역의 재활용 주인공들 ⓒ 김선태

이들도 처음에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속이 상해서 청소가 끝나고 나면 흉이야 욕이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던 때도 있었다. 쓰레기를 주머니에 주워 넣었더니 ‘혹시 내가 떨어뜨린 돈을 주워 넣는 것이 아니냐?’ 하며, 주머니 검사를 당하는 일도 있었고, 잃어버리고 간 휴대전화기를 수소문하여서 찾아주었더니, ‘통화 내역을 조회해보고 만약 이 휴대폰을 사용 하였으면 요금을 청구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가는가 하면, 떨어뜨린 지갑을 찾아주었더니 현금이 없어졌다고 트집을 잡는 황당한 일을 당하고 나면 짜증이 안 나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게거품을 물고 욕을 해보았자, 남은 것이란 자신의 입만 더러워진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수집 된 쓰레기들역에서 수집된 쓰레기중 재활용품을 분리수거 ⓒ 김선태

그런 이들이 새로운 모습이 된 것은 이 역의 관리장을 맡은 권미향(51)님이 부임하고 나서 한 달쯤이나 지난 지난해 7월 무렵부터였다.  쓰레기를 버렸다고 욕하는 미화원들을 보다 못해서,

“하는 짓은 얄밉지만 그렇게 쓰레기가 버려지지 않으면 우리들의 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까 우리 직장이 있고, 여기 근무할 이유가 있는 것이니 고맙다고 생각합시다.”

하고, 고운 마음을 심어 주었다. 하긴 그렇다는 생각을 한 그들의 입에서 차차로 욕설이 사라지게 되었다.

분리수거재활용을 팔것들을 따로 모은다 ⓒ 김선태

그렇다고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가 귀찮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럴 때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다름 아닌 대부분 역 근처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용하는 컵들이 그것이었다. 이것은 거두어가면 현금으로 교환될 수 있는 재활용품이었다.

여기에 착안하여서 이 컵들을 따로 주워 모아서 현금으로 교환을 하게 되었다. 그 돈으로 자신들이 먹는 차와 간식비로 활용하기 시작하자, 이제 그런 것을 버린 사람들이 미운 것이 아니라 고마운 사람들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보기 싫은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이 고마운 사람으로 보이도록 마음의 눈이 변한 것이었다.

폐전화카드수거하면 얼마쯤 받는단다 ⓒ 김선태

얼마 동안 이렇게 이용하던 패스트푸드점 컵이나 여러 가지 재활용품(전화카드, 담배 등)들을 이제 다른 방법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은 지난해 연말이었다.

“우리가 청소를 하면서 주워서 버려야 할 것들을 잘 구별하여서 재활용품은 팔고, 종이 종류는 수집하는 어르신들께 드리면 얼마나 좋아하시겠는가? 이제 청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재활용이라는 면에서 우리가 나서자. 그리고 컵 같은 재활용품을 팔아서 모은 돈을 우리가 간식이나 먹는 데 써버리지 말고 더 보람 있는 곳에 쓰도록 했으면 좋겠다” 하는 제안을 한 것은 가장 나이가 드신 김아무개(57)님이었다.

“그거 좋은 생각인데 그럼 이 돈을 어디에 쓰면 좋을까요?”

관리장의 말에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지만, 마지막 결정은 ‘연말까지 모아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자.라고 합의를 하게 되었다.

이것을 저축통장을 만드는 방법도 있겠지만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입금을 시키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우선 돼지저금통을 하나 마련하여 모으기로 하였다.

미소돼지미소를 띄게 만들어준 고마운 돼지저금통 ⓒ 김선태


이 저금통은 이름하여 '미소 돼지'라 불렀다.

그 까닭은 이 돼지 저금통을 채우기 위해서 컵들을 모으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이 미운 것이 아니라, 이 재활용이 되는 종이컵 같은 것을 발견하면 마음 속으로나마  ‘여기 이 컵을 버려 주어서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종이컵을 주워들게 되었기 때문에 미화원들에게 짜증 대신 '미소'를 준 돼지이기 때문이란다.

이제 두어 달 남짓 남은 연말까지 미소돼지가 배탈이 나도록 먹이고 또 먹여서 멋진 사랑의 선물이 되어 줄 것이란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녹원환경뉴스, 개인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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