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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신은 보살의 솥뚜껑 춤에 비가 뚝!

믿거나 말거나 비는 그쳤다

등록|2007.10.10 11:49 수정|2007.10.10 13:21

▲ 갑작스레 빗방울이 떨어지니 솥뚜껑을 머리위에 인 빨간 장화의 보살이 등장했다. ⓒ 임윤수


주춤거리는 발걸음, 반쯤은 울상이 된 표정으로 봐 누군가에게 등이라도 떠밀려 나오는 모양이다. 행주치마를 두르고, 빨간 장화를 신은 것으로 봐 일찌감치 뒤쪽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보살 중 한 명이 분명하다.

불교호스피스 교육관인 마하보디 개원식이 열리는 10월 7일 오후 2시 10분경, 오전 개원법회에 이어 오후에 열리고 있는 산사음악회에서 보살 한 명이 느닷없이 때 아닌 솥뚜껑을 머리위로 치켜들고 조금은 엉거주춤한 표정으로 무대 앞으로 뛰어 든다.

무르익은 분위기일지라도 때 아닌 솥뚜껑 춤이 등장하니 사람들 시선이 순식간에 솥뚜껑으로 쏠린다. 그런 시선이 버거운 듯 보살의 인상은 점점 울상이 된다. ‘왜 이런 건 나한테 시키는 거야’하며 투정이라도 하듯 입술을 비질거리며 반쯤은 일그러진 표정이다.

제 15호 태풍 크로사의 영향으로 오후부터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가 일찌감치 있었지만 지금껏 멀쩡했던 하늘에서 갑자기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였다.

▲ 주춤거리는 발걸음, 반쯤은 울상이 된 표정으로 봐 보살은 누군가에게 등이라도 떠밀려 나오는 모양이다. ⓒ 임윤수


예정된 3시, 끝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조금만 더 참아주면 되는데 심통이라도 부리듯 빗방울이 떨어지니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과 우산을 꺼내드는 사람들로 주변이 어수선해 질 때 솥뚜껑이 등장한 거다.

두 번째 보는 비오는 날 솥뚜껑

비가 나리기 시작할 때 솥뚜껑을 머리 위로 든 보살을 보고 있으려니 기억 속에 있던 그 모습,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솥뚜껑을 뒤집어쓰고 집 안팎을 돌며 벌을 키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벌써 39년 전이나 되는 1968년 음력 7월 7일, 필자의 나이 9살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임종을 하시던 날에도 필자는 저런 솥뚜껑을 본 적이 있다. 여행을 다녀오다 갑자기 지병이 돋아 입원하였던 아버지는 들것에 들려 집으로 돌아오셨다.

지금이야 자동차가 쌩쌩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지만 그때만 해도 리어카 하나 다닐 만한 길이 못돼 거동이 불편한 환자라도 발생하면 들것을 만들어 운반해야만 했던 까마득한 시절이다.

믿거나 말거나 비는 멈췄다.

ⓒ 임윤수


아버지는 집에 도착하였고, 후텁지근하긴 했지만 비가 올만한 날씨는 아니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아버지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임종하셨을 때, 천둥번개가 치며 때 아니게 소나기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그때, 아직은 청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머니는 집에 와 계시던 어르신 중 누군가의 지시(?)로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집둘레를 돌며 잘못을 빌고, 비를 멈추게 해달라고 기원을 하던 걸 본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벌이라도 서듯 어머니가 솥뚜껑을 뒤집어쓰고 그렇게 집 안팎을 돌고 났을 때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멈췄었다.

한여름에 내릴 수 있는 소나기, 한 줄금 퍼붓고 지나가는 소나기였기에 그 시간만 내리고 그친 것일 수도 있지만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참 신기하다’며 수군대던 걸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9살이라는 어린나이였기에 기억하기 힘든 세세한 일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 제삿날에 비라도 오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그때 일들을 아픔처럼 꺼내곤 하니 또렷하게 기억한다. 

▲ 솥뚜껑을 뒤집어씀으로 비를 멈추게 하였던 빨간 장화의 보살, 처음엔 그렇듯 쑥스러워 하던 보살이 나중엔 무대에 올라 노래도 불렀다. ⓒ 임윤수


어린나이에 보았던 그 모습, 갑작스레 비가 나릴 때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춤 아닌 춤을 추며 비가 그쳐줄 것을 기도하는 모습을 다시금 보게 되는 현장이다.

믿거나 말거나 비는 그쳤다

행사의 막바지, 조금만 참아주면 멋지게 끝 낼 수 있는 산사음악회 말미에 갑작스레 비가나리니 누군가가 그 보살에게 주술적 의미일 수도 있는 그 모습,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행사장 주변을 한 바퀴 돌라고 하였던 모양이다.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는 그런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 앞으로 나서야 하니 빨간 장화를 신은 보살은 그렇게 우거지상이 되었을 게 뻔하다. 이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대개의 사람들은 그저 신명 많은 보살이 톡톡 튀고자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등장한 정도로 짐작하였을 거다.

어찌 되었건 신기하게도 솥뚜껑이 등장하니 빗방울은 멈췄다. 우연에 일치일 수도 있고, 지나가던 몇 방울의 비가 다 떨어지고 나니 그친 것일 수도 있지만 믿거나 말거나 비는 멈췄고, 행사를 무사히 마친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다시 비가 내렸다.  

비가 그치니 주춤거리던 분위기는 다시금 달궈지고, 달궈진 분위기 속 솥뚜껑은 자연스레 분위기를 더해주는 좋은 소품이 되었다. 처음 나올 때는 울상이었던 보살, 등이라도 떠밀리듯 주춤거리던 보살도 달궈진 분위기에 동화되어 춤꾼이 된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니 또 다른 보살이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등장하니 무대 앞은 솥뚜껑으로 번쩍거린다.

▲ 솥뚜껑을 뒤집어쓰는 게 내리는 비는 멈추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에겐 웃음을 줄 수 있을듯하니 멀쩡했던 하늘에서 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면 솥뚜껑 하나 들고 엉거주춤 춤 한번 춰봐야겠다. ⓒ 임윤수


느닷없이 등장한 솥뚜껑에 많은 사람들이 황당해 했고, 보지 못했던 솥뚜껑 춤에 사람들은 박장대소 했지만 솥뚜껑의 등장에 맞춰 내리던 비는 멈췄으니 주술적 의미였던 미신의 하나였던 유효했던 건 분명하다.

솥뚜껑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렇듯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으니, 사람들 가슴에 있는 작은 근심, 빗방울 같은 근심을 멈추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건 분명한듯 하니 멀쩡했던 하늘에서 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면 솥뚜껑 하나 들고 엉거주춤 춤 한번 춰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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